#시대예보, 빈집증후군
공허하다.
채울 수 없는 블랙홀.
치열하게 살았는데, 왜 이토록 허무할까?
공허의 시대를 쓴 작가 조남호는 우리 사회가 성취 중독사회, 목적주의에 빠져 집단 공허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인간의 의미를 목적이 아닌, 존재 자체에서 찾으라며 충만주의를 제안한다.
뭔가, 많이 부족했다. 나의 공허는 목적주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훨씬 더 복잡한 무언가 있다.
그리고 집어든 송길영 작가의 신간, <시대예보:경량 문영의 탄생>. 여기서 공허의 원인을 찾았다.
먼저, <시대예보 : 호명사회>의 시작 문장처럼, 사람은 가진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던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더 슬퍼진다.
퇴사를 준비하며, 깨달았다. 내가 가진 것들이 별거 아닌 것임을. 20년간 무언가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왔는데, 그것들이 별거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그저 조롱 아닌 조롱거리가 되면서, 어느 순간 무너져버렸다. 차라리 가진 것이 없었다면... 이 공허함과 허무를 품을 일이 없었을지도...
저 문구다. 별거 아닌 것들을 향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을 곱씹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건가? 싶다가, 왜 그렇게 살았나 싶다가, 그나마 주제파악해서 다행이다 싶다가 한다. 진심으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배움의 시간이었다.
새 책 <시대예보:경량 문영의 탄생>에서는 현시점을 문명의 전환기로 본다. 이제 누구나 거의 동시에 변화의 파도 위에 서게 되는데, 이런 전환기는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에게 상실의 아픔과 적응의 혼란을 강제한다고 말한다. 기존 구조를 계속 붙잡기보다, 새로운 발판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존을 위해, 그리고 자존을 위해 또 어떤 기여를 사회에 돌려줄 것인가 늘 고민하는 삶은 적응의 멀미를 상시화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랬다. 솔직히 지쳤다. 삶에 쉼표가 필요했다.
그런데, 20년간 별것 아닌 것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번아웃된 나에게,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한다. 문명의 전환기라고, 시대에 적응하라고. 이 강한 변화의 흐름 속에 적응의 혼란은 당연한 것이라고, 기존의 구조를 벗어나 새로운 발판을 만들라고 한다. 그렇게 늘 고민하는 삶은 적응의 멀미를 상시화 하게 될 것이라면서.
정확한 표현들이었다. 정말 생성형 AI 덕분인지? 때문인지? 모르게, 지속적으로 뭔가 시도해야 하는 일들을 겪으며, 내가 속한 토목공학은 이런 것들과 어떻게 연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혼란스러움 속에 멀미가 날 지경인데, 이 나이에 다시 20대의 나처럼 시작해야 하나? 너무 하기 싫다. 그런데 불안하다.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
솔직히 너무 지쳤고, 더 배우고 싶지 않은데, 현재를 살려면, 생존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이제 개인의 삶에서든 기업의 운영에서든 각자가 처한 문제를 잘 정의하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능적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꼭 내 마음과 같다. 하지만 너무나 막연하고 어려운 말이다.
진짜 '나는 자연인이다'가 되고 싶은 요즘이다.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뭘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럴 에너지도 없다.
두 아이가 집을 떠나갔다. 독립할 때가 되어 독립한 것이지만, 가슴이 텅 비어 버렸다. 추석 연휴 잠깐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은 바람처럼 흘러가 버리고, 중간고사 기간이라며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가는 두 녀석. 하루에 두 아이를 보내고 나니, 외롭다. 이 집착을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두 아이가 없는 텅 빈 집이 못 견디게 휑하다. 맞다. 빈집증후군인가 보다.
내가 걸어온 시간, 내가 살아온 시대, 내 전부였던 아이들이 모두 별것 아니게 되고, 변하고, 떠나간 지금 나의 공허는 삶을 견디기 힘들게 한다.
아마, 늘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남편이 없었더라면,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난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다. 앞으로 파이어 할 수 있을 때 퇴직할 거다. 글도 쓸 자신이 없다. 위로가 된 글쓰기로 상처받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건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래도 공허한 시간을 견디는 날 위로하기 위해, 쓴다. 쓰면서 또 깨닫는다. 별것 아닌 것에 유난 떨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