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AI 에이전트를 위한 가장 확실한 데이터셋
지난 주말 전사 AI 해커톤에 참여했다. 비전공자 실무자들이 바이브 코딩으로 실무 투입 가능한 서비스를 뽑아내는 걸 보면서 당혹스러웠다. 10년 가까이 쌓아온 숙련도가 '추억' 같은 것이 되는 건 아닌지.
그런데 계속 생각하다 보니,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만들기가 누구에게나 가능해진 세상에서, 결국 남는 건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만드는 이유 — 동기가 아닐까.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례가 있다. 원래 ‘컴퓨터Computer’라는 단어는 기계가 아니라, 복잡한 수식을 수동으로 풀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계산공'이라는 직업 명칭이었다는 것이다. 1)
컴퓨터의 등장으로 '계산'이 더 이상 인간의 일이 아니면서 인간의 특성을 의미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처럼, 소위 '딸깍'의 영역은 인간의 변별점이 아니게 되었다.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의 명칭도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지칭하게 될 것 같다.
이런 기술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귀여운(?) 면모를 보여왔는데, 인간이 만들었음에도 그 기술에 위기를 느끼고, 기술이 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을 주목하고 인간을 재정의하려는 점이다. '딸깍'이 아닌 영역, 인간을 AI 기술과 구분할 수 있는 차별점은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 동기Motivation가 아닐까.
글은 동기를 기록하는 미디어이자, 그 동기를 정교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대화는 상대가 있어야 하지만, 글은 나 자신과 언제든 나눌 수 있는 가장 깊은 대화다.
디자이너로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계기는 단순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전달해야 할 때, PDF 포트폴리오가 너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비주얼 몇 장과 이력 몇 줄이 나를 충분히 보여주는가? 특히 기획이나 UX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포트폴리오는 늘 절반만 말하는 매체였다.
그리고 실무에서도 기록의 부재가 아팠다. 버튼 하나의 라벨을 정할 때조차 수많은 논리와 근거가 부딪히는데, 결과물만 남기고 나면 그 과정은 소리 없이 휘발된다. 비슷한 문제를 다시 마주했을 때 참고할 데이터가 없다. 복기할 수 없는 경험은 축적되지 않고 소모될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내가 한 명 더 있어서 나와 대화하거나 함께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최근까지도 유효한 생각이다. 회사를 대신 보내겠다는 건 아니고, 나와 대화하고 함께 사고할 수 있는 또 한 명의 나.
지금까지는 말 그대로 물리적인 복제만 상상했는데, AI 시대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머지않아 나를 닮은 ‘AI 에이전트’가 내 업무를 돕게 될 텐데, 학습할 데이터를 지금부터 만들어놔야 한다. 내가 글을 쓰는 건 내 이상적인 사고방식을 데이터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AI가 구조를 잡아주는 시대니까, 중요한 건 일단 꺼내놓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핀터레스트의 이미지보다 낯선 이의 아티클에서 더 많은 구원을 얻었다. 누군가의 실무 경험과 고민이 담긴 글 한 편이, 잘 정리된 레퍼런스 이미지 백 장보다 나를 더 많이 움직였다.
도움을 받으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는 데에 심리적 빚 같은 게 있었다. 내 통찰이 너무 작아서 공유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 건지, 미흡함이 드러나는 게 두려웠던 건지.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이제 그 마음을 내려놓고, 첫 글을 쓴다.
참고
1) 컴퓨터 어원에 대한 브런치 글 https://brunch.co.kr/@plutoun/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