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정치와 UX
"윗선에서 정한 거예요"
카카오톡 친구탭 UX 개편,
펄어비스의 신작 게임 붉은 사막의 조작계 사용성 논란.
도메인은 달라도 구조는 같다.
UX가 불편하다는 이야기 뒤에 사내 정치 이야기가 따라왔다.
블라인드에는 폭로가 이어진다.
엄청난 실패라는 댓글들, 그런데 엄청난 매출이라는 기사가 동시에 뜬다.
확실한 건 실무자의 의견이 묵살되었고, 많은 이들은 이 사실에 분노했다는 것.
Politics: Who Gets What, When, How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은 1936년 정치를 이렇게 정의했다.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선거와 국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정된 리소스와 개발 비용 안에서 무엇을 만들 것인가, 어떤 유저를 고려하고 어떤 유저를 배제할 것인가.
UX 디자인의 모든 결정이 곧 정치다.
실무에서 디자인에 대한 결정을 디자이너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기획자, 개발자, 경영진 등 디자이너는 UX와 얽힌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고하고, 설득하고, 싸우고, 패배한다.
HiPPO: Highest Paid Person's Opinion.
회의실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의 의견이 최종 결정이 되는 현상을 부르는 말이 있다.
데이터도, 리서치도, 실무자의 판단도 거대한 HiPPO 앞에서 무력화된다.
경영진의 독단적인 결정은 성공하면 혁명이 되고, 실패하면 독재가 된다.
디자이너들이 동경하는 스티브 잡스는 많은 실무자를 무시했다고 한다. 동시에 디자인팀의 결정을 다른 부서보다 우선하도록 권력을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사실을 누군가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설득하는 데 쓰고, 누군가는 경영자의 독단을 정당화하는 데 쓴다는 점이다.
같은 사실, 다른 해석. 그 차이가 곧 정치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디자인에 대한 정치는 계속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는 오직 선발전 성적으로만 대표를 뽑는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도 탈락한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낸다. 우리는 이런 공정함이 성과를 낼 것이라 믿는다.
문제는 우리가 하는 일에는 그런 공정한 기준이 어렵다는 점이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곳에 우리가 사내 정치라고 부르는 것들이 채워진다.
조직에서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했음에도 다른 평가를 받고, 다른 보상을 받는다. 학연, 지연, 혈연, 그리고 흡연이라는 사내 정치에 가려진 그 불투명한 과정에 분노한다.
그렇다면 기준을 정하면 해결될까. 기준이 있으면 권력이 기준을 정한 사람에게 간다. 어떤 기준을 세우든, 그 기준에 유리한 사람이 생긴다. 기준을 정하는 것도 정치다.
그런데 더 교묘한 방식이 있다. 기준을 아예 정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시안"
디자인 리뷰의 기준이 문서화되지 않으면, 좋고 나쁨의 판단은 매번 윗선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실무자는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눈치를 보게 된다. 잘 만드는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면, 디자이너는 잘 보이는 것에 시간을 쓰게 된다.
이런 리더는 무능하면서도 전능하다.
어느 관점에서는 효과적인 구조다. 기준을 정하지 않으면 모든 판단이 리더를 향하고, 권한은 사람에게 집중된다. 의도했든 아니든, 기준의 부재는 권력의 집중을 만든다.
기준이 있어도, 기준이 없어도 권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디자인 올림픽의 경기 기준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미적 완성도
클릭률
체류 시간
디자인 시스템 활용도
접근성
만족도
비용 대비 효율
...
기준 하나를 정하면 다른 기준이 희생된다. 클릭률을 높이면 사용자를 조작하게 된다.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창의성이 제한된다.
디자인은 복합적이다. 어떤 지표도 완전하지 않고, 시각적인 기준들은 충돌하기도 한다. 팀 내에서, 그리고 팀 간에,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지표를 추적한다.
회사의 존재는 이익 실현에 있다. 고용된 우리는 이익에 기여해야 한다. 그래서 기여를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실무자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그런데 이 숙명은 유독 디자이너에게 가혹하게 작동하는 것 같다. 디자인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경영진도, 개발자도, 처음 입사한 어느 팀의 신입도 화면을 보는 순간 의견이 생긴다. 디자인은 모든 사람의 정치가 그만큼 쉽게 작동하는 영역이다.
UX 디자이너가 데이터와 지표를 말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감각만으로는 설득이 안 되는 회의실에서,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고통받으며 찾아낸 생존법 중 하나는 데이터였다.
설득의 도구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정치적 언어였던 것이다.
알림 동의는 기본적으로 켜져 있다.
개인정보 수집은 기본적으로 동의로 되어 있다.
미국의 한 대기업이 퇴직연금 가입 방식을 직접 신청에서, 자동으로 가입되는 방식으로 바꿨다. 가입률은 37%에서 86%로 올랐다. 제도도, 혜택도, 금액도 바꾸지 않았고 기본값만 바꿨을 때의 변화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것을 디폴트 효과 Default Effect라고 부른다. 강제하지 않아도 기본값 하나가 수백만 명의 행동을 바꾼다. 유럽연합이 이 기본값을 GDPR 법으로 제한한 이유다.
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2018년 시행된 유럽연합의 개인정보 보호법. 사전 동의 없는 개인정보 수집을 제한했다.
기본값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조용한 권력이다.
기업에게는 수십억의 매출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자동차 충돌 테스트에 사용되는 더미는 수십 년간 1970년대 기준 성인 남성의 신체를 기반으로 설계됐다. 여성용 더미도 있었지만, 남성 더미를 수학적으로 축소한 것이었다. 크기만 줄였을 뿐, 여성의 골반 구조, 목의 근육량, 척추 정렬이 남성과 다르다는 사실은 반영되지 않았다.
1976년 — 남성 더미 등장
1988년 — 여성 더미 "고무 재킷에 가슴을 붙인 축소판 남성"
2003년 — 미국 도로교통안전국, 최소 안전 기준 준수 테스트에서 여성 더미를 운전석에 배치
2025년 — 최초 여성 신체 기반 더미 THOR-05F 공개
결과는 데이터로 나타났다. 정면 충돌 시 여성이 중상을 입을 확률은 남성보다 73% 높다. 안전벨트를 착용한 상태에서 여성 운전자가 사망할 확률은 남성보다 17% 높다.
수면제 졸피뎀은 1992년 승인됐다. 당시 가임기 여성은 임상시험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남성 기준으로 정해진 용량이 그대로 여성에게 처방됐다.
20년이 지나서야 문제가 드러났다. 같은 용량을 복용한 뒤 8시간 후, 운전 장애 수준의 혈중 농도가 남아 있는 비율이 여성은 15%, 남성은 3%였다. 2013년, FDA는 여성 권장 용량을 절반으로 낮췄다. 승인 후 21년 만이었다.
아무도 여성을 배제하겠다고 결정하지 않았다. 그냥 남성을 기본값으로 설정했을 뿐이다.
이것은 드러난 사례일 뿐이다. 디자이너도 매일 기본값을 정하고 있다. 페르소나를 설정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배제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화면을 설계할 때 특정 시력, 특정 손 크기, 특정 언어가 기준이 된다. 접근성 같은 건 고려 대상에 오르기도 전에 백로그에서 사라진다.
우리는 매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기본값을 심고 있다.
왜 교과서에 힙합과 k-pop은 없었고, 교향곡과 오페라는 학교에서 배웠을까.
교육학에서는 이를 "영 교육과정 Null Curriculum" 라고 부른다. 비어 있다는 의미의 Null 값. 가르치지 않기로 결정된 것들이다.
한정된 교과서 페이지에 어떤 내용으로 채울지는 항상 정치적 싸움이었다. 배제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 배제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행위다.
배제를 인식하라.
Known knowns — 아는 것을 안다
Known unknowns — 모르는 것을 안다
Unknown unknowns — 모르는 것조차 모른다
모르는 것을 안다면 찾아볼 수 있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면 인식할 수도 없다. 우리가 설계에서 빠뜨린 것은 대부분 세 번째다. 빠뜨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디자이너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설계하지 못한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배제를 먼저 이름 붙이는 것이, 설계보다 앞서야 한다.
0을 발견하기 전까지, 없음은 셀 수 없었다. 우리에게 아직 남은 0은 무엇일까.
Recognize Exclusion.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클루시브 디자인 첫 번째 원칙.
이 글을 쓰면서 어떤 사례를 넣고, 어떤 사례를 뺄지. 배제된 것들은 기록에 남지 않는다. 독자는 내가 고른 것만 보게 된다. 글을 쓰는 행위도 편집이고, 편집은 정치다.
나는 윗선이 불투명하게 결정한다고 비판하면서, 막상 내가 채용 프로세스에 들어가니 나와 일하기 편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기준 없는 결정을 비판하던 내가, 기준 없이 사람을 고르고 있었다.
디자이너는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중립적인 디자인은 없다. 모든 결정은 누군가에게 유리하고 누군가에게 불리하다.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한, 그것은 숙명이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정치를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나는 오늘 누구를 배제했을까
참고
디폴트 효과와 퇴직연금 가입률, Madrian, B. C., & Shea, D. F. (2001). The Power of Suggestion: Inertia in 401(k) Participation and Savings Behavior.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16(4), 1149–1187
자동차 충돌 사고 실험, https://www.khan.co.kr/article/201508302202255
정면충돌 시 여성 탑승자의 부상 위험, Forman, J., et al. (2019). Automobile injury trends in the contemporary fleet. Traffic Injury Prevention, 20(6), 607–612
충돌 테스트 더미의 성별 편향, Gendered Innovations, Stanford University. Inclusive Crash Test Dummies: Analyzing Reference Models
졸피뎀의 성별 용량 격차, FDA Drug Safety Communication (2013)
인클루시브 디자인, https://msvinsight.com/inclusive_design/
https://inclusive.microsoft.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