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 Feb 23. 2024

(의견) 학교폭력은 의도된 정치질서다

2023.02.23. 구조적 약자일수록 권력관계에 익숙하고 능숙하다

두루두루 교우관계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단짝이 없었던 적도, '왕따'였던 적도 없다. 후자는 내 주관적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뭔가 괴롭힘이 시도될 때마다 맞서 싸웠다. 린치를 가하려고 떼거지로 몰려와 있을 때도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했고, 앞에서 비아냥거리면 나도 받아쳤다. 뺨을 때리면 멱살을 잡았고 물건을 숨기면 상대방의 책상을 집어 던졌다. 그러니까 따돌림을 당한 게 아니라 그냥 거의 모두와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는 익숙해도 트라우마나 상처가 남은 건 없다. 오히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의 자아를 얻은 것 같다. 어떤 암묵적인 분위기나 어떤 관습적 룰도 스스로 명시적인 동의를 하기 전에는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거 깨봤자 돌아올 압박이 어느 정도인지 이미 안다. 정말 별 거 아니다. 단, 먹고 사는 일이 달려있지 않을 경우에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러지 못했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사회적인 성격이라서 커뮤니티에서 배제되는 일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었더라면, 그 자리가 지옥이었을 것이다. 시작하지도 못한 인생을 거꾸러트리고 싹의 뿌리를 검게 썩이는 지옥 말이다. 학교폭력은 실수도 아니고 철없는 시절의 방종도 아니다. 십대는 충동을 조절하지 못할 뿐이지 사물과 인간과 권력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능숙함은 오히려 성인보다 명철하다. 어떠한 권력도 쥐고 있지 못해서, 오히려 권력에 민감하다. 학교폭력은 의도된 계산이고 내가 집단에서 권력을 휘두름으로써 얻을 쾌락과 우월감과 권위를 분명하게 노리고 하는 고도의 정치적인 행동이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은 결코 철이 없지 않다. 그들의 폭력은 버튼을 누르면 전기신호가 발생해 뇌를 자극하고 도파민을 주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보상게임이다.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분명히 알기에 의도를 갖고 저지르는 짓이다. 그러므로 그런 변명은 틀렸다.


문명 사회에서 성인이 청소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너희는 철이 없다'는 말도 안되는 방패막이가 아니라 마땅히 가져야 할 개인의 권리들은 이러하며, 너는 침해받지도 침해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알려주고 인간세상은 네가 사람이 덜 돼서 본능대로 행동한 것과 같지 아니함을 온 생으로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

작가의 이전글 (일기) 서울대 의대생과 데이트했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