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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Jul 24. 2022

대마를 위한 변명

합법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


문화예술 매거진 안티에그(ANTIEGG)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antiegg.kr/5362/


▶ 뉴질랜드와 영국이 최근 담배를 완전히 퇴출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담배 구매가능 연령을 한 살씩 높여 장기적으로 무흡연사회, 금연국가로 나아가겠다고 선포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스위스도 잇따라 규제 강도를 높이며 ‘담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담배를 퇴출하기로 한 건 담배가 건강에 매우 큰 해악을 미치고 이로 인해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담배는 개인의 선택권으로 간주돼 왔지만, 더는 방관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 강해진 것이었다.


▶ 2020년 12월 UN마약위원회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를 받아들여 대마초를 마약류 통제물질 목록 제4군(Schedule IV)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안건은 찬성 27표, 반대 25표, 기권 1표를 받아 근소한 차이로 통과됐다. UN마약위원회가 정하는 마약류 통제물질 목록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마약류 리스트’로, 마약을 위험도와 유용도를 기준으로 분류하고 규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제1군으로만 분류돼도 제조·거래·유통 등에 엄격한 규제가 생기며, 이 중에서 특히 위험한 마약들은 제4군으로 분류돼 의학·과학 목적의 임상연구 외에는 취급할 수 없게 된다. 코카인, 모르핀, 펜타닐 등이 제1군으로 분류돼 있으며, 헤로인은 제4군으로 분류돼 있다. UN마약위원회의 이번 결정으로 대마초는 제1군에만 남게 됐다. 비록 합법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의료 목적 활용가능성이 확대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담배가 수난을 겪고, 대마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담배에 대한 규제는 강화되는 한편, 대마를 합법화·비범죄화하는 지역은 늘어났다. 이에 따라 전 세계 흡연 문화에도 격동이 예고된다. 물론 대마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도덕성과 결부해 대마 사용자를 죽을죄를 지은 사람처럼 몰아가는 아시아권 국가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대마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분투한 이들 덕분에 느리지만 확실하게 변화가 일고 있다. 책 『대마를 위한 변명』에서 저자 유현은 한국도 대마초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근거를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동조자가 돼간다. 대마를 허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허용해도 괜찮은 걸까. 책과 여러 논문을 통해 대마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봤다.


나는 상상한다. 일찍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근교의 푸른 숲을 찾아 사람들과 더불어 대마초를 피우는 나 자신을, 그럴 수 없는 지금 나는 요구한다. 나라에 대마초를 허하라.

-유현 『대마를 위한 변명』



대마, 너는 누구냐!



마약과 대마에 모두 포함된 ‘마(痲)’는 ‘마취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다. 영어로는 'Narcotic'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무기력하다’, ‘마비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마약에 대한 엄밀한 정의는 나라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법으로 금지된 약물’을 통칭한다. 우리나라 마약법에 따르면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마약과 향정신성의약품, 대마가 있다. 긴 목록이 나오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로는 헤로인, 코카인, 모르핀, 펜타닐 등의 마약과, 메틸암페타민(미드 <브레이킹 베드>의 블루 크리스탈), LSD, 엑스터시(MDMA), 프로포폴 등의 향정신성의약품이 있다. 마지막으로 대마 성분 중에는 칸나비놀(CBN)과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칸나비디올(CBD)을 마약류로 지정하고 있다. 같은 대마라도 용도에 따라 다른 명칭으로 불린다. 대마 식물을 지칭할 때는 칸나비스(Cannabis)로, 잎과 꽃을 말린 형태를 말할 때는 마리화나(Marijuana)라고 부른다. 이 밖에 섬유나 제지산업에 사용되는 대마의 줄기는 헴프(Hemp)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 마약으로 알고 있는 건 마리화나(때에 따라 칸나비스)이며 헴프는 흡입해도 아무런 정신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미지 출쳐: Pixabay


대마를 흡입 또는 섭취하면 긴장완화, 감각증진 등의 효과가 나타난다. 이런 정신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성분은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과 칸나비놀(CBN)이며 칸나비디올(CBD)은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쪽으로 작용하는 성분이다. 의료용 대마를 말할 때 논의의 초점은 대부분 CBD에 맞춰져 있으며, UN마약위의 이번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CBD에 남용이나 의존으로 인한 위험성이 매우 낮다는 WHO의 판단이었다. 마리화나는 많은 양의 THC를 함유하고 있으며, 헴프엔 거의 포함돼 있지 않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건, 대마가 환각작용을 일으킨다는 오해다. 환각은 환시·환청·환촉 등을 지칭하는 개념인데, 사실은 술에 취한 듯 몸이 나른해지고 감각이 예민해질 뿐 대마가 환각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대마를 피우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 유튜브 영상을 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의료용 목적으로 대마 사용을 허용한 국가들은 굉장히 많다. 반면 오락 목적으로 대마초를 합법화한 국가는 미국 일부 주, 캐나다, 우루과이, 몰타, 조지아, 태국과 남아공뿐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처럼 자유롭게 대마를 할 수 있는 지역들도 있는데, 이런 곳은 원칙적으로는 불법이나, 처벌은 하지 않는 ‘비범죄화’가 이뤄진 곳들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기호용 대마를 피울 수 있는 지역은 앞서 열거한 지역보다 많다. 한국은 합법화도 비범죄화도 안 됐기에 의료용 목적 외 대마를 소지·유통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범죄라는 인식이 공고히 자리 잡은 탓인지 대마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매우 부정적이다. 연예인이나 유명 가수가 대마초를 피우다 적발돼 처벌과 함께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했다는 소식은 요즘도 종종 들려온다. 전 세계적인 규제 완화의 추세 속에서 한국은 한참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대마초 사용하다 적발돼 물의를 일으킨 MKIT RAIN 소속 래퍼들, 이미지 출처: MyMusicTaste



누명으로 얼룩진 대마의 역사


대마와 관련해 빗장이 하나둘 풀리고 있는 건 대마에 관한 포용력이 넓어져서는 아니다. 물론 알지 못했던 의학적 효과가 발견된 덕도 있으나, 대마가 그다지 해롭지 않다는 건 수천 년 전 사람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는 과거 대마 규제가 누군가의 이해타산에 따라 인위적으로 제정되고, 확산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37년 최초의 대마 금지법으로 알려진 미국의 ‘마리화나 세금법’이 제정된 이래, 대마는 산업, 외교, 정치 분야의 이해에 따라 억울한 누명을 써왔다. 그 과정에서 산업·의학적 쓸모는 간과돼왔다. 오늘날 ‘대마를 위한 변명’이 필요한 이유다.


이미지 출쳐: Pixabay


먼저 저자는 마리화나 세금법이 제정된 배경에 주목한다. 당시 섬유산업에 사용되는 원료를 두고 대마산업과 면화산업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원래는 대마가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었으나 면화에서 섬유를 뽑아내는 기술이 발명되고, 새로운 면 재질 섬유에 대한 대중의 인기가 높아지며 대마는 점점 밀려났다. 섬유뿐 아니라, 의약품 시장에서도 모르핀 등 신약들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또 제지(製紙)산업에서도 목재펄프(Pulp)의 등장으로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이었다. 기호용 대마, 마리화나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지만, 저물어가는 대마산업을 위기에서 구해낼 만큼 수요가 많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농업기술과 자동화 기계의 발명으로 대마 재배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이에 따라 위축된 대마시장이 원래의 지위를 회복할 거란 전망이 나왔으며, 실제로 대마농업의 재배 면적이 넓어지는 등 새로운 전성기를 맞는 듯했다.


이러한 흐름에 찬물을 끼얹은 게 바로 ‘마리화나 세금법’이었다. 마리화나 세금법은 마리화나의 생산, 판매, 유통자에게 터무니없는 세금을 물리는 법안이었다. 당연히 대마산업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됐고, 대마의 부활로 손해를 볼 뻔한 경쟁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자는 법이 제정되는 과정에 정치와 자본의 개입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화학섬유의 상용화를 준비 중이던 화학회사 듀퐁(Dupont)이 자본을 앞세워 당시 연방마약관리국을 주물렀다고 말이다. 또 목재펄프를 기반으로 한 제지산업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f Heartst: 미국 신문왕)는 자신이 소유한 신문과 잡지를 이용해 대대적이고 노골적으로 ‘대마 죽이기’에 나섰다. 허스트는 인종차별적인 메시지를 엮어, 당시 백인들이 혐오하던 멕시코인과 흑인의 폭력성을 부추기는 게 마리화나라고 선전했다. 이 같은 기득권 세력의 합작으로 마리화나 세금법은 통과됐고, 본격적인 대마의 수난이 시작됐다.


이미지 출쳐: Pixabay


마리화나 세금법에 앞장선 연방마약관리국 국장 헨리 안스링거는 이후로도 미국에서 대마를 뿌리 뽑는 일에 헌신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마리화나 사용이 급증했고, ‘마리화나 폭력설’은 힘을 잃었다. 대마의 부활을 우려한 대마 금지론자 진영에게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안스링거는 냉전 속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전략을 고안해냈다. 바로 ‘공산주의자들이 의도적으로 마리화나를 퍼뜨려 국력을 약화시키려 한다’라고 선전하는 전략이었다. 이런 프레임에 반대했다가는 공산주의자로 몰릴 수 있었기에 누구도 선뜻 나설 수 없었다. 안스링거의 전략은 효과적으로 먹혀들었다. 대마 금지론자들은 기세를 몰아 대마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들은 마리화나의 부정적인 면이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의학계 반발에 부딪혔다. 법안 제정을 위해서는 이를 넘어서야 했다. 고심하던 안스링거는 현재까지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관문이론(Gateway Theory)’을 만들어냈다. 이는 곧 마리화나 사용이 다른 강한 마약의 사용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이었다.


대마를 둘러싼 전쟁은 이후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했다. 앨런 긴즈버그 등 진보 인사를 주축으로 대마 합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마리화나는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와 탄압 속에서 진보와 혁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갔다. 대마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 진영의 대립은 현재까지도 명맥을 잇고 있다. 이것이 대마와의 전쟁의 전말이다. 여기서 핵심은 대마가 그 자체의 성질보다는 다른 요인, 더 정확히는 기득권의 이해관계들에 따라 금지돼왔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줄곧 대마에 대한 올바른 사실을 전하려고 노력했으나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대마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전세계로 퍼져 현재에 이르게 됐다. 그렇다면 대마는 합법화를 요구하는 이들의 주장처럼 정말 문제가 없는 걸까. 과학·의료계 전문가들은 대마에 관해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


대마 합법화 시위에 나선 앨런 긴즈버그, 작가 미상



대마, 정말 안전한 약일까



대마의 통제 등급을 낮추기로 한 UN마약위원회의 결정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 WHO는 2019년 열린 마약의존성 제41차 전문가 위원회 회의에서 대마가 동급(Schedule IV)의 다른 마약들보다 덜 해롭고, 의료용 대마의 유용성이 충분히 입증됐다면서 대마의 등급을 하향조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특히 THC가 미량으로만 함유돼 있다는 전제하에, 주로 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CBD에 대한 국제적 통제를 모두 해제해야 한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따라서 WHO의 권고와 UN마약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적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료용 대마 합법화에 관한 한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남은 쟁점은 기호용으로 사용되는 대마, 마리화나의 합법화 여부다. 대마 합법론자들은 대마가 담배나 술보다 덜 해롭고, 의존성도 낮다는 사실을 주된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 역시 대마가 ①담배보다 유해물질(니코틴 등 발암물질)을 덜 함유하고 있고 ②담배와 알코올에 비해 중독성이 낮으며 ③담배 대체제로서 국민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저자의 근거는 부실한 감이 있다. 가령 대마가 폐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없으므로 담배보다 안전하다는 식이다. 또 대마 사용자가 담배 사용자보다 압도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사망자 수를 단순비교하기도 했다. 대마의 해악을 과장하는 일도 없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위험성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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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는 정말 위험하지 않은, 안전한 약일까.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대마의 일부 긍정적인 효과(긴장이완, 식욕증가, 행복감)는 인정하지만, 정신건강에 만성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신 논문인 ‘대마의 정신의학적 영향’에 따르면, 대마는 △공황발작과 정신병적 증상의 원인이 되며 △학습력과 기억력, 집중력 등 인지적 능력을 저하하고 △정신운동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자동차 충돌사고 위험이 두 배가량 증가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삶에 대한 의욕을 낮출 위험이 있으며 △일부는 대마를 끊지 못하고 사용장애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일부 국가들이 기호용 대마를 합법화한 일에 대해 논문의 저자는 ‘이미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대마 사용이 만연한 상태에서 부작용에 특히 취약한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한다. 또 대마 합법화가 사람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것을 우려하며, 올바른 정보가 공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뇌발달이 이뤄지는 청소년기만 아니면 괜찮다’는 식의 반박이 잇따른다. 위 논문의 저자도 ‘대마의 사용이 인지기능에 만성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처음 사용한 연령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논문은 ‘건강한 성인이 적정한 양의 대마를 사용하는 것도 위험한가’에 대한 답은 될 수 없으며, 과학계에서는 지금도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관문(Gateway)인가, 장벽(Gatekeeper)인가?



이미지 출쳐: Pixabay


대마 금지론자들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관문이론’이다. 지금도 각종 대마 규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론인데, 마리화나가 헤로인 등 더 강한 마약으로 향하는 관문(Gateway)이 된다는 내용이다. 관문이론의 핵심 근거는 마약 사용자에 관한 통계에 기반한다. 가령 ‘헤로인 중독자 중 50%가 대마를 사용했다’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인과를 주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다양한 지점에서 공격을 받았다. 우선 동일한 통계에서 헤로인 중독자 중 90%가 술·담배를 했다. 수치적으로만 본다면 술·담배가 관문이라는 주장이 더 그럴싸해 보인다. 이는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라고 억지로 해석하는 데에 따른 오류였다. 헤로인을 사용하는 사람이 대마도 사용하고 술·담배도 즐길 확률이 높은 것이지, 대마나 술·담배가 헤로인 사용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불법 마약 거래 시 여러 종류가 묶여 유통된다는 점도 마리화나와 헤로인 사용을 단순한 인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적에 힘을 실었다.


한편,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국가들은 관문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주요한 시험대가 됐다. 네덜란드는 2003년 대마초 판매를 합법화했는데, 이후 다른 마약의 소비가 유의미하게 줄었다는 보고가 나왔다. 또한 미국에서 대마를 합법화한 주들의 ‘약물 과다복용 사망률 추이’를 들여다봐도 변화가 거의 없었다. 이러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이 나오며 대마 규제사에 한 획을 그은 관문이론은 사실상 폐기된다.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대마가 강한 마약에 손대는 걸 막는 장벽(Gatekeeper)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법적으로 대마가 다른 마약과 동렬로 취급되기에, 이들의 사회적 인식도 연장선상에 서게 된다고. 특히나 대마사범 비율이 높은 국가에서 이런 인식을 심어주는 건 다른 마약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대마를 허용해 잠재적 사용자군이 대마로 만족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국가에서 강한 마약 사용률이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현상은 ‘장벽이론’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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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를 위한 또다른 변명



대마는 안전한가. 대마는 다른 마약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는가. 대마를 둘러싼 굵직한 쟁점들을 살펴봤다. 이보다 관심이 덜하긴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다른 주장도 있다. 대마가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꼽히는 건 무분별한 삼림 벌채와 이로 인한 이산화탄소의 증가다. 환경론자들은 이 중에서도 종이를 만드는 산업에 너무 많은 나무들을 잘라낸다고 말한다. 다시 자라는 데 3-40년이 걸리는 만큼 회복 속도가 파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이다. 이에 대마 합법화 진영은 대마를 원료로 종이를 만들자고 말한다. 대마는 다 자라는 데 100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고, 병충해 내성이 강해 재배하기 쉬우며, 재배 면적도 많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탄소고정량도 많다. 이러한 장점들로 인해 일각에선 제지산업뿐 아니라 섬유, 건축, 원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마 사용량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마가 정말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원료를 대마로 대체했을 때 품질이 유지될 수 있는지는 답해야 할 질문으로 남아있다. 물론 이마저도 정신건강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을 때의 이야기일 테지만.


이미지 출처: Pixabay




무려 20년 전에 출간된 책 『대마를 위한 변명』을 중심으로 현재진행형인 대마 논란을 들여다봤다.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이 책을 향한 여러 비판을 마주했다. 낡은 정보가 있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억지스러운 주장과 ‘아님 말고’식 음모론이 군데군데 담겨있는 걸 발견했다. 특히 이 글에서도 소개한, 자본과 정치, 언론의 합작으로 ‘마리화나 세금법’이 도입됐다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걸로 밝혀졌다. 최신 논문들과 병행하며 비판적으로 수용하려 했으나 비전문가로서 한계가 있었다. 안스링거가 대마를 어떻게든 금지하기 위해 무리한 주장을 했듯, 대마 합법화를 바라는 쪽에서도 무리한 주장을 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대의에만 지나치게 경도될 때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이 퍼지며 대중은 무엇이 옳은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담론이 형성될 수 없고,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전세계적인 합법화 추세와 권위 있는 국제기구들의 결정을 보면, 되려 담배가 곳곳에서 퇴출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어떤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 터널의 끝은 아직 알 수 없다. 의료용 대마 허용을 끝으로 더는 변화가 없을 수도 있고, 저자 유현의 말대로 누구나 자유롭게 대마를 피우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대화하며 더 옳은 방향을 짚어가는 일이다. 부정확한 정보의 유통으로 담론의 토대가 망가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이미지 출처: theglobeandmail


[참고문헌]

· 유현, 『대마를 위한 변명』, 실천문학사, 2003

· 유요안, 주요 국가의 대마합법화 동향과 국내적 시사점, 2022, 동북아법연구, 제15권 제3호, 655-686

· 김병수, 대마의 정신의학적 영향, 2019, 생물치료정신의학, 제25권 제3호, 183-191

· 국민일보, ‘모든 뻐끔은 독’ 경고도… 전세계, 담배와 ‘독한 전쟁’,202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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