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ing
Genie, You're free.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 지니 (genie)의 성우를 맡았던 '로빈 윌리엄스'가 죽은 후 올라온 추모 글이다.<알라딘> 후반 부에 알라딘이 지니를 램프에서 해방시키며 하는 대사다. Good-Bye 가 아닌 You're free로 하는 작별인사는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어릴 적, 잘 알지도 못하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무서워엄마 품에 뛰어들어갔을 때
"오히려 사는 게 더 무섭다." 라던 엄마 말씀이 떠올랐다. 어른이 된 후, 나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는 게 더 편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때 죽음의 의미는 단순했다.
죽으면 쉴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은 역설적으로 삶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죽으면 쉴 테니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괜찮다.'는 이상한 합리화였다. 죽음이 두려운 건 인간의 삶에 유한성이라는 제한을 걸기 때문이지만, 그 유한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저자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말한 진짜 절망은 옆에 있는 가스실도, 배고픔과 두려움도 아닌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점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스실이 옆에 있기에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자살률을 낮췄다고 했다.
그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이 죽음보다 무서울 때도 분명 있다. 오히려 죽음이 있기에 삶을 살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 그래서 내게 '죽으면 끝난다'라는 생각은 삶에 대한 좌절과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삶과 죽음의 무게를 조금 낮춘 느낌에 가까웠다.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그리 나쁜 생각도 아닌 셈이다.
과연 살면서 죽음에 대해 한 번쯤 생각 안 해본 사람이있을까? 나의 죽음이든, 가족의 죽음이든, 지인의 죽음이든 말이다. 개인적인 견해를 먼저 밝히자면, 나는 '죽음'이 결코 어둡거나 무겁기만 한 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는 말처럼, 삶과 죽음은 결국 동전의 앞 뒷면과 같다.결국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던지는 질문과 같다. 외면하고 있을 뿐, 죽음은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피할 수 없는 부모님의 죽음이 그렇다. 어느 날, 칠순이 넘은 아버지께서 "쟤는 아직도 아빠가 젊은 줄 알아." 하며 웃으셨다.
어린 내게 부모님은 전부였고 큰 세상이었기에 그 세상이 저물어간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부모님이 종종 '이제 엄마 아빠는 많이 늙었어, 얼마 남지 않았지.' 하며 잔인한 현실을 호출할 때마다 나는
"뭐가 늙었어? 100세 시대에 아직 멀었구먼. 그것도 엄살이야." 하며 애써 부인했다.
나의 의지와 다르게 하루하루 늙어가는 부모님, 주변 지인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일을 마주하며 언젠가 닥칠일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현실을 꾸역꾸역 인정한 후부터 나의 노년도 보이기 시작했고 죽음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유서 써보기'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어서 한 번 써본 적이 있다.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지만, 꽤 열심히 썼다죽음을 앞둔 내가 무엇을 미안해하는지, 어떤 미련이나 후회를 남기는지 적어보는 일 자체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죽을 때 어떤 마음이 들지 미리 알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무언가 하는 게 낫다고 생각은 하는데, 당장 죽는 게 아니다 보니 여전히 이런저런 핑계로 실행하지 못하는 일이 훨씬 많다. 그래도 조금씩이지만 평소라면 하지 못할 일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이것은 좀 더 내 삶에 욕심을 내는 과정이었다.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내가 내 역할을 잘했는가?" -아우구스투스 (Augustus) 황제
죽음에 관한 성찰과 고민은 아직 진행 중이다. 가끔 우울해지고, 가끔 인정하고, 가끔 후회하면서 말이다. 잘 살고 싶은 마음만큼 잘 늙어가고 싶고, 최대한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특히 죽음은 '아 죽음이 이런 거구나' 하는 순간 이미 난 세상에 없을 것이고, 아무리 후회해도 재정비를 할 수 있는 기회 따위 없을 테니 말이다. 굉장히 허무하고 회의감도 들지만 이게 현실이다. 현실이란 놈은 늘 그렇지 뭐.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말의 의미가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또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가보다.
짜식, 기특하다.
쉴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삶을 또 열심히 살 것이다.
Someday I'll be free.
시든 나뭇잎
꽃들은 저마다 열매를 맺고 싶어 한다.
아침은 언제나 저녁이 되고 싶어 한다.
지상에 영원한 것은 변화와 도피뿐
가장 아름다운 여름도
언젠가는 가을이 되고, 시들해진다.
나뭇잎이여, 바람이 너를 떼어내려고 하면
꼭 붙잡고 조용히 인내하라.
유희를 계속하고, 저항하지 말며
조용히 일이 진행되도록 그대로 두어라.
너의 꼭지를 따내는 바람이
너를 집까지 날려 보내도록 그대로 두어라.
-헤르만 헤세 <어쩌면 괜찮은 나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