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ing
6살 터울인 언니가 예전에 한 광고에서 "금방 서른 되고 마흔 된다 고요."라는 대사가 떠올라 너무 무섭다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 나이가 당시 언니 나이와 맞물릴 때쯤, 그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그 대사가 무섭다는 언니의 말의 의미를 알아버렸다.
나이를 먹을수록 체감 시간은 빨라진다. 20대 때는 삶의 이벤트가 많아서인지 하루하루가 꽉 차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30대 결혼을 하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시간 가는 걸 느끼지도 못했다. 40대가 된 지금, 30대와 속도가 또 다르다. 30대 때는 '이것 보게?' 하면서 흐르던 시간이 40대는 '어?' 하는 순간 사라지는 느낌이다. 막상 그 '힘듦'이라는 녀석과 다투는데 집중할수록 긴 시간 감각은 점점 옅어진다. 일 년이 한 달같다. 30대는 30km, 40대는 40km로 점점 가속이 붙는다는 말이 더 이상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나이에 쫓기지 말자. 상황은 내가 만드는 거야. 내가 만드는 상황에 내가 쫓기지 말자.
죽고 사는 문제가 없는 한, 지금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급한 건 내 마음일 뿐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그 시절 이야기를 했다. 한참 추억에 잠겨있는데 친구가 조용해지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야, 그게 벌써 20년 전 일이야?"라고 해서 스릴러 급 공포를 살짝 경험했다. 고등학교 시절은 자주 이야기를 꺼내서 그런지 멀게 느껴지지 않다가 갑자기 '현타'를 느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를 외치고 다닌 게 어제 같은데 솔직히 이제 그렇게 외치지 못하겠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지금 너희는 그 자체로 빛이 난다.'는 말이나 '공부도 때가 있다'는 말에 그땐 그냥 우리를 달래려고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선생님과 비슷한 나이가 되고 보니 그 말에 공감됐다. 조잘거리며 지나가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하려 해도 체력도 상황도 예전만큼 받쳐주질 못한다. 절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 훨씬 많은 의지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게 시간적 여유든, 체력이든, 돈이든 말이다.
"나이 들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수동적으로 수용하거나 비관하는 것이 아니다. 그 허무를 적극적으로 삶 속에 끌어안고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가식 없이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려는 순수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강선영 <흔들리는 나이, 마흔>
40대라는 나이가 이런 나이인 줄 몰랐다. 마흔이 서른과 또 다른 영역임을 새삼 깨닫는다.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좀 더 준비가 됐을까? 모든 40대가 겪는다고 할 순 없으니 그것도 말이 안 된다.
결국 내가 생각해야 될 것은 하나다. 어차피 먹는 나이라면 자알 먹겠다고 말이다. 낯설고 새로움에 두려움을 갖지 말고 잘 소화해야겠다는 것. 그거 하나만 생각해야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좋은 점은 점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이제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 알아가기 시작한 새내기의 과도기일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더 익숙해지고 더 단단해질 일만 남았다.
'금방 50되고 60 된다고요'라는 말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 또 새해가 다가온다. 내년 이맘 때는 올해보다 좀 더 즐겁게 한해를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하며.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