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일본의 야후, 미국의 스택오버플로우, 그리고 '인간'지능의 미래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
방송인 홍진경 님이 과거 지식인에 남겼던 “키 멈추는 법 알려드릴게요” 같은 글부터, 유력 정치인들의 20년 전 ‘이불킥’ 감성 답변들이 만천하에 공개됐으니까.
네이버는 “업데이트 중 발생한 오류”라며 부랴부랴 롤백했지만, 이미 캡처본은 돌고 돌았다.
유명인은 울상이고, 대중은 웃고 있는 이 해프닝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IT 업계의 생존 본능이 꿈틀거린다.
네이버가 우리나라 고유 인공지능(AI) 모델을 뽑는 '국가대표 AI' 1차 평가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맛봤다고 해도, 여전히 네이버는 한국 기술 기업의 선두주자이다.
하지만, 한국어라는 고유의 장벽 뒤에 숨어서 간신히 견디던 네이버가, 거대 언어모델(LLM)이라는 다국어 AI의 등장으로 인해 서비스의 근간부터 뒤흔들리고 있다.
특히 동종업계(?)라고 볼 수 있는 구글이 AI 공세의 선봉장 중 하나라는 것이 더욱 두렵고, 여전히 비즈니스 모델이 확립되지 않은 AI업계도 결국은 광고 수익 모델로 귀결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네이버를 더욱더 궁지에 몬다.
결국 이번 사건은 단순히 연예인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아니다.
생성형 AI가 검색 시장을 집어삼키는 시대, ‘데이터 주권’을 지키려는 국산 플랫폼의 처절한 몸부림이 빚어낸 참사가 아닐까. (정보 유출 사고를 옹호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왜 하필 지금, 네이버는 유명인의 실명 프로필과 과거 지식인 활동을 연동하려 했을까?
그건 바로 ‘지식(Fact)’의 시대가 가고 ‘맥락(Context)’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과거엔 "사과 껍질 음식물 쓰레기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 그건 챗GPT나 구글 제미나이가 순식간에 알려준다.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고 사람들에게 구박받을 일도, 부끄러운 질문을 적을까 말까 망설일 필요도 없다.
네이버의 검색 점유율이 야금야금 갉아먹히고, 검색 플랫폼으로서의 성능도 부족하니, 네이버가 택한 전략은 지식인을 ‘지식 데이터베이스’에서 ‘오픈형 관심사 커뮤니티’로 전환하는 것.
기사에서도 언급된 새로운 서비스 ‘뉴잇(New it)’이나 ‘피드형 개편’이 그 증거다.
이제 "누가 대답했느냐"가 "무엇을 대답했느냐"보다 중요해졌다.
AI는 정보를 조합할 순 있어도, ‘홍진경 님이 직접 겪은 경험’이나 ‘현직 변호사의 실전 노하우’라는 권위와 서사는 만들어낼 수 없으니까.
네이버는 익명 뒤에 숨은 ‘진짜 인간’을 끄집어내어 AI와 차별화된 ‘휴먼 터치’를 팔고 싶었던 거다.
그 과정에서 코드가 꼬여 흑역사까지 강제 소환된 게 문제였지만, 방향성 자체는 AI 시대에 플랫폼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였을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흥미로운 발상이고, 네이버의 강점을 잘 활용한 서비스 개편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AI시대의 고민은 네이버만 짊어진 게 아니다.
전 세계 개발자들의 성지, 스택오버플로우(Stack Overflow)는 지금 더 심각한 실존적 위기에 처해 있다.
개발자라면 누구나 알고, 누구나 사용하던 커뮤니티. 에러 코드를 복사해서 구글링하면 스택오버플로우가 나오고, 거기서 해답을 얻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 그냥 커서(Cursor)나 구글의 안티그래비티(Antigravity), 코덱스(Codex)와 같은 AI 코딩 툴에서 바로 AI에게 질문한다. 그 결과, 스택오버플로우의 트래픽은 완전히 박살 났다.
(물론 몇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과 스택오버플로우의 폐쇄적인 커뮤니티, 일명 '고인물'의 영향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인류와 AI가 앞으로도 발전해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발생한다.
AI들이 그 똑똑한 코딩을 할 수 있는 건, 십 수년간 스택오버플로우 유저들이 무보수로 쌓아 올린 질문과 답변을 긁어다 학습했기 때문이다.
스택오버플로우는 결국 백기를 들고 적과의 동침을 선택했다.
오픈AI(OpenAI)와 파트너십을 맺고 공식적으로 데이터를 유료로 넘기기로 한 것이다.
당연히 유저들은 분노했다.
"내 지식을 팔아먹다니!"라며 자신의 글을 삭제하는 시위가 벌어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스택오버플로우는 이제 고수들이 하수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는 '인류애'의 장이 아닌, 'AI가 학습할 정제된 데이터를 검증하고 공급하는 하청 업체'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것이 바로 AI시대에 데이터 플랫폼이 맞이할 암울한 미래의 시작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어떨까?
미국의 야후는 한 물간지 오래지만, 일본의 야후는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그룹이 직접 운영하기에, 여전히 일본 국내 최고의 플랫폼으로써, 한국의 네이버와 거의 비슷한 포지션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일본 야후에도 한국의 네이버 지식인과 쌍둥이 같은 서비스 '야후! 치에부쿠로(Yahoo! 知恵袋)'가 있는데, 네이버 지식인이 2002년, 야후 치에부쿠로가 2005년 서비스 시작이니, 지식인이 몇 년 선배인 셈이다.
참고로 치에부쿠로는, '지혜 주머니'라는 뜻.
한국에도 유명하듯 일본어는 ‘혼네(본심)’와 ‘타테마에(겉치레)’가 섞인 고맥락 언어다.
"家に帰ると妻が必ず死んだふりをしています(집에 들어가면, 와이프가 늘 죽은 척을 해요.)" 같은 야후 치에부쿠로의 전설적인 질문처럼, 인간의 미묘한 감정선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들이 넘쳐난다.
이런 인간적인 '문맥'은 AI가 가장 흉내 내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래서 주로 영미권에서 만든 AI들의 일본어 작문 실력이 열등한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AI가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 문맥과 뉘앙스, 감정까지 학습하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가장 ‘비효율적이고 감정적인’ 인간들의 대화가 비싼 값에 팔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형식지(形式知/Explicit Knowledge)’의 시대는 가고 ‘암묵지(暗黙知/Tacit Knowledge)’의 시대가 온다.
일본에서 대형 엔터기획사 '요시모토 흥업'의 전 회장, 오오사키 히로시의 최근 인터뷰가 떠오른다.
"디지털로 보고 읽는 것은 인간이 AI를 따라갈 수 없다. 앞으로는 리얼한 경험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온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 매뉴얼, 코드 문법 같은 형식지(形式知)는 이제 AI의 영역이다.
계산 속도나 저장용량, 작문의 속도 등은 이미 인간이 AI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글이나 말로 옮기기 힘든 노하우, 뉘앙스, 크게 다쳐보고 깨달은 직관 같은 ‘암묵지’는 여전히 인간의 뇌 속에만 있다.
네이버가 욕을 먹어가며 실명 프로필을 연동하려 한 것도, 스택오버플로우가 유저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AI 기업과 손잡은 것도 결국 이 ‘검증된 인간의 암묵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다.
앞으로 온라인에서 ‘익명성’은 점점 사라지거나, 익명일 경우 그 데이터의 가치는 스팸과 동등한 취급을 받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된 상태에서 내뱉는 한마디가 진짜 정보로 대접받는 세상.
AI시대는 동시에 개인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번 네이버 사태를 보며 단순히 "그 유명인의 흑역사 어떡해"라고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그 흑역사조차 AI가 탐내는 데이터가 되는 세상, 우리는 이제 ‘나라는 인간의 고유성’을 어떻게 증명하고 값을 매길지 고민해야 한다. 대형 플랫폼들은 이미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으니까.
미우나 고우나 한국 최고의 IT기업이자, 국산 검색 플랫폼의 최후의 보루인 네이버가, 미국과 중국의 AI세력들의 맹공을 어떻게든 견디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 상황을 앞으로도 마음속으로나마 응원하며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