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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캘리포니아를 떠나야 한단다

by 자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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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초, 플로리다에 있는 올랜도 디즈니랜드를 종종거리며 누빌 때만 해도, 마이애미 비치에서 뛰어노는 세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볼 때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6월 25일,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앞으로 닥칠 일은 알지도 못한 채, 나는 남은 방학 동안 아이들의 액티비티를 고심하고 있었다. 당연히 캘리포니아에서 말이다. 하지만 2주 뒤, 우리 부부는 미국 지도를 펼쳐놓고 '당장 어느 주로 떠나야 할지' 고심해야 했으며, 다시 그로부터 2주 뒤에는 부동산 사이트에 우리 집 사진이 떡 하니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2주 뒤에는 캘리포니아를 영원히 떠난다. 사람 일 참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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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캘리포니아를 떠나야 해."

도현이 폭탄선언을 한 건, 플로리다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왜?"

야반도주라도 해야 하나. 무슨 일을 저질렀나. 회사가 망하나. 갑자기 캘리포니아를 떠야 한다니. 그전에도 한국에 갈지도 모른다는 둥, 일본에 가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둥, 런던은 어떠냐는 둥 여러 말들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긴 했다. 자주 있었다. 하지만 늘 목적지가 분명히 있었다. 무작정 여기를 떠야 한다는 이런 식은 아니었단 말이다.


듣자 하니 상황은 이랬다. 당시 도현의 회사는 한국, 일본, 미국에 사무실이 있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회사였기에 미국 캘리포니아가 본사였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오히려 덩치가 커졌다.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도현은 일본으로 상장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판단한 모양이다. 그래서 본사를 일본으로 바꿨고, 이때 한 가지 문제가 생긴 거다. 바로 회사 대표가 캘리포니아에 거주할 경우 세금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있다는 문제. 그것도 엄청난 세금이! (본사가 일본인데도 대표가 캘리포니아에 여전히 거주할 경우, 캘리포니아주는 회사의 실질적인 경영이 캘리포니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회사의 전체 또는 상당 부분의 소득에 대해 '캘리포니아 주 소득세'를 납부할 가능성이 있다.)


들어보니 납득이 간다. 세금으로 전재산을 탕진할 수는 없으니, 뜰 수밖에.


KakaoTalk_Photo_2025-10-10-11-35-14.jpeg 이사를 나갈 때에야 집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

도현은 세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갈만한 다른 주)을 내밀었다. 그중엔 플로리다도 있었는데, 우리가 갔던 시기에 날씨가 좋지 않았던지라 그곳은 깔끔하게 제외되었다. 추운 곳도 싫었다.


"그럼 텍사스로 가자."

내가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자리에서 텍사스 이주를 결정한다. 나는 사소한 물건 고를 때는 온갖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내려놓고 말지만, 이런 큰 결정은 좀 빠른 편이다. 그리고 스트레스도 그다지 없다. 결정됐으면 하면 되는 거니까.


텍사스 달력을 보니 8월 초에는 개학을 한다. 중학교에 올라가는 첫째를 생각하니 하루라도 빨리 떠나서 개학할 때 학교에 보내는 게 최선으로 보였다. 이미 7월이었다. 빨리 갈 집을 알아보고, 살던 집을 정리해야 했다. 이제부터는 속도전이다.






이주결정 +2일 살던 집을 렌트주기 위해 전문업체를 만났다. 우리가 옆에서 관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관리해 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문제가 생긴다. 변호사 말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겠다'는 여지를 주면 안 된단다. 그러니 집을 팔으라 충고했다. 젠장.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동시에 텍사스에서 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달라스를 찾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를 떠나던 시기였고, 그 덕에 달라스에 매물이 나오는 족족 사라지고 있었다. 물리적인 한계도 있었기에, 원격으로 움직이는 우리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매물들을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조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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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결정 +5일

집을 팔기 위해 여러 중개업체를 만나며 업체를 선정했다. 결정된 업체와 차후 일정을 논의했다. 동시에 이삿짐 업체를 알아봤다.

여전히 이사 갈 집은 구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밤, 도현이 '자기 친구 휴스턴 어디 산다고 했지?'라며 물어왔다. 이 질문 하나가 일생일대의, 뒤에는 후회하게 될 결정을 하게 만든다.



이주결정 +12일

집에 온통 비닐이 씌워지고, 더러워진 벽에 새로운 페인트가 칠해진다. 처음엔 부분적으로만 하려고 했지만, 집에 같은 색의 페인트가 없었다. 망했다. 결국 거실과 안방 전체를 새로 칠해야 했다. 덕분에 작업은 밤까지 이어졌고, 돈은 다섯 배쯤 더 내야 했다.



이주결정 +14일

원래는 요세미티로 가족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 우리 인생이 이렇게 방향을 틀 줄은 몰랐으니까. 예정대로라면 함께 짐을 싸고 룰루랄라 신나게 거길 갔어야 했는데... 그러면 망한다. 지만 다 같이 있어도(방학에 애 셋과 집에 있었으니) 망한다. 그래서 일을 나누기로 했다. 도현이 애 셋을 데리고 예정대로 요세미티로 가고, 나는 홀로 남아 일을 싹 처리하기로. 나는 평소에 빠른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럴 때는 놀라울 만큼 빠르다. 혼자 집에 있던 짐들을 모두 정리하고, 책들을 박스에 담아 차고에 쌓아두었다. 여러 군데 들러 인테리어 소품을 사고, 집을 꾸몄다. 일명 스테이징 작업. (변신한 집의 모습을 보며 진작 이렇게 하고 살걸 얼마나 후회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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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결정 +19일

사진사가 집으로 와서 집 사진을 찍었다.


이주결정 +20일

여러 부동산 사이트에 드디어 우리 집 사진이 올라갔다.


이주결정 +21일

클리너를 불러 집을 청소했다.


이주결정 +22일

7월 24일부터 25일까지, 주말 동안 오픈하우스를 진행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다.


이주결정 +24일

집의 새로운 주인이 결정됐다.


이주결정 +32일

이삿짐 회사가 짐을 패킹했다.


이주결정 +33일

2021년 8월 4일, 이삿짐 회사는 짐을 싣고, 차량 운반 트럭은 우리 집 차 두 대를 싣고 텍사스로 출발했다. 그리고 이 날 우리 다섯 식구는 6년간 살았던 캘리포니아를 떠났다. 달라스를 경유해 휴스턴 인근의 호텔방에 누운 건 밤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주결정 +36일

3일 만에 이삿짐과 차가 도착했다.


이주결정 +37일

이틀에 걸쳐 나 혼자 이삿짐을 정리를 끝냈다.




슈퍼우먼처럼 혼자 짐을 싸고, 풀면서 나는 그다지 힘든 줄도 몰랐다. 원래 힘든 내색을 하는 편도 아니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은 도와달라는 말도 잘하지 않는다. 이 미련한 성격이 기어이 문제를 만든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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