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무더운 여름을 대비해 자그마한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들였다.
다양한 아이스크림을 그득히 채워놓으며 괜시리 마음이 든든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인기 있는 건 일명 ‘손흥민 아이스크림’.
손흥민 선수의 얼굴 사진이 떡하니 붙어있어,
축구를 좋아하는 남학생들에게는 훈장처럼 여겨지는 듯했다.
맛도 좋아서, 선택이 어려운 친구들에게는 내가 먼저 권하기도 했다.
초여름 저녁, 나와 세 딸은 산책을 즐기곤 했다.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 가게에 들러
불도 켜지 않은 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꺼내 물었다.
우리는 달빛 아래에서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마냥 행복해했다.
그땐 몰랐지만 이런 게 찐 행복이 아닐까.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그런 추억의 조각들이 영원토록 기억되길 바라 본다.
하지만 마냥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아이들 하교 시간이 가장 바빴기에, 정작 우리 아이들을 챙길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첫째 서안이는 친구들이 가게에 오는 게 영 불편한 눈치였다.
나는 왜 간식 가게를 운영하면 서안이가 가장 기뻐할 거라 생각했을까.
딸의 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야속한 엄마였으리라.
철없는 엄마는 오히려 엄마 맘도 몰라준다며 서운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곤 했다.
아이의 마음을 더 알아줄 걸, 좀 더 귀 기울일걸.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창 바쁠 시간에는 딸들이 가게에 와도 왔는지 모르고, 가도 가는지 몰랐다.
아직은 어린 1학년 둘째 서진이에게 막내를 맡기고, 집으로 보내는 날도 숱하게 많았다.
그 작은 뒷모습을 보며 삼킨 눈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 손이 닿아야만 안심이 되던 아이들인데,
이젠 내가 옆에 있어 주지 못한다는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나마 잠시라도 얼굴을 볼 수 있고, 언제든 엄마에게 올 수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되었다.
더위는 체력도 앗아갔다.
화장실을 가려면 가게를 비워야 했기에 일부러 물을 마시지 않았다.
점심을 먹으면 일할 때 불편 할까 봐 점심도 걸렀다.
평소 앓던 위염이 자꾸 고개를 들이밀었다.
너덜너덜해진 내 몸의 일부가 자기 좀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결국 병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게를 닫을 순 없었다.
일하는 동안은 약으로 버티고 일이 끝나면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았다.
그래도 행복 회로를 돌리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었다.
무덥고 지친 여름날, 가게 문을 닫고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그 밤의 기억처럼.
삶은 쉽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뜨거운 사랑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고마워, 핫도그 안에서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