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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회사에서 터져 버린 아빠

무게에 짓눌려 마비된 감각들과 오열

by 가은이 아빠

병원을 다녀오면 정말 심경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모든 걸 잊기 위해 전투적으로 일했다. 전투하듯 일하면 잠깐 가은이 병을 잊었고, 그렇게 리프레시된 상태로 돌아가 아내를 다독였다. 그게 그 당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었고, 꽤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위로가 필요한 이는 비단 아내만이 아니었다.


양가 부모님들, 누나, 처제까지 — 모두가 ‘가은이’의 이름 아래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 모두가 슬퍼할 때, 누군가는 더 힘을 내야 했다. 당연히 나는 그 역할을 감당하고자 했다. “괜찮아, 괜찮아” 입술 사이로 중얼이며 내 멱살을 붙잡고 하루하루 버텼다. 그러다, 회사에서 사실 내가 반쯤 쓰러져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갑자기 예정된 중국 출장을 취소하며 쓴 장기 연차. 사무실에 사람들은 말은 안 했지만 걱정의 시선으로 나를 바로 보고 있었다. 하루는, 같은 팀에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가 나를 붙잡고 말했다.


“대체 가은이한테 무슨 일이에요?”


아이가 아프다는 정도만 알고 있던 그녀는, 말 못 하는 나의 눈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바로 울기 시작했고, 나도 그 모습에 더는 참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미 쏟아져 내리는 눈물. 사람들이 꽉 찬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면 멈출 줄 알았는데, 마치 부서진 수도꼭지처럼 눈물은 더 쏟아졌다. 지하에서도, 계단에서도 꺼이꺼이 울고 또 울었다. 이제까지 참았던 눈물이 다 쏟아질 때까지 울고 나서야 느낌이 왔다.


나는 고통의 크기에 비해 너무 오래 ‘괜찮을 거야’라는 주문으로 나 자신을 세뇌시켜 왔고, 마비시켜 버린 내 감각에 돌봐줘야 할 내 감정들을 내팽겨 치고 있었다. 가은이 처음 입원 시점에,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협진 형태로 부모의 정신 건강도 미리 점검해 줬었고 부모에게 꾸준한 정신관리의 필요성을 알려줬던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날 나는 퇴근하며 지체 없이 양재역의 한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에게 먼저 내 상황을 설명해 줬다. 아무런 말도 없이 계속 듣고만 있던 그가, 갑자기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은이 머리를 밀어줄 때, 어떤 감정이셨나요?” 남자의사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슬프진 않았어요. 그냥, 치료과정이고 해야 하는 일이었죠.”


그 순간 잠깐의 침묵 후, 의사가 조용히 말해줬다. “누가 겪어도 속상하고 슬픈 일입니다. 본인에게도 슬픔을 허용해 주셔야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무너지면 가은이도 지켜주지 못할까 봐, 내 감정을 마비시켜 철저히 감췄음을 다행히 그날 완전히 깨달았다.


우리 공주님의 탈모가 아빠인 나에게 너무 가슴 찢어지는 아픔이었지만 나 자신에게 그날만 슬픔을 허용했나 보다. 그리고 이제야 그 슬픔은, 결코 외면하거나 억누를 감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돌이켜보면, 단지 하나의 사건일 것 같지는 않다. 하루하루 수많은 감정들이 올라오고 있었을 텐데, 소화할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회피했던 것 같다.


사실 살면서 내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잘 다독거리며 살펴줘야 한다고 배워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땐 그래도 넌 남자니까,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 이제 너는 어른이니까!


근데 과연 이게 맞는 말일까? 남자도.. 어른도... 단지 수많은 감정을 느끼고 사는 한 사람일 뿐인데! 어떻게 보면 이 사건은, 앞으로 나를 돌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나부터 나를 돌봐주기로 결심했다. 아빠가 웃고 남편이 웃어야, 우리 가족 모두가 더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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