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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 대해 협소했던 내 편견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전선에서 기꺼이 싸우는 이들

by 가은이 아빠

어김없이 가은이에게 3번째 항암치료를 받을 시간이 다가왔다. 한참 폭풍성장이 진행될 시기에, 악성종양을 공격하기 위해 희생될 가은이의 성장 세포들. 그래도 어린아이에게 독한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너무 걱정되는 우리에게 정말 다행인 소식이 있다. 그건 바로 '안동맥'이라는 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표적 항암치료를 이번에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구 안에 퍼져 있는 동맥 혈관을 찾아 항암제를 직접 투여하는 방식으로, 전신 마취 후 수술방에 의사만 3명이 들어가 1시간 넘게 진행되는 고난이도 치료다. 과거에는 가은이의 병이 발견되면, 사실상 안구적출 말고는 치료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방법이 도입되었고, 그 결과 안구보존율이 14배 높아졌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새로운 치료를 경험하게 되었다. 입원 후 예정 된 전신마취를 하고, 가은이는 침대에 홀로 남겨져 수술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은이를 위해 기도하며 초조하게 기다리던 와중에, 다행히 다행히 치료가 잘 되었다며 공주님이 수술실에서 나왔다. 많이 무서웠는지 엄청나게 울지만, 환자는 병실로 안전하게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엄마~엄마'를 외치는 가은이를 안아줄 수는 없었다.


다행히 병실로 안전히 이동했고, 그제야 엄마가 가은이를 마음껏 안아 줄 수 있었다. 동맥 출혈 방지를 위해 모래주머니로 사타구니 안쪽을 1시간 동안 더 눌러주고 조심스래 가은이 눈을 확인해 보았다. 독한 약물이 가은이 안구에 들어갔지만, 다행히 출혈이나 마비등의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기한 건 기존치료와는 다르게 가은이 몸이 축 처지지도, 수반되는 구토와 변비도 없다.


간단한 검사들을 끝내고, 퇴원을 했고, 정상적으로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너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설마 치료가 제대로 안된 건 아니겠지?"라는 사치스러운 걱정과 의심이 함께할 정도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2024년 한 해 의료파업에 대한 얘기가 정말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응급실을 찾았으나 치료를 받지 못해 생기는 비극들에 대한 뉴스가 쏟아지며, 자연스럽게 의대정원 확대 이슈로 정부와 대치하는 의사들에 대해 어느 순간부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

병원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갑 오브 갑

의사윤리강령은 잊어버리고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피부과, 성형외과 의사


솔직히 무엇이 나에게 이렇게 큰 피해의식과 부정적인 시각을 만들어 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플 때면 따듯이 치료해 줬던 선생님들도 많았고, 그리고 따듯한 명의를 TV에서 많이 보고 감동받고 했었는데 무엇에 홀린 듯 바라보는 관점이 뒤틀렸던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이 분들이 '안동맥'이라는 새로운 치료를 개발하지 않았다면 우리 가은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소아암 병동에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며,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전선에서 기꺼이 싸우는 이분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의사 선생님도, 간호 선생님도 모두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 주신다. 아이들의 희망적인 미래를 열어주고자 누구보다 열정적인 에너지를 쏟아 붙고 계신 걸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그리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하늘나라로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순간이 그분들에게도 오는데, 그 고통을 직면하는 순간을 나도 가끔씩 옆에서 지켜본다.


'내가 지키지 못했다'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죄책감 가지시면 못 사실 것 같은데!

만약 이분들이 힘이 빠지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이분들이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워주시는 게 정말 고귀한 노동이고 감사한 일이구나


의사에 대해 협소했던 내 편견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반성하게 된다. 마치 내가 아는 마냥 착각하고 있었나 본데, 나는 단지 이 세상에서 정말 고귀한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을 못 뵈었던 거다.


병원에 갈 때마다 감사하다고 말씀은 드리지만, 이 자리를 빌려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치료해 주시는 진짜 의사, 간호사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어른이 되고, 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인 양 생각하며 살아가던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




< 출처 : 의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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