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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뭉 Apr 20. 2018

※주의※ 이 글에는 자기 자랑이 많습니다.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기억이 난다. 7세 의뭉은 한글을 쓰지 못하는 아이였다. 보편적으로 보면 늦은 나이였다. 하늘반 친구들은 이미 얼추 대단한 문장 구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영어 알파벳을 쓰는 친구들도 있었다. 7세 의뭉은 하늘반 친구들과 쫑알쫑알 말도 잘하고 동요 시간에는 제일 앞 줄에 앉아 율동도 하고 잘 따라 불렀지만, 결정적으로 쓰지 못했다.


    의뭉에게 굴욕감을 안겨준 날이 있었다.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날이었다. 남들이 색연필, 사인펜을 쥐어 글씨를 적을 때 의뭉은 크레파스를 들어 그림을 그렸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글로 적는다’는 관념이 의뭉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편지는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것이 당연했다. 친구들이 뭘 하는 지 살짝 볼 새도 없었다. 그림만으로는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움도 없이 그리기에 열중했다.


    편지를 교환하고 나서 의뭉은 크게 놀랐다. 알아볼 수 없는 형태의 말들이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읽을 수 없는 글자 앞에서 무력해졌다. ‘소풍 가자’는 의미를 전달하려고 구름, 나무 몇 그루, 친구들을 그렸으나 친구들은 그림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주절주절 설명이 필요했다. 의뭉은 편지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원하는 바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의뭉의 그림 실력이 형편 없기 때문이 분명하다. 그림으로 더 잘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의뭉은 속상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결의에 찬 눈빛을 하고 있는 딸 아이에게 당장 구몬 선생님을 구해주었다. 속성으로 일주일 만에 한 글을 깨쳤고, 원없이 읽고 원없이 썼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 글을 쓰고 읽지 못해 굴욕감을 느낀 이후로, 의뭉은 좀처럼 언어 구사 부분에서 남들보다 뒤쳐지는 일이 없었다. 학교 대회, 도 대회에서 작문, 논술로 상을 타는 일이 잦았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면 “내가 시인을 낳았나 싶었다”고 한다. 부모는 보통 자식의 능력을 객관화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기 바란다.


    의뭉은 커가면서 주위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에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감정을 다루려면 언어로서 감정을 포착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어려워했다. 자기가 무엇을 느끼는지 설명하지 못해 입은 다물고 울음을 터뜨려 버리는 친구들이 많았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름 또래 집단에서 상담가를 맡고 있었던 의뭉은 친구의 상황에 이입하거나 과거 자기 상황을 떠올려 감정을 글자로 나타내는 연습을 자주 했다. 울음을 터뜨려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언어로 표현해주었을 때 비로소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면할 수 있었다.


    기억이 난다. 예전에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말을 잘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개인의 성장속도를 평균적인 기준에 맞출 수 없지만, 아이 스스로 말을 못하는 것을 답답해 했으니 그건 분명 큰 문제였다. 그때 아동 발달 상담사가 했던 말이다.

"단어를 가르치세요. 언어 능력이 자존감을 결정합니다."


    충격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그 말을 곱씹고 있다. 인간의 언어 능력이 어떻게 자존감을 결정하는가. 언어가 어떻게 인간을 바꾸어 놓는가. 나는 왜 이렇게 자기 표현에 집착하는가.


    머릿속에 뭉게뭉게 발산적으로 피어나는 관념을 언어로 구체화하여 쓰고 말하는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행위다. 내가 나다움을 마음껏 내비칠 때에야 나를 실현할 수 있다. 내 말과 글을 나에게서 떠나 보내면 타인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타인은 인식한다. 문제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말해도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가 곧이 곧대로 이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를 인식시키기란 그렇게 어렵다. 두어 본 적 없는 내 자식 같은 표현들을 멋대로 왜곡한다. 그래서 내가 더 잘 말해야 한다. 더 똑바로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그래야 나를 실현할 수 있다.


    아. 3년 전 그 상담사가 했던 말이 이제야 이해 됐다. 맞다. 인간의 언어적 능력은 자존감과 크게 연결된다. 언어는 표현을 위한 매개이므로 인간의 표현 능력이 자존감과 연결된다고 말하면 더 정확하겠다. 그러니까 그림 실력이 의뭉보다 좀 낫다면 그림도 포함되는 것이다. 음악도 수학도 온갖 별천지가 다 자신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가장 본질이 언어인 것 같기는 하다.


    언어라는 그릇이 사물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통찰을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작으면 우리는 그 인식과 통찰을 마주할 수 없다. 남에게 의사를 전달하기도 전에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용하는 언어만큼만 인식 수준이 발달하는지도 모르겠다. 언어의 외연을 확장할수록 나와 세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오늘도 의뭉은 자판을 타닥타닥 두드린다.


+

의뭉의 그림 실력은 여전히 형편 없다.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기억이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아주 작고 사소한 기억이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모두 적어본다. 그러다가 중요한 기억이나 선명한 기억이 떠오르면 바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어 내려간다. 만약 막히면 '기억이 난다'라는 첫 구절로 다시 돌아가 계속 적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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