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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프 Jun 18. 2021

잡플래닛 2.0점의 회사에 다니는 사람

동료의 요청으로 '잡플래닛' 이란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첫 직장을 준비할 때 빼곤 처음 접속해보았으니, 근 4~5년 가까이 된 듯하다. 거두절미하고,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을 검색해보았다.  

'2.0점' 

짜란! 시력입니다.


실소가 절로 나왔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글도 예전 글들이 많았지만 보고 있자니 참으로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우리 회사의 리뷰를 보면서 느껴진 가장 큰 감정은 '냉소'였다. '리뷰'라는 것은 본디 본인이 체험하고 느낀 점을 작성하는 것이다. 헌데, 글을 보고 있자면 작성자들은 마치 CCTV처럼 모든 것을 감시하는 '빅브라더'인 것 같다. 모든 사건은 인과관계가 있기 마련인데, 원인은 없고 결과만이 적시되어 있다.


이런 내용이 있었다. '대표가 꽂히면 마구잡이로 사업을 벌림. 그러다 망하면 그 인원들은 다른 팀으로 편입됨'

아! 물론,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표는 사업을 벌려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업을 굴릴 돈은 대표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직원들의 주머니는 아니다.) 그런데, 그 사업이 망했다? 과연 누가 제일 답답할까. 

대표 본인이 원하는 곳에 쓰고자 함께한 인재를 굳이 다른 곳으로 배치시켜야 한다면? 제일 아까워할 사람이 누굴까. 

적어도 위 글은 본인을 스스로 그 정도 인재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마치 우연찮게 인형 뽑기에 걸린 인형 마냥 자기를 표현해놓았다. 


그리고 이 리뷰가 와닿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왜 망했는지'가 없다. 분명 실무자가 쓴 글일 텐데, 정작 본인은 멀찍이 서서 관전만 한 것처럼 써놓았다. 나라면 내 노력이 무산된 것에 화가 나, 내가 얼마큼 노력했는데 이 노력이 어떤 이유로 물거품이 됐는지에 대해 보다 열변을 토할 것 같다. 

다만 나는, 어느 순간 불명의 이유로 이 사람은 회사를 위해 일할 마음이 많이 사라졌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회사를 '다니다'(다니는 것과 일하는 것은 다르다.) 떠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을 뿐이다.


누군가는 위 내용을 보고 나를 '노예'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역시 저 리뷰의 감정과 같은 냉소를 가진 시기가 있었다. 나는 정작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했으면서, 남들의 노력만 값싸게 평가하는 그런 경험. 이 냉소라는 감정은 생각보다 정말 편리해서 걷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냉소'가 편리한 이유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있어 자기가 바보로 취급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남에게 본인의 것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상대가 먼저 액션을 취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곤 그 행동에 대해 평가를 매기며, '적어도 나는 상대와 동등하거나 더 높은 위치에 섰다.'라는 합리화를 통해 심리적 안도감을 갖는다.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면 적어도 그 사람 보단 많은 전문지식 또는 깊은 내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우리는 이 손쉬운 냉소의 스위치를 켜고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꼬투리를 찾는 것이다. 그리곤 문제에서 하등 중요하지 않은 꼬투리만 잡아내, '봐봐 이런 문제가 있잖아. 내가 몰라서 못한 게 아냐.' 라며 자기 합리화 혹은 시답잖은 우월감에 도취되곤 한다.


더불어, 냉소는 익명성과 결부될 때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사회적인 구조 안에서는 소통의 실시간성으로 본인의 부족함이 쉽게 드러날 우려가 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드러내기 싫어하는 부분들은 감추고, 손쉬운 냉소를 통해 화제를 전환한다.


헌데, 익명의 가면을 쓰면 그럴 필요가 없다. '익명'이라는 두 글자 뒤에서 개인은 한 없이 객관적이고, 초월적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평소 냉소의 감정이 가득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누구도 나의 허물을 모르며, 부족함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만사에 대해 더욱 쉽게 평가하고 자극적으로 표현한다. 더 큰 우월감을 맛보고 싶은 것이다. 


세상이 모두 좋은 사람으로만 가득할 순 없지만, 좋게 행동하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디스토피아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선 지식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용기'. 그리고 저 사람도 나처럼 옳게 행동하려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라 믿는 '용기'. 이러한 용기가 밑받침되어야 스스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 해서 시도할 수 있고, 안되면 깔끔히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구성원이 3명이던 조직부터 2,000명이 넘는 조직까지 경험해 보았지만, 나를 100% 만족시켜줄 수 있는 조직이란 건 흔치 않다. 때문에 만족만을 찾아 방황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계속해서 줄여나가고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 나 스스로와 나의 동료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문제를 관전만 하는 '냉소'는, 본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시기와 권리를 다른 이에게 양도하는 것과 같다. 영웅이 나타나 본인이 처한 난세를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에선 그 영웅 역시 자기 인생 하나 챙기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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