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 아프리카] 정부를 움직인파워트위터리안+비수면 내시경
해외 생활이 길어지다 보면 그 나라의 병원에 갈 일이 생긴다. 몇 해 전 르완다에서 일할 때, 속이 쓰리고 머리가 아파 수도 키갈리의 병원을 찾았던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아는 큰 병원은 (아마도) 르완다에서 가장 큰 병원인 킹 파이잘 병원(King Faisal Hospital)과 조금 규모는 작지만 웬일인지 '국제(International)'가 이름에 들어가는 바호 국제 병원(Baho International Hospital)이 뿐이었는데, 킹 파이잘 병원은 르완다에서 가장 큰 병원답게 항상 환자가 너무 많아서 대기가 길었던 터라 상대적으로 덜 복잡한 바호 병원을 찾았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국인 내과/소아과 의사가 있는 나우리 병원이 개원하기 전 일이다)
역시 예상대로 환자는 없었고, 나는 바로 내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국제 병원'답게 의사는 의사 선생님은 영어로 정확히 문진을 진행했고, 나에게 어떤 검사를 권했는데, 문제는 나의 영어였다. 의사 선생님이 어떤 검사를 먼저 해보고 처방을 해주겠다는데, 대충 피검사나 엑스레이 검사겠거니 하고 덜컥 알겠다고 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문진을 마치고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어떤 검사실 앞에서 잠시 대기를 했는데, 그 검사실에 붙어있던 영어 단어를 검색해보곤 심경이 매우 복잡해졌다.
Endoscopy room. 내시경실.
그때까지 나의 내시경 검사 경험은 수면 내시경 한 번이 다였던 터라 여기서 검사받아도 괜찮을지, 수면 마취를 해주긴 하는 건지, 지금이라도 물리고 도망가야 할지 등의 여러 생각을 하는 사이, 손님이 없던 바호 국제 병원은 내시경 검사 준비를 아주 빠르게 마치고 나를 내시경실로 불렀다.
그때까지 나는 내시경 장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는데, 어떤 소독액에 담겨있는 그 장비는 매우 굵었고, 거기 있는 장비를 보았을 때 비수면으로 진행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문진을 진행했던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고, 목에 스프레이 같은 것을 뿌려 부분 마취를 한 뒤 내시경 검사가 진행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 친절했지만, 내 목을 오가는 내시경의 느낌은 매우 불쾌했고, 아무리 아프리카 공부를 하고 살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인지 '혹시 에이즈에 걸리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자꾸 떠올랐다.
암튼 그렇게 나는 위염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잘 나았다. 당연히 에이즈도 안 걸렸고. 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암튼 하려던 이야기는 '아프리카에서 비수면 내시경 했던 무용담'(내 르완다 생활 최고의 무용담이긴 하다)은 아니고, 오늘 바로 이 바호 국제 병원 트위터 계정(@BahoIntHospital)에 올라온 사과문이다.
병원 이사장 명의로 올라온 이 사과문엔 병원이 고객 서비스를 잘하지 못했음을 사과하며, 환자들의 의견과 보건부의 검열 권고사항에 따라 최상의 고객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사건의 발단은 팔로워 3.3만의 파워 트위터리안 루시 은슈티 음바바지(Lucy Nshuti Mbabazi / @LucyMbabazi)가 지난 10일, "오전 10시에 의사와 예약이 되었다고 해서 갔더니 앞에 8명이나 있는 건 예약이 전혀 안된 거나 다름없어!!"라는 내용의 트위터를 올린 일에서 시작되었다. 이어진 트윗에서 음바바지는 오전 10시 예약이었지만 1시가 되어서야 의사를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처음 트윗엔 주어가 없었지만, 뒤이은 트윗에서 음바바지는 "바호 병원은 쓸데없는 곳이야!"라며 바호 병원을 겨냥했고, 몇 시간 뒤, 바호 병원 계정이 음바바지의 트윗에 아래와 같이 댓글을 달았다.
"음바바지 선생님, 선생님 예약은 10시였지만, 그때 이미 기다리고 있던 환자가 많아서 선생님께서 기다리시게 되었습니다. 만약 선생님의 건강 상태가 긴급했다면 대기하시기보단 응급실로 가시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답변에 음바바지를 포함한 몇몇 르완다 트위터리안(RwOT)이 분노했고, 다른 트위터리안들도 바호 병원의 오진이나 위생상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다음날인 11일, 보건부 장관인 은가미제 다니엘 박사(Dr. Ngamije Daniel/@DrDanielNgamije)가 이 등장해 보건부에서 불만을 잘 접수했으며, 24~48시간 내에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보건부 장관의 트윗 이후 르완다 언론 New Times에 올라온 기사에서 바호 병원의 홍보 담당자는 꽤나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병원의 홍보 담당자인 쟝비에 무냐네자(Janvier Munyaneza)는 New Times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겐 불만과 제안 접수를 위한 전화번호와 고객 서비스 팀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진에 대한 불만이 접수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실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글을 본 뒤 병원 의사와 직원들에게 관련된 내용을 물어보았지만, 그런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고, 나아가 "보건부가 우리를 조사하러 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들은 우리 병원이 얼마나 잘 운영되는지 볼 것입니다. 조사받게 되어 기쁩니다"라며 엄청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바호 병원의 말들은 끝없는 논란을 낳았다. 이 기사가 나간 뒤, 이번엔 르완다 정부 부처로 투자 유치, 소상공인 지원, 관광업 등의 정책을 담당하는 르완다개발위원회(Rwanda Development Board)의 CEO인 클래어 아카만지(Clare Akamanzi/@cakamanzi)가 바호 병원의 태도를 비판하는 트윗을 올렸다.
그로부터 이틀 뒤 아마도 보건부의 조사를 받았을 바호 병원이 사과문을 올리며 한 파워 트위터리안이 쏘아 올린 작은 트윗에서 시작된 사건은 마무리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 문제제기를 했던 음바바지의 트윗은 사실 닷새가 지난 지금도 리트윗이 두 번밖에 되지 않아 이 일이 어떻게 이렇게 커졌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트위터 프로필에 올라온 개인 홈페이지에 서술된 자기소개에 따르면 음바바지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공공정책 석사를 했고, 현재는 Better Than Cash Alliance의 직원인데, 이 Alliance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달성을 위해 현금 사용을 디지털 지불 수단으로 전환하는 일을 하는 국제기구이다. 어쩌면 그의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해시태그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각국의 트위터리안과 유튜버가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소셜미디어의 특성상 곧 지나가고 잊힐 이야기들이 대부분이고, 실제 그 사회에서 회자되는 이야기와는 동떨어져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위터와 유튜브 속 이야기를 통해 지금 아프리카 사람들의 일상을 단편적으로나마 만나 볼 수 있고, 재미도 있어 가끔 소개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