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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사 Nov 03. 2017

그녀가 떠났다

외할머니를 추모하며


찬 바람의 재채기에 듬성듬성 나뭇잎마저 모두 털어버린 나무같아 뵈는 숫자 11.


11월 첫째 날이 맞은 오전 11시,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고통으로 따갑고 쓰라리던 당신의 육신을 벗어나셨다. 회한과 걱정으로 마음 편할 날 없던 당신의 세계를 떠나셨다.


우리는 그녀가 벗어두고 간 살과 가죽 앞에 서 울었다.   


여든일곱 해 동안 그녀를 위해 뛰었던 붉은 심장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단다.


자식 여섯의 쉴틈 없는 불행과 비애에 당신 왼쪽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친 피멍 자국이었을까.


심장 판막 수술 환자가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한다는 혈액 응고 방지약을 언젠가 스스로 끊었기 때문이었을까. 


하루 두 번, 단 한 사람에게 20분씩만 주어지는 중환자실 면회. 할머니가 가시기 전 마지막 면회가 되어버린 기회. 나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홀로 싸우는 고독하고 연약한 사람들 사이로 겁에 질린 채 들어갔다.


수많은 기계 장치와 연결된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할머니. 나는 보랏빛으로 변한 그녀의 차가운 오른손을 잡고 말했다. 


"할머니가 힘든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셨어요."

"할머니, 이젠 흰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세요."

"우리 곧 거기서 다 같이 만날 거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알 수 없는 그래프와 숫자를 냉혹하게 보여주던 모니터는 내 심장 박동과 연결된 듯 이따금씩 가쁜 경고음을 울려댔다.


대답이 없는 할머니에게 등을 보이고 겨우 그 잔혹한 공간을 빠져나왔다. 안녕히 가시라는 미소를 띤 간호사분들과의 극명한 대비에 소름이 돋고 다리 힘이 풀렸다.


할머니의 부고 소식은 그 이튿날, 지방 출장으로 서울에서 창원으로 내달리던 고속열차서 전해 들었다. 

 

나는 빠르게 내려갔고 할머니는 빠르게 올라갔다. 


어제 본 그녀의 마지막 모습, 생전 마지막에 만난 기억, 나에게 당부하던 이야기들이 풍경을 빠르게 뒤로 밀어내던 창 밖에 흐릿하게 비쳤다.


지난달, 할머니와 막내딸인 어머니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뒀었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한옥 호텔에서의 1박이었다.


겨울 양복, 여름 양복 한벌씩으로 버티던 내가 정장 구입을 내년으로 미루고 예약한 선물이었다. 잠시라도 즐겁고 평온한 기억을 하나쯤은 남겨드리고 싶었다.

 

그 방은 결국 다른 누군가의 하루가 되어 버렸다.


할머니가 119로 병원에 실려갔을 때부터 어머니는 예약 취소를 말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실상 호텔로 모실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기적처럼 비가 그친 오늘 오전, 할머니는 어딘가 동산 아래 한 줌으로 묻히셨다. 생전에 눈빛이 반짝하시던 풀과 나무 그리고 꽃들로 가득한 곳이다.



나는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녀가 나에게 남기고 간 일.

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고 행복감을 자주 드릴 수 있는 일.


언젠가 할머니를 만나 내가 한 일을 신나게 이야기드리면 엉덩이를 두드려 주실 떳떳하고 세상에 이로운 일들.


할머니 표현대로 그녀는 팔십 평생 동안 쌓인 '이야기 보따리'를 내게 자주 펼쳐 보이셨다. 다른 사람들에겐 듣기 싫은 노인의 넋두리이자 한풀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꺼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였다.


이제부턴 내가 할머니의 곁으로 가는 날, 내가 그녀에게 들려줄 내 인생의 '이야기 보따리'를 채워 나갈 차례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돕는 일'로 풍성해진 나의 보따리 앞에 먼저 기다리고 계시던 할머니의 환한 미소가 나를 반길 것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멘토이셨던

성정모 할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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