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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Dec 25. 2024

이해와 오해 사이, 거짓과 진실 사이 그 어디쯤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이해와 오해 사이, 거짓과 진실 사이 그 어디쯤 아닐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해한다고 믿으면서 오해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또 얼마나 자주 진실이라고 생각한 것이 누군가의 거짓으로 드러나곤 할까? 내가 이해한 사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해로 보였던 순간들,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거짓으로 밝혀지며 혼란에 빠졌던 순간들은 없었을까? 우리는 언제나 진실에 다가가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오해와 왜곡을 마주한다.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이해와 오해 사이, 거짓과 진실 사이 그 어디쯤 아닐까? 이해와 오해, 거짓과 진실 사이의 모호한 경계, 그 사이에 머물고 있는 인간다움은 과연 무엇일까? 



이해와 오해의 사이 또는 경계


이해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로는 상대방의 말을 헤아리거나 그 뜻을 깨닫는 것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대상, 개념, 상황, 혹은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정의는 철학적, 심리적, 그리고 실용적인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철학적 관점에서의 이해는 어떤 사물이나 개념의 본질과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시간"이라는 개념을 이해한다고 할 때, 그 본질과 특성을 사유하고 탐구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이해는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을 넘어, 그 정보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인지하는 것을 포함한 지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왜 물은 끓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때, 물의 분자 구조와 열역학 원리를 알면서 이를 연결하는 과정이 이해의 개념이다.

 

심리적 관점에서의 이해는 공감적 이해라 할 수 있다.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을 자신의 관점에서 공감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이는 우리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 정보를 해석하고 정리하는 것을 인지적 이해라 한다. 

 

실용적 관점에서의 이해는 어떤 문제나 상황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과정으로, 간단히 말하면 문제해결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이나 기술을 배우고 이를 실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학습과 응용능력을 의미한다.

 

이해는 항상 맥락과 관련이 있다. 동일한 정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사람마다 경험, 지식,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이해에는 주관성이 내포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단순한 표면적 이해와 깊이 있는 이해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과 그 공식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따라서,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서, 정보를 맥락 속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내며, 그것을 자신의 사고 체계 안에 통합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적 탐구와 공감적 연결을 포함하며, 인간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과 타인을 알아가는 핵심적인 능력 중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자신이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 사실은 오해의 씨앗을 심고 있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오해란 무엇일까? 오해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이 개념과 관련된 인간들의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오해는 상대방의 말, 행동, 의도, 또는 어떤 개념에 대해 잘못된 해석이나 왜곡된 이해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정보의 전달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일치로 인해 나타나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가진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때문에 왜곡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의미의 왜곡은 오해의 원인이 된다. 예를 들어 친구가 "오늘 좀 바빠 보여"라고 말했을 때, 이를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비판으로 오해하는 경우는 전형적인 의미의 왜곡이다. 

 

대화나 상황에서 제공된 정보가 충분하지 않거나 모호할 때, 사람들은 스스로 결론을 내리려고 시도하다가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 정보의 불완전성으로 빚어지는 오해이다. 예를 들어 메모나 이메일 같은 비대면 소통에서 문맥 부족으로 인해 메시지가 잘못 해석되는 경우이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이나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의사소통할 때, 특정 표현이나 행동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문화적 언어적 차이가 불러오는 오해이다. 예를 들어 어떤 문화에서는 무례하지 않은 행동이 다른 문화에서는 무례하게 여겨질 수 있는 경우다.


대화 참여자가 분노, 불안, 스트레스 등 감정적으로 예민한 상태에 있으면 상대방의 말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해가 발생하기 쉽다. 전형적인 감정적 요인이 오해를 불러오는 경우다.


이렇듯 오해의 원인은 대부분 불완전한 정보 때문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단편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해석하다 보면 진실과는 먼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이 오해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고정관념, 또는 ‘카더라’를 기반으로 한 잘못된 선입견에 따라 새로운 상황을 해석하기에, 상대방의 진의를 오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친구의 말 한마디가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져 갈등을 낳은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이 이해했다고 확신하지만, 실은 그 이해가 오해였음을 나중에 깨닫는다.


오해와 인간관계 측면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갈등과 불화의 원인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 상대방의 행동이나 의도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반응하여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팀원이 말을 돌려서 했는데, 이를 공격적인 의도로 받아들여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경우이다. 

 

인간관계에서 반복되는 오해는 관계의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서로의 의도를 오판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소통이 단절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오해는 관계를 발전시키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오해를 해소하면 더 깊은 신뢰와 연결이 생길 수 있다. 부부가 서로 오해했던 점을 솔직히 털어놓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더 단단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경우는 오해가 관계를 발전시키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오해를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명확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표현하고, 상대방이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확인 과정에 "내가 말한 게 맞게 들렸나요?"라는 질문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청과 질문은 오해를 줄이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상대방의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의심이 생길 때 바로 질문을 던져 명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오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당신의 말 중 "이 말을 이런 뜻으로 이해했는데, 맞나요?"라고 질문하고 명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오래를 줄이는 방법이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선 감정을 조절하여 정제된 대화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는 감정이 섞인 말이 오가기 마련이고 이러한 말들이 두 세 마디 오가면 바로 오해로 이어진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문화적, 배경적 이해는 오해를 줄여준다. 상대방의 배경, 문화, 가치관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오해를 예방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해는 단순히 부정적인 경험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자기 성찰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오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서로의 관점 차이를 이해하고 더 나은 소통 방식을 배우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의 시각과 자신의 한계를 더 깊이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이해와 오해사이, 거짓과 진실 사이의 중간지대쯤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진실은 객관적일까? 아니면 주관적인 경험에 따라 달라질까? 철학자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이 질문에 답을 던져준다. 동굴 속 그림자만을 보고 진실이라 믿는 이들에게, 진실은 그들이 경험한 세계의 전부일뿐이다. 진실은 때로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거짓은 또 어떤가? 거짓은 언제나 나쁜 것일까? 의도적인 거짓말은 분명 해악을 끼칠 수 있지만, 선의의 거짓은 때로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한다. 예를 들어,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의사의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말은 거짓이지만, 그것이 환자에게 주는 위로와 희망은 진실과도 같다. 거짓과 진실은 이처럼 맥락과 의도에 따라 서로 뒤엉켜 존재한다.


인간관계는 이해와 오해, 거짓과 진실이 공존하는 복잡한 영역이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지만,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완전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보다 오해를 인정하고 대화로 풀어가려는 태도다. 오해를 풀고 이해를 구축하는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거짓과 진실의 경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완벽한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맥락과 의도를 파악하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한 가지 사례로, 한 가족이 오해로 인해 오랫동안 멀어졌다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며 다시 화해한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그 과정에서 오해와 거짓은 사라지고, 새로운 진실이 자리 잡는다.


이해와 오해, 거짓과 진실의 경계는 늘 모호하다. 하지만 그 모호함 속에서도 우리는 성장하고 배운다. 인간다움이란 그 중간지대를 받아들이고,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데에 있다.


이 글을 마치며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그 중간지대에서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 완벽한 이해와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때로는 오해와 거짓을 품고도 서로를 포용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 질문을 통해, 이해와 오해, 거짓과 진실을 넘어서 인간다운 삶에 대해 성찰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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