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 인생을 즐기는 법
2025년 친구들과 후지록페스티벌에 다녀왔다. 후지록 경험이 있는 2명과 함께하는 여정이어서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이 크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 어떤 축제보다 규모가 컸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무대가 3개에 불과했지만, 후지록은 7개에 달했고, 소규모 군소 무대까지 합하면 총 12개였다. 입구부터 반대쪽 끝까지는 약 4km에 달하는 걸어다니기만 해도 한나절이 지나는 정도였다. 올해는 200여개 팀이 이곳저곳의 무대에 올랐다.
어떻게 주어진 2박 3일 동안 동선을 효율적으로 짜고, 어떤 준비물을 가져가야 최적화된 상태에서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어서 여러 정보를 찾았다. 한국보다 더 덥다던 일본의 여름이었지만, 산자락이어서 덜 덥다고는 하지만, 여름은 여름일 텐데. 밤에는 춥다고 하던데, 비가 자주 온다던데, 산길을 걸어야 돼 아웃도어 복장이 디폴트라던데 등등 온갖 카더라뿐이었다. 감사하게도 정성스럽게 후기를 남긴 분들 덕분에 공통 요소가 있다고 해 준비물과 어떤 분위기인지 감은 잡을 수 있었다.
이번엔 내가 후기를 남겨서 남들에게 은혜를 돌려줄 차례다.
보다 체계적으로, 그리고 1년 뒤 2026년 후지록을 앞두고 열렬히 검색과 LLM로 정보를 찾으러 다니는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참고로 내가 후지록을 방문한 조건과 상황은 아래와 같았다.
한국서 에치고유자와역까지의 교통: 도쿄 나리타 공항으로 가서, 도쿄역으로 가서 동일본JR의 조에츠 신칸센을 타고 에치고유자와역으로 갔고, 돌아올 때도 같았다. 에치고유자와역과 같은 현에 있는 니가타 공항을 통한 여정도 있다. 그러나 항공권이 도쿄행보다 비싸고, 편성이 많지 않으니 잘 고민해보길.
숙박 방식: 에치고유자와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서 숙박했다.
캠핑족에 비해 씻는 것이나 취침 환경이 나았다. 그러나 시즌이 시즌인만큼 숙박비용이 1인당 3박에 40~50만원이기에 비용도 만만치 않다.
숙소서 리조트까지의 교통: 숙소-역-셔틀버스-리조트 혹은 숙소-택시-리조트로 이동함. 셔틀버스는 2000엔으로 역에서 리조트로 갈 때 한 번 결제하고 몇 번이고 이용할 수 있다. 재밌는 건 리조트에서 역으로 돌아오는 셔틀은 티켓 검사를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택시로 간다면 돌아올 땐 셔틀을 무료로 탈 수 있다. 이동 시간은 셔틀로 30분, 택시도 같은 길이라 30분 걸린다. 역에서 후지록 셔틀버스 대기줄은 매우 길다. 땡볕에서 1~2시간 줄을 설 수 있으니 엄청 일찍 타거나 사람들과 택시를 타는 것도 좋겠다. 택시는 편도 10000엔 정도다. 4명 꽉 채운다면 경제성이 조금 산다. 역에서 리조트까지는 20km 정도인데, 구불구불한 산길이고 왕복 2차선 도로도 있다보니 시간이 꽤 소요된다. 또한 셔틀 역시 첫차와 막차시간이 있어서 심야엔 눈물을 머금고 하산해야 했다. 새벽까지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있는 후지록을 뒤로 하고 내려올 때 아쉽긴 했다. 캠핑이 왜 기본 숙박인지 알 수 있는 대목.
이어서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될 필수 아이템, 그리고 실제 체험과 메타 인지를 발휘해 유용할 팁을 정리한다.
- 만약 캠핑을 한다면, 다른 팁을 참고하시라: 들은 얘기로는 심야 시간과 새벽엔 조금 쌀쌀하니 방한 장비가 필요함. 밤과 새벽엔 무시무시할 건 아니지만 여름치고 꽤 추워진다. 만에 하나라도라는 생각에 최소한의 방한 아이템을 가져가기.
- 햇볕을 견디는 나만의 방책 마련하기: 뜨거운 햇볕을 견디는 방식과 노하우는 사람마다 다르다. 쾌청한 낮이었지만, 서울이나 도쿄의 무더위만큼은 아니다. 기온은 높아봤자 30도 안팎이었다. 그러나 햇볕은 피부를 태우고 스트레스와 피곤 지수를 높이는 데 충분하다. 각자의 생활에서 체득한 정도의 햇볕 대비책을 마련하길. 나는 목커버가 장착된 캡으로 사방의 햇볕을 막고, 팔토시를 착용해 틈틈이 물로 적셨다. 펜타포트의 그 더위와 비교하면 매우 양반이다. 게다가 산이라서 강우가 잦은 편이다. 전야제까지 포함해 4일 동안 두 날은 비가 꽤 왔다. 우비를 챙기는 것은 필수라고 해도 될 듯.
- 대개 패션은 아웃도어 룩: 트레킹도 적잖게 해야 하고, 강수와 햇볕을 둘 다 견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개 캠핑을 하기도 하고. 평소 등산과 캠핑을 한다면, 특별히 준비해야할 건 없다. 다만 장비가 필요하고, 장비 살 시간이 없었다고 해도 괜찮다. 개인적으론 신발이 고민이었는데, 등산화나 트레킹화를 신고가서 계곡물이나 빗물로 다 젖으면 하루종일 축축하게 있어야 해서 어쩌나 싶었고, 샌들을 신기에는 험한 길을 걸을 수도 있어서 발이 쉽게 피로해지고 다치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단단히 발을 감싸는 샌들이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생각보다 거친 길은 없었다. 그리고 에치고유자와역 안에 가게에서 웬만한 장비를 싹다 판매한다.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파타고니아, 노스페이스 등 유명 브랜드 장비를 판매하니 급한대로 나쁘진 않다.
- (비싼) 술과 음식이 풍성하다: 페스티벌 내부 음식과 술이 비싸다. 줄도 길지만, 음료나 술을 판매하는 매대는 대기시간이 거의 없다. 매우 기본적인 음식은 보통 1000엔부터인데, 엔간한 먹거리는 1200~1500엔 이상으로 “엥? 이게?” 소리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맥주는 350ml 한 잔 기준으로 800엔이었다. 5000원인 펜타포트에선 심심할 때마다 마셨는데, 후지록은 가격이 부담돼 심심한 마음만 안고 적당히 마셨다. 팁인지 모르겠지만, 메인 게이 트에서 입장할 때 가방 안 소비품 검사가 매우 간소하다. 무슨 말인지 눈치 채시길.
- 볼일은 지금 보자: 이동 중에 화장실이 보이면 웬만하면 이용하자. 화장실이 곳곳에 있는 편이지만, 생각보다 줄이 상시 있다. 공연을 보던 중에 화장실을 가려면 관객 인파를 뚫고 나오는 데 5~10분, 화장실로 가는 데 5~10분, 줄에서 대기하느라 5~10분 걸린다. 최고 30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긴데, 음식과 술을 맘껏 먹고 즐기는 페스티벌에서 화장실 신호는 평소보다 빨리 찾아오고, 기다리는 중에 급한 마음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니 이동하다가 화장실이 보이면 급하지 않더라도 꼭 이용하자.
- 동선은 길고 내 체력은 짧다!: 이동시간이 길고 체력 부담이 적지 않다. 무대 입구부터 반대쪽 끝 오렌지에코까지 4km에 육박한다. 잘 가꿔놓은 트레킹 길이라 낮이고 밤이고 지루하진 않은 길이지만, 폭이 넓지 않은 데크길이라 많은 인파가 몰리면 걸음이 늦춰지기 마련이다. 시간도 오래걸리고 실제로 많이 걸을 수밖에 없으니 한번 왕복만 해도 지치기 마련이다. 보고 싶은 무대에선 도파민으로 체력 소진을 느끼지 못하다 한꺼번에 봉크가 올 수 있으니 동선을 잘 짜야 한다. 모든 무대는 한번쯤은 다녀올 가치는 있으니 여유로운 시간대에 꼭 구석구석 살피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밤에는 숲에 마련한 조명과 장치들로 또 다른 매력을 뽐내니, 밤에도 길을 걸어보길 추천한다. 그린 스테이지, 레드마키, 오아시스(푸드코트)가 하나로 묶고, 화이트 스테이지, 필드 오브 헤븐, 오렌지에코가 한 구역으로 묶어서 지역을 이해하면 좋다. 적어도 한 구역에서 다른 구역으로 이동한다면 넉넉 잡아 30분을 생각해야 된다.
- 드래곤돌라: 만족도가 높았던 경험 중 하나는 유료 곤돌라를 타고 30분 가까이 타고 도착하는 곳에서였다. 후지록의 모든 무대를 옆에 끼고 계곡물을 가르고 산능선을 몇 차례 넘고 도착하는 외딴 산 정상에 있는 스카이 그래스였다. 다른 공간에 비해 인적이 드문 편이라 평화롭다. 소소한 퍼포먼스가 있고, 아담한 DJ 공연도 있고 식당과 푸드트럭도 하나 있었다. 1시간 정도 머물렀는데, 이때 기억이 오래 남았다. 가능하다면 꼭 가보길!
- 모든 스테이지 공연이 끝난다고 끝이 아니더라: 메인 스테이지 바깥, 즉 옐로클리프, 크리스탈 팰리스가 있는 곳에선 밤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넘친다. 푸드코트도 있어서 마찬가지로 술과 음식을 파니, 여운이 남는 분들은 이곳에서 여운을 불태우길.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하는 공연도 사뭇 인상적이었다. 닫힌 공간에서 음향이 열린 스테이지와 다르고, 몽환적인 분위기다. 춤을 넘실넘실 추는 사람들이 많고, 묘하다.
- 치열할 필요 없다: 무대 앞자리를 선점하려고 찜콩하는 사람들도 찾아보기 어렵고, 내 의자 놓을 공간 찾기도 수월하다. 남녀노소, 가족단위로 많이 오는 곳이라 열정이 넘친다기보다 여유롭고 자연스럽다. 분주하거나 음악에 혈안이 된 사람은 찾아보지 못했다. 그러니 열과 성을 너무 다 낼 필요는 없는 공간이라 편안한 마음을 갖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후지록을 즐기는 방식은 세 부류가 있겠다. 개인의 체력, 함께하는 파티의 유형과 인원수, 듣고 싶은 밴드가 얼마나 많은지 등으로 적합성을 따져볼 수 있다.
- 계획을 다 짜고 부지런한 부류: 타임 테이블을 꿰고 내가 꼭 들을 밴드, 들어보고 싶은 밴드를 사전에 꼼꼼하게 체크하는 스타일이 있다. 이런 경우, 위에 팁에서 언급했듯 동선 시간과 체력을 꼭 고려해야 한다. 무리해서라도 계획을 다 따를 순 있다. 그런데 후지록은 최대 4일짜리 장기전이다. 오늘 불태우면 내일은 홀라당 날아갈 수 있다. 체력 문제도 없고, 일정을 다 소화한다면 정말 후회 없이 후지록을 즐겼다고 자부해도 된다. 그러나 일정에 차질이 생겨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후지록의 거대한 공간적 스케일, 인구 밀집도,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는 무슨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애초에 한 사람이 72시간 동안 다 소화할 수 없는 콘텐츠를 담은 행사다. 차려진 음식을 뱃속에 다 넣을 수 있는 잔치는 원래 없다. 심지어 올해엔 헤드라이너였던 프레드 어게인은 전기장비 문제로 공연이 취소될 뻔하다 급조된 인력과 장비덕에 2시간 가까이 연기됐고, 결국 무사히 치러졌다.
- 머스트해브 밴드만 있는 부류: 꼭 봐야할 밴드만 있고, 나머지는 물 흐르듯, 바람 부는대로 즐기고 싶은 스타일이다. 틈새 시간에 뭐할까 고민할 필요 없다. 후지락엔 무척 다양한 음식이 있고, 구석구석에 온갖 즐길거리가 지척에 있다. 군데군데 숨어있는 작은 무대에서도 누군가가 최선을 다해 공연을 한다. 숲속에 뜬금 없이 피아노가 마련되어 있는데, 여기서도 행인이 걸음을 멈추고 피아노를 연주한다. 또 다른 행인들은 이를 감상한다. 보이는대로, 끌리는대로 섭렵해도 좋다. 어쩌면 이런 잔가지들로도 충분히 즐겁고 유쾌해서 음악은 뒷전이 되어도 좋다. 원래 대부분의 숲은 굵은 줄기보다 잔가지들로 울창해지는 편이다.
- 아무 계획 없는 부류: 사실 이게 어쩌면 후지록을 가장 즐기기 좋은 스타일이 아닐까. 그날 컨디션이나 기분, 배고픔 정도와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분비 정도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다. 왜 이게 가장 후지록과 어울리냐면, (개인적으로 후지록에서 경험한 것 중), 후지록뿐만 아니라 어쩌면 대부분의 록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예상치 못한 무대나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이번 후지록에서도 무더운 땡볕 아래 필드 오브 헤븐 앞 주점에서 어쩌다 마신 하이볼이 기억에 남고, 곤돌라를 타러가며 레드 마키에서 들린 음악에 반해 한참을 멍하니 구경하다 T字路s(티지로스)라는 밴드였음이 기억에 남고, 벼락처럼 쏟아진 폭우 속에서 제임스 블레이크의 벼락 같은 음악소리보다 빗소리가 각인됐던 것처럼 말이다.
가만 보니, '후지록'을 잘 즐기는 방법은 '인생'을 잘 즐기는 방법으로 치환 가능하다. 저마다의 욕망과 스타일이 있겠지만, 무엇이 됐든 100% 만족할 순 없다는 것, 그러나 어떻게 즐기든지 간에 저마다의 인상적인 순간과 행복이 엿보이는 찰나가 있으리라는 것.
후지록을 즐기려면 며칠이라는 시간과 돈백이 넘는 비용이 든다. 어라, 인생을 즐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후지록에 헤드라이너는 셋뿐인데, 오히려 놀람과 감동 순간은 다른 곳에서 발견한다. 인생에도 헤드라이너는 손에 꼽히는데, 정작 살아있음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발견하기 쉽다.
요컨대 후지록은 어떻게 즐기든지 간에 크고 작게 후회할 수밖에 없다. 후회 없이 즐길 방법은 없으니 내가 즐기는 방식이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은 마음가짐이다.
후지록이 끝나면, 한 가지 숙제와 부담이 주어진다. 내년 후지록은 어떻게 할지 벌써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것. 게다가 앞으로 매년 7월이 임박하면, 후지록을 갈까말까 고민해야 한다는 것.
#후지락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