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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계의 주인'이 건드린 정릉의 시간

영화 감상을 핑계로 한 정릉의 기억들

by 김원상

‘세계의 주인’을 보고 글을 쓰고 싶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그 무엇도 아닌 ‘정릉’이었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도 처음이었고, 어떤 삶과 흔적을 밟아왔는지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영화에 서울 성북구 정릉 일대를 애정을 담아 애착 있게 담아냈다는 점이다.


정릉은 도심 속에서도 오래된 서울의 결이 남아 있는 동네다. 도시화의 속도를 비켜가 낡았지만 따뜻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짙다. 꾸밈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만들어낸 정감이 여전히 골목마다 묻어 있다. 영화 속 봉국사는 3대 모녀가 이른 아침 불공을 드리는 곳으로, 주인과 미도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남자친구 자전거를 태우고 달리는 곳은 운치 있는 정릉천이다. 사람 사는 뭉클함이 있고,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따뜻한 장면 장면, 인물들의 서사들이 조금씩 드러나는 영화 곳곳엔 정릉의 이모저모가 숨어 있음이 눈에 띄었다. 정릉은 그런 곳이다. 윤가은 감독에게도 그런 공간이었을까. 언제 한 번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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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정릉이란 동네를 처음 인식한 건 고등학교 진학 때였다. 집 근처 고등학교로 자동 배정되는, 흔히들 뺑뺑이라고 부르는 방식대로 고등학교를 가게 되면 정릉에 있는 한 남자 고등학교에 갈 확률이 높았었다. 그 학교에 대한 평, 당시 학업 분위기나 학생들의 질에 대한 그리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다. 그렇게 다른 학교를 선지원해서 정릉과의 인연은 없어 보였다.


선지원해서 입학하는 고등학교에 와보니 보통 동네 친구들이 다수 같은 고등학교에 가는 것과 달리 용산, 동대문, 강북, 성북, 중랑, 종로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의 무리가 있었는데, 정릉이었다. 서로의 동네에서 왔다고 해서 선을 긋고 차별하면서 또래 무리가 형성되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유독 친분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건 비슷한 동네 사는 끼리끼리였다. 아무래도 등하교 동선이 겹치고 더 함께 지낼 시간이 넉넉한 탓이었겠다. 그중 유독 정릉에서 온 친구들이 개성 넘치고 쾌활하고 인기가 많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기어이 한 사건을 통해 ‘정릉파’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정릉에서 온 몇몇이 학교 근처에서 흡연을 하다가 발각되었던 일이다. 그 친구들이 대개 학업에 열중하기보다 잘 어울려 노는 편이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남자 학교에서 이런 일이 종종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은 그때 유독 엄격하게 대응했다. 그 무리를 종례 시간에 앞에 나오라 하고, 이번 잘못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지겠냐고 공개적인 효수를 감행했던 것. 여차저차 반삭발을 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고, 정릉에서 온 아이들은 다음 날 착오 없이 반삭을 하고 나타났다. 까까머리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에 ‘정릉파’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이죽거리고 놀렸지만, 이조차 정릉파에 대한 친밀과 우정이 있었기에 정릉파라는 단어는 평화롭게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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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선생님은 말썽쟁이들에게만 차별적으로 엄격하게 과한 처사를 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교실에서 사진 하나를 돌려보면서 수근수근거리는 일이 있었다. 그 사진 속에는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정릉파와 담임선생님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정릉파 중 한 녀석의 생일날 정릉에 직접 생일 케이크를 사 들고 가 축하를 해주신 일이다. 이런 차별적 특혜는 전교 1등한테도 있어본 적 없었고, 털털하고 요즘 말로 전형적인 테토남인 담임선생님이 이런 행보를 했으리라고 쉽사리 생각할 수 없어 작지 않은 울림을 남겼다. 정릉파에겐 머리를 빡빡 깎게 한 미운 선생님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담임선생님은 그 인연과 그 녀석들의 마음을 함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유쾌한 정릉파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종종 정릉에 가 놀았다. 대수롭게 놀거리가 있다기보단 좋은 친구들이 주는 이끌림에 가 놀았던 것밖에 없다. 저녁밥 먹으러 자주 가던 치즈밥 가게가 있었다. 다정다감한 아주머니와 딸이 운영하는 학생들한테 꽤 인기 많은 가게였다. 치즈밥을 잘 못 비비면 직접 비벼주시기까지 하시고, 남학생들이 시킨 메뉴보다 갑절은 많은 서비스가 나오는 곳이었다.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에게 매번 배 터지는 흡족함과 친절한 인심을 베푼 정릉의 치즈밥은 어린 시절을 풍성한 기억들로 가득 채우는 감사함으로 남는다.


정릉의 지리적 특징을 생각하면 묘하다. 남쪽으로 북악산 산등성이를 넘으면 한국에서 가장 부촌인 성북동이 나오고, 서쪽으로 북한산을 뚫은 북악터널을 지나면 그만큼 유명한 평창동이 나온다. 1970년대 길이 통하면서 서울의 가장 구석진 동네였던 정릉은 부촌과 이어지며 새로운 지리적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런데도 돈의 흐름에 잠식되지 않았다. 두 부촌의 경계에 놓였지만, 정릉에는 여전히 사람 사는 냄새가 짙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도 정릉은 그런 결을 지닌 동네로 나온다. 강남의 세련됨과 대비되는 오래된 서울의 정취, 낡았지만 따뜻한 주거지의 골목, 서민적인 온기가 묻은 배경. 이제훈이 택시기사에게 “정릉에 왜 안 가냐”고 고집하던 장면은, 도시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서도 여전히 자신만의 세계를 품은 이곳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정릉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아 더 기억되는 서울의 한쪽이다.


5년 전, 평창동에서 PT샵을 하는 친구네 놀러가서 수다를 떨던 중 반가운 연락이 왔다. 정릉파의 번개였다. 연락을 받자마자 함께 북악터널을 뚫고 달려갔다. 청수사 옆 정릉천이 산 아래에서 사람들 사이를 구불거리며 흐르기 시작하는 곳이다. 친구네 부모님이 하는 식당에서 한 잔을 하고 있으니 합류하라는 소리였다. 거나하게 취한 정릉파라니 망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이른 더위가 있는 초여름, 더는 깊어질 리 없는 새벽 끝까지 웃고 떠드는 날이었다. 그 소리에 주변 집들에 민폐를 끼치진 않을까 할 정도로 즐거웠던 새벽이었다. 가게 이름은 꽃피는 정릉골이었다. 꽃이 얼마나 폈었더라나.


‘세계의 주인’을 보고 떠올린 건 결국 장소였다. 인물들의 마음결과 정릉의 골목들이 맞닿아 있었다. 오래전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그 거리, 봉국사 새벽의 냄새, 정릉천의 바람이 다시 스크린 위에 피어올랐다. 영화는 나로 하여금 한때의 정릉을 다시 걷게 했다. 그곳엔 여전히 꾸밈없는 사람들의 온기와 삶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영화 속 정릉과 내가 기억하는 정릉은 닮아 있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을 품고, 상처를 덮지 않고 살아가는 동네. 그래서 나는 그 영화를 보며 내 청춘의 냄새를 다시 맡았다. 스크린 속 인물들이 내 기억 속 친구들과 겹쳐지고, 영화의 따뜻한 결이 오래된 정릉의 공기와 섞였다. 정릉은 내게 그런 곳이다. ‘세계의 주인’도 내게 그런 영화다.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나는 다시 정릉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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