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16~3.25⑦
정리하다 보니 정말 끝이 없다. 도쿄 체류 기간을 2박 3일 남겨 둔 시점에서 이제는 진짜로 좀 여행다운 것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 초반에 마음먹었던 고슈인을 끝내버리기로 했다. 최소 10개 받는게 목표다. 못 다한 I.W.G.P. 투어도 마쳐야 한다.
때문에 아카바네와 이케부쿠로행을 결정했지만 전날 5시에 귀가한 터라 다소 아슬아슬한 시간에 일어났다. 먼저 윗쪽인 아카바네로 갔다. 우리나라 전철은 짤 없는 편인데 일본 전철은 힘으로 열려고 하면 열려서 놀랐던 부분이다. 간만에 전철을 타고 바깥 분위기를 만끽했다.
아카바네에 도착하자마자 고슈인부터 받으려고 했지만 어쩐지 배가 고파져서 역에 있는 식당을 기웃거렸다. 아슬아슬하게 런치가 끝난 곳도 있어서 아직 하고 있는 돈까스집에 들어갔다. 좀 푸짐해 보이는 정식을 시켰는데 오늘따라 양배추가 너무 맛있어서 산더미같이 리필을 해서 먹었다. 그리고 이날의 고슈인 투어를 시작했다.
아... 저번에 시오링을 만났을 때 고슈인맵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아버렸다. 신사나 절 중에서도 고슈인을 받을 수 있는 곳만 구글맵 위에 표시해주는 거다. 정말 분하고 원통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게 있는 줄 알았으면 헛된 땀을 흘리지 않았을 것을... 뭐 알아도 부질없는 체력 낭비는 했다. 아카바네 버전 고슈인맵은 정보가 틀린 것이 많았다. 이 지역에서 성공률은 20% 이하다. 아주 산 너머 산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고, 이케부쿠로로 출발했다. 전철 안에서 도쿄 전국 버전인데다가 정확도까지 높은 고슈인맵을 발견했다. 늦었지만 다행이었다.
이케부쿠로에 도착한 시간은 꽤 아슬아슬했지만 그래도 고슈인을 두 개 정도는 챙겼다. 그리고 못 봤던 I.W.G.P. 로케지를 검색하는데 이케부쿠로 잇쵸메부터 욘쵸메까지 다 돌았다.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지는 와중에 겨우 발견한 것이 마코토와 킹이 서식하던 패밀리 레스토랑. 나머지는 다 실패다. 그냥 이쯤 하자 하고 아무 카페나 들어갔는데 중화반점 느낌이 물씬 풍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뭔가 아쉬워서 하라주쿠에 가면 늘 들르는 카페로 갔다. 사실 나의 이번 일본 여행 기간은 치쨩때문에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쨩이 3월 마지막 주 한국에 온다고 하는데 내가 그때 한국을 비울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벚꽃 시즌도 진심 아슬아슬하게 비껴난 데다가 추워 죽겠는 시기에 도쿄에 갔더니... 떠나는 날 알게 된 것이지만 직전에 치쨩 일행 중 누가 병이 나서 여행이 취소됐단다. 하 시발... 걔 탓은 아니지만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카페에 앉아 열심히 치쨩의 서울 투어 일정을 고민했다. 그러면서 적당한 크기로 보이는 와플을 하나 시켰는데 접때와 마찬가지로 창피할 만큼 엄청나게 큰 게 나와서 민망했다.
마감시간이 다 돼서야 카페를 나와 술집으로 갔다. 꽤 뻔뻔해진 나는 치쨩과 감독에게 술 마실 거냐고 물었다. 주부인 치쨩은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있다고 했고, 감독은 당연히 마시고 있었다. 이날은 일본과 아랍에미레이트가 축구를 하는 날이었다. 같은 날 조국은 중국에 쳐발렸는데 여기서 일본을 응원할 수밖에 없던 가련한 한국인... 한때 해축에 깊이 몸을 담았던 나는 그런대로 재미있게 축구를 보고 있는데 감독은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그러더니 집에 간다고 해서 또 재미없으니 어디로 새는구만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진짜로 귀가한 거였다. 경기는 일본의 승리였다. 나오지 않는 오메데또 고자이마쓰를 단전부터 짜내고 술 한 잔을 얻어 마셨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돌아가고 자꾸 나를 곁눈질하는 오혁 닮은 친구와 둘이 마셨다. 안타깝게도 여자친구가 있었다.
한 세 시 쯤 되니 술집에는 아직 마실 마음이 잔뜩 있는 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주인한테 나 혼자 나나메 갈 거라고 하니 같이 가자고 붙잡았다. 또 공짜 술을 한 잔 주기에 받아 마시고 내 MP3 스피커에 연결해서 가라오케 타임하고 있는데 손님 한 명이 들어오려고 했다. 주인상은 잠깐 고민하다가 들어오라고 했다. 개부자고 좀 꼴통이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역시 부자답게 샴페인을 하나 까서 또 얻어 먹었다. 죄송하게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 분은 자긴 한국인이랑 잘 안 맞는데 넌 딱 봐도 꼴통이라 안 그럴 것 같다고 했다. 나 역시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선 내가 제일 머리가 이상하긴 하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그렇게 또라이 두 명의 첫 만남이 시작됐다.
한 두 시간을 마시다 보니 나나메에 가겠다는 계획은 사라지고 또 푸른 새벽이 찾아왔다. 주인상 커플이랑 또라이 둘은 아침을 먹으러 가기로 하고 우리나라의 기사식당 격으로 보이는 가게로 향했다. 가서 심야식당에서 본 햄카츠랑 뭐 이것저것 시켜 먹는데 졸려서 음식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좀처럼 볼 수 없는, 여자 주인분이 취할 때만 나오는 아저씨의 모습이 나와서 걱정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아침밥상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나나메 텟쨩상 귀엽지 않아? 라고 하니 또라이 언니가 갑자기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인상은 전화를 넘겨 받더니 지금 나랑 같이 있는데 얘가 너랑 섹스하고 싶대 라고 장난을 쳤다.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졸음을 이길 수 없어서 가게를 나왔는데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진심 너무 추워서 옆에 있는 택시회사에다가 차 좀 빼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결국 또라이 언니가 택시를 잡는데 성공해서 얻어 타고 집에 왔다. 조금씩 울 것 같은 기분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대낮에 일어나서 시부야구에 있는 신사와 절은 전부 정복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집을 나섰다. 추워서 콧물이 줄줄 났지만 받을 만한 데서는 다 받았다. 배가 고파서 그냥 들어간 식당에서 디저트까지 아주 만찬을 하고 나니 피곤함이 극에 달했다. 늘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일어났다지만 그래도 부족한 수면시간이었다. 치쨩의 한국 여행 일행을 소개받기로 한 날이라 먼저 집에 가서 좀 자고 있으려고 했더니 부득불 1차를 하자고 해서 24시간도 안 되어 그 바로 다시 갔다. 좀 마시다가 약속 시간이 돼서 나가려는데 주인상이 “좀 이따 다시 올 거지?”라고 해서 잠깐 울컥했다. 치쨩은 잠시 나를 빌려간다고 하며 나와 함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좁아 터진데다가 사람도 엄청 많은 이자카야에서 정신 없이 술을 마시는데 소개 받은 언니란 사람도 상당히 정신 없는 사람이었다. 뭔 대화가 하나도 안 되는 와중에서 사진도 참 열심히 찍어서 빨리 요요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그의 연하 남편과 친구들이랑 몇 마디 나눴을 뿐... 그 와중에 감독한테 오늘 마실거지? 라고 라인이 왔기에 1시쯤 돌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니 늦어...라고 답이 와서 프로포즈 허락할 테니까 좀만 기다리라고 했다. 결국 이 부산한 자리는 예상보다 일찍 파했고 나의 도쿄 여행 마지막 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여기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불알주... 술이 든 젤리 같은 공이 토닉워터 안에 들어 있는 건데 나랑 치쨩이랑 한 알씩 마셨다.
사람이 꽉 찬 가게 안에 감독이 있었다. 그는 준비해 온 선물 봉투를 내밀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엄청난 감동이어서 정말 고맙다고 하고 쇼핑백을 밑에 두었는데 그는 내가 그럴 줄 몰랐는지 잠시 당황하더니 꺼내보라고 했다. 안에 들어있는 선물들이 진심... 센스라는 것이 폭발했다. 먼저 과자 몇 개 사이에 이어폰이 보였다. 며칠 전 내 이어폰 피복이 벗겨진 걸 기억해 뒀다가 넣은 것이다...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쇼핑백 안에 일회용 카메라가 있었다. 그냥 준 게 아니다. 그걸로 이 마지막 밤의 기억들을 찍어서 내 손에 들려 보내려는 심산이었다.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 덧붙여 한국말로 메시지까지 적어 두었다. 이제 9박10일 동안 나를 괴롭혔던 일본인과의 관계 문제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여행 이후 또 다른 잡념들이 생겼지만...)
한껏 취해서 포키 물고 들이대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술 들이붓고 아쉬워하는 와중에 또 해는 뜨고 있었다. 이 동네 남자들은 내일 아타미 온천에 놀러가는데 나를 위해 끝에 끝까지 마셔 주었다. 이날 처음 본 사람이 샴페인도 사 주었다. 정말 못 견딜 지경까지 가서 계산을 부탁했는데 주인이 또 계산을 안 해 줬다. 마지막엔 취객들끼리 서로 신경건드리다가 선을 넘어서 못 볼 꼴도 봤지만 듬뿍 예쁨받으며 햇살과 함께 집에 돌아갔다.
씻지도 않고 잠들었지만 체크아웃은 해야 하기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집 청소하고 짐정리를 마쳤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싶어 순간순간 눈물이 솟으려 했다. 마지막으로 숙소와 엄청 가깝지만 한 번도 못 가본 식당 겸 바에서 주인 할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요요기하치만 최후의 커피를 마셨다. 신주쿠에 짐을 맡기고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역으로 향하는데 자전거로 엄청 달리고 있는 카츠상을 봤다. 불렀지만 나를 지나쳐 갔다...ㅋㅋㅋ 아타미에 가기 전 집합 장소로 가고 있는 듯했다. 아쉽게도 간발의 차로 그들과 마주치진 못했다.
그런데 전철에 타자마자 감독이 전날의 사진들을 잔뜩 보내왔다. 신주쿠역에 도착해서 캐리어를 질질 끌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울면서 신주쿠터미널로 가는데 정말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겨우 짐을 맡기고 부탁받은 물건과 선물을 대충 산 뒤 신주쿠역 고슈인을 조지기로 마음먹었다. 고슈인맵 덕에 수월히 목표를 달성하고 벚꽃 몽우리라도 보겠다는 심정으로 신주쿠교엔으로 향했으나...
인파가 밀려나오고 있어서 설마설마 했건만^^..... 아주 폐원 시간을 딱 맞춰서 간 것이었다... 이미 발은 아작나 있어서 대충 맥도날드로 끼니를 떼우고 리무진에 올랐다. 흡연 가능한 맥도날드에 가려고 했는데 녹록치 않았다.
리무진을 타고 하네다로 가는 길은 내가 묵던 동네를 지나치는 코스다. 내리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가면서 9박10일 간의 사진을 보는데 정말 가슴이 미어지기 시작했다. 수속을 마치고 늘 가는 공항 내 카페에 앉아 여느 때처럼 라인으로 작별 인사를 돌리는데 눈물이랑 콧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훌쩍거리며 화장실에 갔는데 본격적으로 울음이 터졌다. 애같이 엉엉 울다가 시간이 다 되어 비행기에 올랐다. 다음 일정을 당장 짜고 싶지만 일단 직장부터... 김포에 도착하자마자 현실 입갤하면서 눈물이 말랐다. 당분간 안녕, 도쿄.
+) 고슈인 보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