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5.25~2017.6.1 ①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1월에 출국을 결심하면서 아마 2017년 상반기에는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녀 오자마자 다음에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걸 부정할 수가 없다. 분명 3월에는 재취직이 될 거라 믿었기 때문에 남은 돈을 때려붓다시피 했고, 그 이상의 추억을 얻어 왔다. 그리고 잔인한 4월이 흘렀다. 잔고는 말라갔다. 도쿄가 그립다고 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단골 바 사장 커플이 입적한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 접했다. 처음에 들었던 감정은 서운함이었다. 이런 인륜지대사를 직접 알릴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구나... 심지어 4월 생일에도 그 누구 라인 한 통 보내 오는 인간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다. 한국이라도 만난지 6개월도 안 된 외국인이라면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는 것조차 애매할 터다. 어쨌든 어릴 적부터 이런 부분에서는 엄마한테 맞아가며 배운 덕에 최수종 뺨치는 이벤트 센스의 소유자가 된 나였던지라 선물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고민 끝에 부부용 수저 한 벌을 입적 선물로 결정했다.
수저 뒷면에 두 사람의 이름과 입적 날짜까지 각인하기로 하고 나니 갸륵하면서도 천재적인 발상이었다고 자평할 수밖에. 아무튼 별다른 연락 없이 EMS로 선물을 보냈다. 한 이틀 동안은 이게 잘 갔나, 언제 도착하나 위치 추적에 열을 올렸다. 분명 도착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잘 받았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뭔가 잘못된 것 아닌지 마음을 졸이며 여느 때와 같이 침대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애먼 감독에게 라인이 왔다. 도쿄 언제 와?
그 연락을 내가 기다렸었나보다. 당장 도쿄로 날아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쪽저쪽 이력서도 넣어 놓은 상태였고, 쉽게 한국을 비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늘 단골 바에 한국인이 왔는데, 모두 효진을 떠올렸다는 그 말에 마음이 찡해졌지만 5월에는 무리일 것 같다고 답장을 했다. 연락을 마치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스카이스캐너를 켰다. 정말로 이번에 여행을 가면 한 달 생활비나 남을까 말까였다. 그래도 가슴이 시키는 일입니다...
(+) 바로 그날 새벽 바 주인에게 장문의 라인이 왔다. 사실 편지까지 써서 보냈는데 대충 내용은 직접 듣고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등 뒤로 들어버렸다, 당분간 도쿄에 못 가니까 이렇게 축하하는 실례를 용서해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라 등등이었다. 글씨 연습을 어찌나 했던지 지금도 이 문장들을 틀림 없이 적을 수 있을 정도다. 감동을 안 할 수가 있겠는가. 엄청난 경어로 감사 인사를 하는데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고마운 줄은 아는구나 싶었다. (+)
워낙 큰 공항을 극혐하기 때문에 인천-나리타 노선은 피하고 싶었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니 10만원 대에도 도쿄 왕복 항공권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짐도 기본이 20kg인데다가 창가 자리 선호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저가항공은 무리였다. 한참을 재고 따지다가 아시아나 인천-나리타 노선 비행기 티켓을 샀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을 다짐하긴 했지만...
이어 결혼을 앞둔 친구 수저, 늘 놀아주는 친구 두 명의 것까지 사고 나니 제발 한국에서도 이렇게 좀 하지 그러냐는 자아비판의 시간까지 찾아왔다. 이번 스페셜 기프트는 벌떡주였다. 딸려 오는 술잔의 모양이 상당히 매력적(?)인 술이다. 세 병을 주문하고 출국 직전 택배를 받았는데 웬걸 두 병만 온 불상사가 발생했다. 한밤중에 제주도에 전화를 걸어서 쌩난리를 치고 나서야 한 병을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정말로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인천행 리무진을 타니 잠도 오지 않았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를 보며 전날 봤던 ‘캐리비안의 해적’을 떠올렸다. 그리고 10년 만에 나리타를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