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5.25 ~ 2017.6.1 ②
역시 나리타는 낫 마이 정서였다. 너무 크고 복잡했다. 입국 수속 마치고 신주쿠까지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러 가는데 벌써 진이 빠졌다. 평소 같았으면 정오 전에 목적지 도착해서 얼리체크인 가능하냐고 에어비앤비 주인한테 사정해야 할 타이밍인데 이날은 심지어 체크인 시간에 늦었다. 드물게도 주인이 직접 나와서 설명을 해 줬다. 이분은 작년 11월이랑 12월 사쿠라가오카쵸에 묵었을 때도 신세졌던 양반인데 내가 자기 소유의 집에 세 번째로 머문다는 걸 알 리가 없었다. 나도 실물은 처음 보는데 비주얼 락커의 겉모습을 하고 있어서 적지 않게 놀랐던 기억이다.
방향제가 잔뜩 뿌려진 방은 꽤 멋졌다. 2012년에 디자인 어워드 탄 건물이라고 초입부터 패가 세워져 있었다. 다만 1층이라는 것이 좀 신경쓰였다. 벽 전면이 창이었는데 블라인드가 뭔가 부실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3박4일 묵는데 수건이 큰 것 한 장이란게 걸렸지만 어쨌든 주인상 보내고 나니 거의 세 시가 다 되어 있었다. 그냥 퍼 자다가 술 마실 때쯤에 나가고 싶었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다. 나는 여행자다.
이 본분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시작했던 고슈인 받기에 나섰다. 지난번 여행 때 아카바네와 이케부쿠로에서 참패를 맛봤던 나는 재도전을 감행했다. 진심 얼마나 걸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허탕도 그만큼 많이 쳤다. 고슈인맵도 자세히 읽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마지막 식사가 기내식이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배도 안 고팠다. 그래도 회색 도쿄의 하늘 밑 풍경이 나를 반겼다.
일본의 다른 지역은 가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도쿄에서 가장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은 통행 방향이 반대라는 사실보다 길의 폭이었다. 사람 사는 데다 보니 간혹 미친 차도 보이지만 한국에 비하면 보행자 우선 인식이 정말 잘 돼 있는 편이다. 그렇게 걸었는데도 죽을 고비까지는 없었다. 사진처럼 거의 컨테이너 박스 수준의 작은 건물이 거리에 수납돼 있는 것 같은 재미있는 모습들이 좋았다.
걷다가 다리에 힘이 풀리기는 처음이었다. 이제 뭐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됐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시부야역으로 향했다. 지금은 무슨 생각으로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계속 먹지 못했던 츠케멘이 먹고 싶었던 것 같다. 야스베에는 너무 유명한 곳이라 다른 식당을 찾아보려 했지만 이미 그럴 정신은 없었다. 딱 여섯시, 저녁 시간 정도에 도착하니 내 몸에 남은 건 젓가락을 들거나 사진을 찍거나 둘 중 하나밖에 할 수 없는 힘이었다. 나는 기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외국인 티가 많이 났던 모양인지... 일본 식당에 가면 외국인에게 친절한 인상을 남기고는 싶은데 어쩔 줄은 모르는 주인상들이 많다. 정말 엄청나게 눈치를 봐서 카운터로 돼 있는 식당에서는 먹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다. 야스베에도 그랬다. 우와 이거다! 하는 맛은 아니었지만 표정 연기를 열심히 하며 밥을 먹고 늘 가는 미야마에 갔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인스타그램에 츠케멘 사진을 올리니 도쿄 온다고 연락을 채 못했던 친구들이 알은체를 했다. 감독은 지난번에 알려줬던 ‘씨발’을 댓글로 남기는 바람에 카페에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드디어 바에 도착! 또 ‘이때까지만 해도’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데, 나는 10시 이후에나 음주 활동을 시작하는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밤은 짧다는 걸 느낀다. 아무튼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에도 천천히 나간 곳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래저래 벌떡주 주고 수저 선물 설명해 주고 내가 썼던 편지 돌려 읽고 하다보니 시간은 금방이었다. 아마 친구들은 또 지들끼리 짝짜꿍 딴데를 갔던 것 같다. 이건 사진을 보면서 기억을 되돌려 보겠다. 정말 인간적으로 여행객치고 이렇게 사진이 없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다음날은 결혼을 앞둔 임신부 친구 시오링을 만나러 카메이도에 있는 산부인과까지 가기로 했다. 전날 무슨 일이 있는지 더듬어 보겠다만 하여튼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마셨던 것 같다. 그래서 약속에 늦었다^^ 다행히 시오링의 샤워 시간과 겹쳐서 얘가 기다리지는 않았는데 내가 너무 몸을 주체하기가 버거웠다. 겨우 만나서 준비해 온 수저 선물을 건네니 애가 울었다....... 아니 진심 울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전에도 말했듯 얘는 배가 남산만해서도 나보다 더 건강한 아이라 입도 쉬질 않았다. 피곤해 죽는 줄 알았다. 한 한 시간만 있다가 아사쿠사 쪽으로 가서 고슈인을 뭉탱이로 받으리라 다짐했었지만 끝나지 않는 수다에 결국 다섯시가 넘어서야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하나라도 받아 보려고 버스정류장까지 갔지만 이내 포기하고 역으로 향했다. 대부분 신사는 오후 네시에서 여섯시 사이에 문을 닫는다. 겨우 가메이도 신사 하나 구경하고 왔다. 저 멀리 스카이트리가 보였다.
역으로 가는 길에 정말 누가 봐도 나폴리탄을 팔 것 같은 낡은 카페를 발견했다. 갑자기 나폴리탄이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홀린 듯이 들어갔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아저씨 아줌마가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님인 가게였다. 북두의 권 같은 만화들이 잔뜩 널려 있고 텔레비전 채널은 스모를 틀어 두고 있었다. 나폴리탄에 아이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조용히 먹고 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새로 생긴 메가돈키에서 미리 쇼핑을 했다. 수건이 필요한데 어차피 살 거라면 면세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건은 면세가 안 된다^^ 알아두세요^^ 괜히 쇼핑만 이빠이 하고 시부야에서 집까지 걸어왔다. 이 길이 익숙해진 기분이 좋았다. 러쉬에서 산 입욕제를 풀고 짧은 목욕을 한 후 집을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일한 또래 친구 미키쨩이 나를 보러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충격적이게도 이번 여행 두 번째 숙소가 미키쨩이 사는 멘션이었다.
지난번 만났던 마-군도 함께였다. 셋이서 신나게 수다를 떠는데 고맙게도 치쨩이 혹시나 내가 있을까 해서 바에 들렀다. 그런데 마침 나는 미키쨩이랑 마-군이랑 인생 첫 몬자야키를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 아예 짐까지 바에 둔 채 꽤 유명한 듯한 가게에 들어갔는데 히가시데 마사히로랑 이케마츠 소스케 싸인이 걸려 있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와서 전통 음식이란 걸 먹어도 이런 기분인가 싶을 만큼 그냥 아 이게 몬자야키구나 그런 맛이었다. 되돌아보면 일본에서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나는 음식은 오모테산도 걷다가 그냥 들어간 중화요리집 런치세트였다. 이미 한국에서 일본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들떠 있는 친구들 앞에서 또 혼신의 먹방 연기를 하고 배가 부른 채 술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공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아쉽게도 치쨩은 바에 없었다. 대신에 유우키, 감독, 치카라상, 이리에상 등등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이리에상은 1월에 처음 만나서 그길로 고르덴가이까지 직행했던 분인데 3월에는 잠깐 마주쳤을 때도 인사를 하지 않아 원래 저런 사람인가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 일본인 중에 제일 편한 인물이다. 유우키는 3월에도 만났었나 모르겠는데 이번 여행에 나를 보러 매일 바에 와 주었다.
도쿄 오기 직전 아이팟이 박살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12만원에 액정을 수리한 보람이 있었다. 오랜만에 바에서 디제이를 맡았다. 이리에상이랑 음악 이야기를 엄청 했다. 원래 이 분 졸리면 바로 집에 가는 분인데 이 곡만 듣고 이 곡만 듣고 하다가 날이 샜다. 그래서 남은 사람들끼리 역 앞 후지소바에서 아침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돈 내려고 하니까 굳이 이리에상이 자기 스이카를 찍는데 여러분 그거 혹시 보신 적 있으신지... 경기버스 타면 캐시비 광고를 하는데 보면 여자애가 편의점에서 계산하려는 순간 남자애가 갑자기 자기 교통카드를 찍어 버리면서 폼을 잡음... 그 영상이 아른거리는 찰나였다. 얼결에 맥주까지 얻어 마셨다. 어느 순간 같이 있던 히라마상은 튀김이 잔뜩 들어간 무슨무슨동을 시켜서 튀김만 먹었다. 이미 밝은 아침 가게를 나와 친구들과 인사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