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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Apr 28. 2016

김구라는 언제까지 무례를 입담으로 포장할까

세상이 변했습니다…

“빅토리아가 한족이죠? 차오루는 묘족이고. 이런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이쪽(빅토리아)은 다수고 차오루는 마이너리티(소수 민족)니까. 우월감은 약간 있지 않을가 하는. 천박한 민족관이긴 한데, 그런 것 있죠?”



지난 27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서 MC 김구라가 게스트 빅토리아에게 던진 질문이다. 말을 내뱉은 자신도 마지못해 인정했듯, 천박하기 그지 없는 발언이다. 각자의 도덕적 가치관이 복잡하게 부딪히지 않더라도, 두 말 할 것 없이 ‘틀린’ 생각이다.

김구라의 토크 패턴은 최근 매번 이랬다. 자신만 알고 있는 것 같은 정보가 있으면 일단 던진 후 이를 대화의 흐름에 억지로 욱여 넣는 식이다. 빅토리아가 중국 내 다수인 한족이고, 차오루는 소수 민족인 묘족이라는 사실을 당사자 앞에서 언급한들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래서 김구라는 은근슬쩍 ‘우월감’ 이슈를 가져다가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했다.

‘라디오스타’ MC진도 이는 김구라의 의견일 뿐이라며 선을 그을 정도였다. 그 역시도 아차 싶었는지 “천박한 민족관”이라며 애써 자신을 깎아내려 발언의 무례함을 중화시키려 했으나, 애초에 그렇게 천박한 말이라면 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셀프 디스’를 한다고 수습이 될 리 만무하다. 중국 내 소수민족 차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고 있었어도 이러한 말이 나왔을까.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을 때 나오는 무례다.

이날 게스트들을 향한 김구라의 오만한 태도는 어느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공평(?)하게 가해졌다. 충무로 씬스틸러로 자리매김한 배우 배성우가 영화 ‘베테랑’ 촬영 당시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스태프들끼리는 재미있는 장면이었는데 영화의 완성도 때문에 편집됐다”고 밝히자, 김구라는 화자의 말을 다 자르고 “넣었어야 해”를 반복했다. ‘태양의 후예’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와 과거 ‘상속자들’에서 호흡을 맞췄다는 최진호에게는 “(김 작가가)그렇게 마음에 들어 했는데 왜 ‘태양의 후예’에 부르지 않았나. 극 중 진구가 맡은 역이 어울린다”고 말해 그를 곤란하게 했다.

그의 혀에 돋친 가시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MC들도 찔렀다. 하등 토크와 관련 없는 잡지식을 뽐내면서 이를 모르는 동료들에게 ‘무지하다’는 딱지를 붙였다. 프로그램 특성상 이 같은 발언들이 다시 김구라에게 돌아가며 그나마 통쾌한 광경을 만들어냈지만, 그렇지 않은 방송에서라면 시청자들이 되레 눈치를 봐야 할 상황이다.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의 토크 스타일을 일컬어 ‘깔때기 토크’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농이 아니다. 고급 정보라 생각되는 것들을 어떻게든 이야기에 끼워 넣으려 하고, 게스트의 에피소드를 자신의 경험으로 마무리 짓는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가 틀렸음을 깨달았을 때도 그는 굽히지 않는다. 우기고, 정색한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악역은 자처할 지언정, 자신의 모자람은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발언이 크게 문제가 됐을 때 쓰는 사과문을 제외하고는.

김구라는 막말 토크를 ‘솔직함’이나 ‘속 시원함’으로 포장해 인기를 얻은 대표적 방송인이다. 그가 이 같은 스타일을 시종일관 고수하는 동안, 세상은 변했다. 대중은 여성을 비롯한 인권 문제에 민감해졌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도 높아졌다. 막말과 독설이 김구라의 고유 캐릭터라 포기할 수 없다면, 스스로가 브레이크를 거는 지점을 찾는 것이 방송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닐까.

‘입으로 흥한 자’가 입으로 망했고, 다시 한 번 입으로 재기했다. 그럼에도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들은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다. 대중이 완전히 등을 돌리기 전에, 무례를 입담으로 포장하려는 행동은 이제 그만둬야 할 듯하다.

[사진] ‘라디오스타’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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