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인공 비바람을 쏘아 올리며
풍요의 역설
눈이 부시게 발전된 환경이다.
따뜻한 부모님의 지지, 발전된 기술을 바로 나타내주는 장비, 쾌적한 연습장, 그리고 친절하고 합리적인 코칭스태프. 과거의 선배들이라면 누리지 못했을 풍요로움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풍요 속에서 선수들은 가장 중요한 하나를 잃어버렸다.
바로 '결핍'이다.
옛날에는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선수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헝그리 정신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저절로 생겨나는 본능이었다. 그때의 코치는 차가운 세상에 맞서 선수를 안아주는 '난로'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적어도 환경적, 기술적인 면에서만큼은 부족함이 크지 않다는 것.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충분함'이 아이들이 가진 가장 치명적인 결핍이 되었다.
생각의 스위치를 끄는 아이들
훈련 중 막히는 순간이 오면 아이들의 눈동자는 허공이 아니라 코치인 나를, 혹은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사실 나는 아이들이 단순히 에너지를 쓰기 싫어하는 게으른 존재라고 함부로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그 가능성을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훈련장 위에서,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치열한 고민 대신 "모르겠으니 알려달라"며 너무나 쉽고 습관적으로 나에게 질문의 화살을 돌리는 그 반복된 행태를 마주할 때면, 나는 씁쓸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 지금 이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에너지를 쓰고 있지 않구나.'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구두쇠' 뇌가 에너지를 아끼려 가장 쉬운 길만 택하려는 본능이 이 아이들을 지배하고 있음을,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고민의 고통을 견디기 싫어하고 있음"을 나는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모습에서 뼈아픈 자책을 느낀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친절하게 답을 떠먹여 주던 나의 지난날이 아이들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 공범은 아니었을까.
학대와 훈련 사이, 코치의 고뇌
나심 탈레브는 충격을 받을수록 더 단단해지는 성질을 '반취약성'이라 했다. 근육은 찢어져야 더 크게 붙고, 뼈는 금이 가야 더 단단하게 붙는다.
하지만 과잉보호라는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들은 충격을 흡수할 능력이 없다. 야생(프로 세계)의 미풍에도 잎이 꺾인다.
그래서 나는 멈칫하게 된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이 훈련이, 안전과 배려가 최우선인 이 시대에서는 혹시 '학대'라고 불리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따뜻한 온실에 찬바람을 들이는 것이 가혹하다고.
하지만 나는 깊은 고민 끝에 이것을 '인공 비바람'이라 정의하기로 했다. 이것은 학대가 아니라, 현대 심리학이 말하는 '바람직한 어려움'이다. 치밀하게 설계된 고난만이 이 아이들을 진짜 선수로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이라는 이름의 백신
나는 이제 훈련장에서 입을 닫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고, 답답해하는 그 침묵의 시간을 견딘다. 코치의 무관심과 냉정함. 이것은 지금 이 시대의 선수들에게 놓아줄 수 있는 유일한 '정신적 백신'이다.
이 고통스러운 주사를 맞고 있는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나 또한 매일 백신을 맞고 있다.
나라고 왜 불안하지 않겠는가. 가르침에 확신이 서지 않아 흔들릴 때면 나 역시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어른이자 멋진 어른인 선생님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때때로 돌아오는 그분들의 무관심과 냉정함 앞에서 나는 그들을 오해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도리어 뼈저리게 깨닫는다.
'아, 내가 지금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기대려 하고 있구나.'
스승의 침묵은 나를 다시 바로 세우는 죽비였다. 그 냉정함 덕분에 나는 타인이 아닌 온전히 '나'에게로 시선을 옮겨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나는 겪어보았기에 알지만, 아이들에게는 이 차가운 벽이 인생의 '첫 경험'이지 않은가. 굳은살이 박인 나보다 훨씬 더 막막하고, 몇 배는 더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잔인해 보이는 '처음'이 없다면 어찌 될까.
홀로 서는 고통을 마주하는 그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영영 누군가의 등 뒤에 숨어 사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이 아이들의 그 아픈 처음을 지켜보는 냉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한다.
사랑하기에, 나는 겨울이 된다
학부모님들은 불안해하실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려야 한다.
"어머님, 20년 전에는 세상이 독했기에 우리가 따뜻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너무나 안락하기에 우리가 독해야만 아이의 밸런스가 맞춰집니다. 아이를 일부러 배고프게 하지 않으면 평생 배부름에 취해 사냥하는 법을 잊은 맹수가 됩니다. 제가 지금 주는 이 독한 약은 훗날 사회에 나가 맞게 될 진짜 매를 견디게 할 예방주사입니다."
과거의 코치로서 나는 선수들에게 난로같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의 코치로서 나는 선수들의 '벽'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그 벽을 넘어서는 방법,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고독 속에서 답을 찾아내는 희열. 그 감각을 깨우기 위해 나는 오늘 기꺼이 이 온실 속에 매서운 겨울바람을 불러온다.
이것이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제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도 가장 진실한 사랑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