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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Sep 24. 2023

뜨거운 파타고니아가
당신의 지갑에 미치는 영향

올해 여름이 두렵다

며칠 전 한 지인에게 문자가 왔다. "파타고니아에 자주 가시네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만 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가 한가로운 여행자쯤 되나 보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수년간 출장과 여행으로 여러 번 이곳을 오갔던 내게 최근에는 이 경이로운 대자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을 때 나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파괴'와 '변화'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남미에 오면 꼭 가봐야 할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은 매년 3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이 공원의 입구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수천 미터가 넘는 엄청난 산맥과 세월이 느껴지는 신비한 기운이 당신을 사로잡을 것이다. 이 지형은 무려 1300만 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하니 아찔한 세월이다. 

Torres del Paine의 아이콘, 3개의 봉우리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이 아름다움에만 재빨리 온 마음을 뺏겨 버리지는 않기를 바란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보면 그 넓은 공원 곳곳에서 새카맣게 타버린 나무들을 볼 수 있다. 1959년 이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난 뒤, 2005년에 체코에서 온 한 관광객이 가스불을 피우다가 15,000헥타르 (4천5백만 평 이상)을 활활 태웠다. 그리고 6년 뒤인 2011년에는 이스라엘에서 온 관광객 한 명이 숲에서 휴지를 태우다가 Grey 빙하 근처의 17,000헥타르의 넓은 땅이 또 한 번 불탔다. 극한의 기후에서 자라는 이곳의 나무들은 아주 느린 생육이 특징이다. 그렇기에 한번 파괴된 이곳의 생태계가 다시 복구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세기라는 긴 세월이 필요하다.   

이 지역의 대표적 야생동물인 우에물(Huemul)과 퓨마. 화재로 피해를 입은 것은 나무 뿐만은 아니다.


화재당시 모습과 화재 후 10년이 지나도 불에 타버린채 그대로 재가 된 나무

불탄 나무들을 가로질러 도착한 Grey빙하 앞에서도 나는 다시 한번 다른 종류의 '파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레이 빙하는 30년 정도 전까지만 해도 굳이 배를 타고 가까이 가지 않아도 전망대에서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빙하였다. 하지만 최근 30년 정도만에 빙하의 19km가 사라졌다. 

Grey빙하의 위치
흰색 선은 1986년도, 그리고 붉은 선은 2022년 빙하의 한계선

전망대에 서서도 저 멀리, 빙하의 일부가 조금 보일 뿐이었다. 공원의 화재처럼 누군가의 한 번의 잘못으로 인해 수세기가 걸쳐 복원되어야 하는 파괴는 아니지만 빙하는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파괴되고 있었다. 

(좌) 전망대에서 카메라 Zoom을 최대로 하면, 빙하의 시작이 겨우 보인다. (우) 길을 잃고 떠다니는 빙하조각들

파타고니아 남쪽 지역은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연어가 양식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재가 되어버린 나무들과 사라지고 있는 빙하를 보고 나니 이번 출장 중에 만난 15년간 연어공장에서 일을 해온 한 공장의 생산 책임자의 푸념도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해수온도 상승은 한 7~8년 전부터는 지속적으로 꾸준히 있어왔지만 올해 여름은 특히나 걱정스럽다는 것. 아직은 겨울이지만 벌써부터 해수온도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이런 슈퍼 엘니뇨현상은 11월 정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올여름 파타고니아 지역까지 뜨겁게 달굴 듯하다. 햇빛이 강하고 강수량이 줄면 물이 더 빨리 데워지고, 그 해수온도의 변화는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파타고니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해 페루에서는 망고 수출량이 약 30% 정도 급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페루의 옥수수산지인 한 지역의 옥수수 작황은 전년대비 92%까지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칠레에서도 과일 수확시기는 과거부터 매년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으며, 와인벨리도 시간이 지나면서 더 서늘한 남쪽 지역으로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 또한 강수량이 줄면서 파나마 운하의 수위가 급격히 낮아졌고, 결국 얼마 전 파나마에서는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의 수를 제한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물류비상승에 영향을 주고 결국 이런 비용들의 상승과 공급의 감소는 가격상승이라는 결과로 우리의 지갑을 더 빠듯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즐겨 먹는 진미채의 원료가 되는 오징어가 주로 어획되는 페루 앞바다의 해수온도 변화 그래프. 2023년 무섭게 치솟는 온도변화를 볼 수 있다.

우리의 몸이 미세하고도 놀라울 정도로 촘촘하게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이 지구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마치 나비효과처럼 한 곳에서 삐그덕 거리기 시작하면 그 영향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차이일 뿐, 결국 나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나는 이 일을 하며 더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엘니뇨, 라니냐 같은 현상은 자연스러운 기후의 현상이라지만, 걱정스러운 부분은 이 모든 변화가 너무 빠르고, 극단적인 수준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파괴를 하고 있는 걸까. 이 파괴의 영향이 나에게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직접 본 것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다. 문명의 영향이 가장 약한 지구의 끝에서도 이제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 파타고니아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  


돌 속에 뿌리를 두고도 멋지게 자라는 나무가 보여주는 자연의 놀라운 자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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