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오의 바다에 내 마음을 깊이 놓쳐버렸다. 그래도 가벼운 마음이라면 조금 있으면 떠오르겠지 일렁이는 해류를 원망섞어 바라보았으나, 그동안 그 마음이란 게 어찌나 무거워졌는지 좀체 떠오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음을 잃어버린 채 무거운 발걸음 이끌며 남향을 준비하였다. 보통은 꽃피는 춘삼월에 봄을 맞이하기 위해 간다는 것이 남향인데, 이번에는 조금 과하게 남향한다. 아무것도 아니던 시절 발표 기회 한번 더 얻어보겠노라 호주의 Monash University에서 주최하는 워크샵에 논문을 제출하였는데 덜컥 발표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발표의 기회를 얻는 동안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이 되어, 발표를 할 때는 소속과 직위가 바뀌어 있다.
여러 번 대륙을 넘어 다녀봤지만 적도를 넘어갈 일은 좀체 없었던 듯하다. 그러다 보니 겨울을 준비하는 우리네 정서를 뒤로 하고 여름옷채비를 하여 길을 나선다. 때 아닌 여름옷이 어찌나 가볍던지 10일을 여행하면서 매일 갈아입을 생각을 해도 짐이 여유가 있다. 그 성격 어디 가질 못해 출발 20시간 전에야 급하게 캐리어를 꺼내 손에 닿는 대로 주워 담으며 짐을 싸는데 비자를 확인하지 않은 것을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아뿔싸. 이마저도 평소 성격답지 않게 미리 비행기 체크인을 해야겠다 생각했기에 알게 된 것이지 하마터면 공항 가서야 비자를 받아야 했다는 것을 알게 될 뻔했다. 식은땀으로 관자놀이가 간지러워질 때쯤 흐릿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떨리는 손으로 급하게 비자를 신청했다. 출국까지 만 하루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다행히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Granted라고 신청 앱에 표시되어 한시름 놓았다. 그 짧은 30분 동안 꽤나 많은 생각을 했다. 만약 지금 못 가게 되면 어떻게 되지, 매몰비용은 얼마야, 지금 Monash에 못 간다 하고 하면 어떻게 되지, 학교에서 받은 grant는 어떻게 또 처리해야 되지? 참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잘 안 읽어보고 신청하다가 범죄이력란에 잘못 응답하면 비자가 묶여서 사나흘 소요된다고 하니 불안감은 한층 증폭되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급한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이것저것 체크를 했는데 제대로 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한숨 돌릴 때쯤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 네가 계획형 인간이 아닌 건 익히 알았지만 그게 비자까지 그런 식일 줄은 몰랐단다. 아니 나도 실수라고.
지난한 밤을 날아 시드니에 도착했다. 원래 컨디션이 그렇게 좋지 않았는데 밤을 새우다시피 시드니에 도착했더니 몸이 말썽이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 기침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진해제를 사서 왔는데 그렇게 효과가 좋은 약은 아닌가 보다. 공항에 내려 이제는 기계적으로 하는 것들이 있다. 공항 와이파이를 쓸 수 있을 때 휴대폰을 개통하고, 시내까지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고, 의례 공항에서 배포하는 그 도시의 시내 지도를 찾는다. 시드니는 그 모든 것이 매우 쉬운 편이다. 관광지일수록, 그중에서도 배낭여행객이 많을수록, 영어권일수록, 경제적 수준이 높을수록,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공항에서 해야 할 일이 쉽게 끝난다. 시드니는 단연 별 하나도 똑바로 못 채운 난이도 최하의 관광지다. 몇 년 전만 해도 그 지역의 교통카드라든지 심카드 따위를 사야 했지만 세상은 수시로 바뀌어 늘상 내가 쓰던 신용카드가 처음 오는 이국 땅에서 교통카드로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니 새삼 감탄할 따름이다. 휴대폰도 말할 바 없이 굳이 공항에서 이곳저곳에서 스케줄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 (사실 비교한 적도 없다. 꽤나 늦게까지 휴대폰의 도움 없이 물어물어 해외여행을 한데 자부심마저 있으니) 한국에서 이미 개통까지 끝내고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설정만 바꾸면 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세계화라는 말이 조금씩 실감이 된다.
새로운 도시를 가면 도시경제학자 나름의 의식을 치른다. 거창할 것 없이 어디든 그 도시의 정수를 내 발로 걸어서 밟는 것인데, 이게 생각보다 힘들고 오래 걸린다. 특히 서양의 도시는 모터로 이룩한 문화라 이런 뚜벅세레모니가 가끔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뚜벅이로 잘 나가던 20대를 생각하며 걷다 보면 두고 온 내님도 없는데 십리도 못 가 발병이 나곤 한다. 그래도 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의식이라고 부르지 않을 테다. 방향을 어디로 잡을까 하다가 뭘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어 오페라하우스로 방향을 잡았다. 시드니 CBD에서도 southern CBD에 숙소를 잡았던지라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반팔과 크리스마스트리라는 남반구 특유의 광경이 널려 있다.
내가 살던 도시가 아닌 다른 도시를 갈 때마다 재밌게 볼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 도시의 나무와 새다. 특히 그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가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새라면 은근히 말을 걸고 싶어진다. 인도에서는 숨 막히는 공기 사이를 누비는 카나리아가 그랬고, 네바다에서는 바람을 이기며 날고 있는 갈가마귀가 그랬다. 인간 종족은 땅을 점령하면서 그들에게 해롭다고 생각되는 선주종족을 제거해 왔는데 조류는 상대적으로 덜 해롭다고 생각한 듯하다. 아무래도 뒷산에 호랑이나 곰이 있는 것보다야 철 지난 감이나 파먹는 까치가 있는 게 나을 테니 말이다. 여하간 시드니에서도 말을 걸고 싶어진 새를 봤는데 주둥이가 길고 까마귀보다 조금 더 커 한국에 저런 새가 있다면 조금은 부담스럽겠다 싶은 그런 새다. 문득 이름을 알아야 말을 걸어도 걸겠다 싶어서 보태닉 가든의 안내인에게 이름을 물어보니 아이비스라고 한다. shy Korean인 나는 한없이 쭈삣대다 나중에 말을 걸어봐야지 하며 Circular Quay로 향했다.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마지막까지 말을 걸지 않았던 아이비스는 환경보호종으로 지정되어 함부로 대하지는 못하면서도 쓰레기를 파먹고 체취도 그와 유사하여 일명 bin chicken 쓰레기새라고 불린다)
멀리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지겨운 존재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southern CBD에서 오페라하우스를 향해 온몸으로 지구의 가장자리를 긁으며 올라가고 있으니, 차례대로 주거지구, 업무지구, 상업지구, 관광지구 순서로 인간 생태의 변화가 나타난다. 상점의 종류나 분위기, 거리의 정비상태, 유동인구의 밀도, 급기야는 사람들의 옷차림새까지 한블럭 한블럭 변해가더니 마지막에서는 한 길 건너로 일조마저 바뀐다. 이렇게 바다냄새 안나는 항구는 또 처음이다. 사실 바다냄새라는 게 반쯤 수산업의 냄새기도 하니 이미 여기는 바다 근처의 관광지라기보다 관광지에 바닷물이 철썩인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한 듯하다. 처음 맞이하는 것은 오페라하우스보다도 크루즈와 페리다. 남국의 여름이다. 표현이 뭔가 이상하다 해도 이보다 남국의 여름은 없을 것이다. 항구를 따라 남국의 여름이 늘어서 있었다.
오페라하우스 앞 계단에 앉아 사방으로 몰아치는 바닷바람을 한참 맞는다. 왼쪽으로는 열대도 온대도 아닌 남반구 해양성 식생이 흩어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근대와 현대의 건물이 그보다 큰 크루즈에 가려져 있다. 더 고개를 돌려보면 빅토리아 어쩌고 같은 이름이 붙어있음 직한 검은 철골 다리가 걸쳐 있다. (Sydney Harbor Bridge라는 정직한 이름이 붙어 있어 오히려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도 세계적인 명성이 무색하지 않게, 높은 땅 값이 민망하지 않게 잘 정돈되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 오히려 잘 정돈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원근을 무시하게 하는 무질서한 해안선이다.
Coastline paradox를 해안선에 걸어놓은 듯한 이런 해안선을 보고 있자면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무질서하다는 것은 도대체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낙엽 무성한 숲길에 은행잎이 열 맞춰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 태고의 숲이 정비된 숲길을 내며 자라기를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 질서정연하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질서정연하게 떠오른다. 그저 해안선을 따라서 오밀조밀 모여사는 우리네 인생을 바라보면서 정돈되지 않은 해안선을 떠올리다니 참 부자연스러울 수 있는 인간이다 싶다. 경사도 15도가 우리의 건축공학적인 한계다. 15도보다 가파른 땅에는 도무지 경제성이 나오지 않아 인류 문화 자체가 건설되지 않는다. 그래서 GIS로 땅의 경사도와 건물의 배치를 overlay하면 수관기피 마냥 기가 막히게 겹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삶도 그렇게 골짜기의 생김대로 물이 차오르듯 살아간다. 그 무질서한 해안선 덕분에 오페라하우스를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볼 수 있으니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시드니 도심을 걸으며 떠오른 또 다른 생각은 굉장히 점진적으로 진화해 온 도시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영국풍의 건물이 군데군데 있으면서 현대식 건물이 그 틈바구니를 메꾸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구시가와 신시가의 조화를 좋아하는지라 이런 식의 건물체의 융화도 보는 맛이 넉넉하다. 짧은 내 식견으로는 두 가지 이유만이 떠오르는데, 첫 번째는 호주가 산업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건설된 국가라는 것이다. 250년 채 되지 않은 짧은 역사로 이미 산업화가 진행된 영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이미 고층건물을 지을 수 있는 기술과 근대식 도시 계획이 가능한 인류 문화를 바탕으로 이런 도시가 건설되는구나 생각하니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우리나라는 북촌을 올라야만 종로를 배경으로 한 한옥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시드니는 신구의 조화가 한블럭안에서 일어난다. 둘 다 그 자체로 은근한 매력이 있다. 두 번째는 도시가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까닭이다. 드레스덴과 같이 돌 위에 돌이 쌓이지 않은 경험을 한 도시는 현대식 건축을 거부할 수가 없다. 도시의 풍경에도 지정학이 작용한다.
시드니와 멜번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바가 있다면 도시 자체가 하나의 현대 예술이라는 생각이다.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는 아트 갤러리가 규모도 방대하거니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싶은 작품들이 꼭 하나씩 있다. 멜번의 빅토리아 도서관 앞에 꽂혀 있는 도서관의 귀퉁, 자연물을 거스르지 않는 그다지 존재감 없는 동상들이 그렇다. 지금껏 단청이나 엔타시스식 돌기둥을 좋아해 왔는데, 이건 내 건축학적 지식과 예술적 깊이가 거기서 멈춘 까닭인 것 같아 도시의 구석구석을 톺아보았다. 역사의 길고 짧음은 그 자체일 뿐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아니다. 긴 역사는 때로 도시에게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남은 기억이 많다는 것은 반대로 남은 상처가 많다는 것이고, 남겨진 유산이 많다는 것은 반대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지켜야 할 가치라는 것은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말할 때도 있다. 멜번에서 시드니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본 시드니 전체의 정경은 현대 문명을 그대로 그려놓았다.
Monash에서 학위를 받은 동료 연구자인 원 교수님이 내가 Monash에 가게 됐다고 하니 몇 가지 팁을 전해주었다. 멜번은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커피를 사 마셔도 맛있다. 시드니의 차이나타운에시드니 갈 때마다 들르는 Yogurt 가게가 있는데 여기는 꼭 한번 가보길 권한다. (Yogurt with steamed rice인데, 요거트에 밥 말아먹는 기분이라기에는 너무나 맛있어 시드니에 있는 동안은 매일 한 번씩 들렀다) 이러한 다민족 다인종 국가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여기서는 이걸 먹어야해 라는 음식이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굉장히 요리를 잘하는 인종이 여기에 정착했다면 그 음식점을 찾아야 하는데, 이번의 경우는 아르헨티나식 스테이크였다. 비자로 한창 난리를 칠 무렵 대학원 동기가 모여 있는 카톡방에 관련해서 떠들었는데, 동기 중 한 명이 멜번에 있는 음식점을 추천해 주었다. 굉장히 맛이 있어 낮부터 술에 취해 멜번 CBD를 걸었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내 여행이 나를 사랑해 주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채워지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경험이다.
Monash University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Melbourne의 suburb에 위치한 Monash는 주변이 단독주택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9층의 라운지에서 내려다보면 그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보이는 것의 70%는 우거진 플라타너스이고 중간중간 단독주택이 끼워져 있다. 이번 학회는 환경경제학 워크샵으로 나는 도시경제학자로서 도시구조와 온실가스에 대한 주제를 발표하기 위해 온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비판하는 논문이다. 발표하는 내내 이성과 감정의 괴리가 흥미를 유발하였다. 학회를 참석하다 말고 이런 탁상공론을 듣고 있느니 몸소 suburb를 체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회 중간에 빠져나와 눈앞에 보이는 골목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걸어다니는 사람은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과 운동을 하는 사람들 몇몇이 전부였고 집집마다 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차도만큼 인도가 잘 정돈돼 있지도 않다. 거봐 내 말 맞잖아. 그래도 이런 town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이런 풍경을 매일 보면서 연구를 하면 그런 여유 가득한 연구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나 한다.
도심은 충분히 배울 만큼 배웠고 즐길 만큼 즐겼는데 자연은 그러하지 못했다. 한나절 시간을 내어 블루마운틴에 다녀왔다. 봉우리는 딱히 없고 완만하게 경사지는 산비탈을 올라갔다. three sisters에 올라보니 유칼립투스 바다가 장관이다. 그랜드 캐년에 비해 여기가 밀리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좋아한다면 호주에서의 체험은 무궁무진하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된다. 시드니 전체에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맛있는 Beef burger가 Katoomba에 있었다. Wentworth fall의 바람은 나를 밀어붙였다. 내 체중에 어디 가서 부족하지는 않은데 Wentworth의 바람은 나를 몹시도 흔들었다. 계곡 사이로 흩어지는 유칼립투스유가 산화되어 Blue Mountain을 보여주었다. 해가 지도록 말없이 그 순간을 즐겼다. 이 경치에서 이런 바람을 맞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없다. 깊이 박힌 두 다리로 유칼립투스 청해를 헤쳐나가자. 언젠가 로드 트립을 하러 와야겠다 다짐하며 별을 담았다.
한없이 쏟아지는 여름에서 생명을 충전하자.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마주하자. 아니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품자. 이 세상은 사랑할 가치가 있다. 여행 내내 들은 라디오의 사연에서 중학생 아이와 감정적으로 부딪힐까봐 지하주차장 차 안으로 피신하였다는 사연에 부딪히지 않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얼마나 현명한가요 하는 아나운서의 위로가 내게도 다가왔다. 중학생 같은 우리 세상. 때로는 피하는 것도 능사. 잠깐 호주라는 지하주차장에 내려왔다. 여행 중에도 수없이 흔들렸다. 신이 되려 하지 말자. 한숨 크게 돌리는 호주에서 나와 깊게 대화하였다. 돌아가는 길. 저기 무언가 떠오른다. 아름다운 내 마음.
around 2025 Black Friday
at the new contin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