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ity

by YeonJeong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여행을 할 때 글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여행의 낯섦에서 자기를 더 찾고 의지하게 되는 까닭이다. 근래의 여행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여행지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결정되는 것인데 전연 불만은 없다. 오히려 불필요한 고민을 줄여주니 고마울 때도 많다. 12월에 마친 여행을 12월에 다시 시작한다. 세상사 같은 강물은 없다지만 각주(刻舟)의 마음은 아무래도 다르듯, 뉴욕은 아무래도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변방 소국, 변방 도시 출신으로서 대표적인 강대국의 대표 도시가 나와 무슨 연고가 있겠냐마는, JMP를 뉴욕의 주택 정책으로 쓰는 시점에서 그 자체가 연고가 된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지도를 아주 외워버릴 정도로 살펴봤는데, 그곳에서 여행을 다시 시작하였다.


도시경제학자가 뉴욕을 바라보는 느낌이란 사뭇 진지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뉴욕을 연구하였다면 그 정도는 배가가 된다. 그러다 보니 이 글은 구조적으로 몹시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뉴욕이라는 도시는 칭찬을 해도 역사적으로 흩어진 수많은 찬사를 이길 재간이 없고, 비판을 해도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어디 전공이라는데 뭐가 다른지 보자 하는 독자를 생각할세라면 본전이나 제대로 찾을 수 있는 글인지 한없이 망설여진다. 더욱이 1등이기에 1등인 이유를 찾는 수많은 미사여구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저렇게는 글을 쓰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글의 흐름을 방해한다. 지리한 변명으로 서두를 더럽히는 마음을 이쯤에서 지워내자.


언젠가부터는 어떤 도시에 갈 때마다 그 도시를 지독하게 걸어 다닐 것을 상정하고 호텔의 위치를 정하는데, 이번에는 처음 숙소를 Broadway 105번가 근처로 잡았다. 브로드웨이를 따라 월 가 (Wall Street)까지 걸어가 보기 위해서였다. 오래된 습관이지만 도시를 걸어 다니는 것은 여행의 차원을 높여보고자 하는 처절한 노력이다. 지하철이나 택시를 이용해서 관광지에서 관광지로 마치 순간이동하듯 다니며 도시를 주마간산 구경하고 싶지는 않다. 이를테면 지도상에 점을 찍는 행위이니 구분하자면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이다. 방문은 0차원이다. 방문으로는 점을 찍을 수는 있을지 언정 선을 잇지는 못한다. 하나의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가급적이면 걸어가 보려고 하는데 이것은 그나마 방문을 여행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여행(旅行)은 애초에 살던 곳을 떠나 다니는 것을 의미하니, 점과 점을 이어 차원을 높여야 비로소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지하철보다는 택시를 좋아하고, 택시보다는 버스를 좋아하고, 버스보다는 그래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지하철은 이동하는 내내 눈과 귀를 가려 어디로 가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땅 위의 풍경이 어떠한지, 건물들 사이로 길은 어떻게 나 있는지 조금의 정보도 주지 않은 채, 점을 점으로 이동시켜 주기만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스가 좀 더 괜찮다. 그래도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고 길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교통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두 발로 그 길을 만져보는 것 만하지는 못하다. 한 발짝 한 발짝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며, 이 도시가 살아있음을 느낄 때 대화가 비로소 시작된다. 익숙하지 않은 인도에서 물웅덩이에 신발을 적시며 육담을 흩뿌릴 때가 돼서야 비로소 아 여기는 이렇게 살아가는 곳이구나 온몸으로 깨닫는다.


자연이 만든 도시와 사람이 만든 도시는 그 생김새부터가 다르다. 분명 맨해튼에도 브루클린에도 실개천이 흘렀을 것이고 야트막한 구릉이라도 있었을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온데간데없다. 정 없이 잘라 내린 효율 좋은 Avenue(街)와 Street(路)이 오차 없이 교차한다. 한때는 친구처럼 지내는 JD에게 툴툴거린 적이 있다.

'Go straight two blocks and turn left.'라는 표현은 한국인에게 가르치려고 해봐야 하나도 와닿지 않는다. 우리나라 지도 어디든 봐라 세상에 Go straight 할 수 있는 길이 어디 있냐. 굳이 따지자면 우리나라에서는 'Following this way'라고 해야지 우리나라에서는 Go straight 해봐야 하천으로 걸어 들어갈 뿐이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별로 쓰임새 없는 말을 학교에서 가르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뉴욕이나 멜버른 같은 자연 이전에 사람이 도착한 도시에서는 참 유용한 표현이다. 참 효율적이다. 지도상의 좌표를 현실에다 구현해 놓았다. 길눈이 어지간히 어두워도 이런 도시에서는 길을 잃으래야 잃을 수가 없다. 길 자체가 기계적이다. 길 따라 한가로이 걸어볼 여유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리 느긋한 사람도 이 도시에서는 효율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들어오는 이상 넌 바쁘고 효율적으로 살기로 암묵적으로 동의한 거야 말하는 것 같다. 정말 자기주장 강한 도시다. 사람이 도시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사람을 재단한다. 마치 이 길의 생김처럼.


데카르트인들 좋아할까 싶은 이 도시를 그나마 사람은 그래도 연속성의 존재라고 깨닫게 만드는 장치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사선으로 세로지르는 브로드웨이와 그들의 센트럴파크이다. 일전에 읽은 뉴욕에 대한 칼럼 중에 가로(街路)로 점철된 맨해튼을 사선으로 내리지르는 브로드웨이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거리에 변칙을 부여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실제로 그러하다. 그 글의 어조는 1등이 1등인 이유를 찾은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글쎄 잘 모르겠다. 가로로는 얼추 250-300미터, 세로로는 7-80 미터 정도의 블록이 뒤덮고 있는 격자를 애매한 사선으로 길을 낸 꼴인데, 그러다 보니 애매하면서도 절묘하게 잘려나가는 블록이 생겨나게 된다. 블록의 가운데를 사선으로 치고 지나가면 원래 하나였던 듯 맞물린 사다리꼴의 작은 블록이 두 개 생기지만, 운이 나쁘게 블록의 가장자리를 비껴 지나가면 삼각형의 무용한 땅이 생긴다. 이런 땅 조각이 메이시즈의 한쪽 귀퉁이, 플랫아이언 따위다. 그들은 뉴욕이기 때문에 랜드마크가 되었다 싶다.


이러한 사선의 횡포가 아리송한 각도로 기존의 격자 가로(街路)와 절묘하게 맞물리면 삼각모양의 땅 조각이 점 대칭의 형태로 서너 블록에 걸쳐서 생겨나게 되는데, 그러면 꽤나 넓은 땅이 생겨나게 된다. 안 그래도 좁은 맨해튼에 이런 쓸모없는 넓은 땅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땅이 될 수밖에 없다. 타임스 스퀘어는 단언컨대 내가 본 광장 중 가장 못생긴 광장이다. 광장은 크게 트인 공간으로 그 기능 상 사람이 모여드는 곳인데, 주로 정치, 문화, 교통 상의 요지에 위치하게 된다. 서울로 치면 시청광장과 세종대로, 서울역 앞, 보신각 따위가 떠오른다. 위상적으로 광장은 convex hull이 좋다. 중심이 있고 그 중심을 누구나가 공평하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직접적으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이 공간이 부여하는 민주성이다. 요컨대 공간의 의미가 주변지보다 다소 높게 마련이다.


타임스 스퀘어는 오히려 인파가 고여든다. 육방(六方)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이 타임스 스퀘어에 고인다. 이는 애초에 타임스 스퀘어의 본질이 땅조각의 맞물림이라는데 까닭이 있다. 타임스 스퀘어는 근본적으로 3개의 길고 좁은 직사각형이 한 점에서 만나는 형태로 그 사이에 고층건물이 침투하고 있어 중심만이 가지는 공간의 독재가 하릴없는 땅조각에 고여 있다. 가장 민주적인 공간에 가장 전근대적인 광장이 펼쳐져 있다. 사람들이 고여 들어 끓고 있다. 그러다 보니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있어도 한 점에 집중하기가 어렵고 같이 있으나 따로 있는 군상의 조각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인파는 있어도 군중은 없는 그런 공간이다.


공간에도 다수결이 존재한다. 정신없는 빌딩이 즐비한 가운데 이런 거대한 녹지는 오히려 어색하다. 과거 구글맵으로 뉴욕을 내려다보던 때에 센트럴 파크를 보고 보안 상으로 가려진 군사시설인가 하는 착각을 했을 정도로 네모반듯한 거대한 공원이 있다. 300년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여기도 분명 한 발짝 앞으로 나가기도 힘든 야생의 땅이었을 텐데 하고 착각하게 하는 공간이다. 뉴욕은 분명히 지구가 생겨날 때부터 빌딩숲이었을 테니 말이다. 네모 반듯한 센트럴파크를 보면 열 맞춰 자라는 자연이 여기 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한편 센트럴파크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 센트럴파크는 분명 가운데 있는 공원이라는 뜻일 텐데, 맨해튼에서는 북쪽에 치우쳐진 가운데에 있다. 결국 모두의 가운데가 아닌 그들의 가운데라는 것이다. 센트럴파크가 시작하는 업타운은 부유층이 즐비한 동네인데, 센트럴파크는 이 동네들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센트럴파크는 그 운영비의 큰 부분이 근방에 살고 있는 부자들의 기부에 의해 충당되고 있다. 이들은 헌액을 거부하고 그들 나름의 순수한 의미에서의 기부를 통해 센트럴파크를 조성하는데, 오히려 1999년 JPE에 실린 American Ghetto라는 논문이 떠오른다. 주변을 살기 좋게 만들고 주택가격을 그만큼 매우 높여 부촌을 형성하여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함으로써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유지한다는 것인데 (원저原著는 인종의 분리를 다루었다. 그래서 American Ghetto.),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상통하는 논리가 유지된다고 하겠다. 자본주의는 항상 주인이 없고, 교묘하며, 아름다워 보이고, 뭉근한 법이다.


길을 따라 걸으면 그 도시의 그러데이션이 느껴진다. 한 블록 한 블록 걷다 보면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사가 연속적으로 변해간다. 그런데 이 도시의 그러데이션은 단차가 있다. 부촌인 어퍼웨스트를 지나 링컨 센터와 타임스 스퀘어로 연결되는 다운타운을 지나면 볼 것 많은 NOHO와 SOHO로 이어진다. SOHO 끝단에서 카나비스 냄새가 진동하는 지역을 너댓블록 빠르게 통과하면 시청 광장과 파이낸셜 디스트릭트로 마무리되는데 도시의 온도가 얼마나 급격하게 변하는지 며칠에 걸쳐서 봐야 할 인간사를 2시간 남짓한 시간에 진하게 본다. 분명히 평균내면 고만고만한데 분산이 매우 커서 불안정한 결과를 보는 것 같다. 참 완급이라는 게 없는 도시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특기 중 하나는 일반명사의 고유명사화이다. 좋게 보면 긍정적 의미의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고, 나쁘게 보면 오만방약이다. 뉴욕의 건물에는 유독 정관사가 많이 쓰인다. 이를테면 The Plaza, The Oculus, The Met, The Edge, The Spiral, The Vessel, The Shed 등이 그것이다. 때로 정관사는 참 폭력적이다. 자부심과 안하무인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만 바라보면 자부심인 것이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타자를 무시하는 처사가 된다. 볼수록 Vessel보다는 Pinecone 같은데 Vessel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적어놨다. 급기야는 맨해튼에 살고 있는 사람은 자기는 ‘the City’에서 왔다고 소개한다. 그래도 그 건물에 가보면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상에서 정관사를 찾아보는 것은 뉴욕을 여행하는 하나의 재미다.


뉴욕 주택 정책을 연구하면서 도구변수를 발굴하기 위해 온갖 배경지식을 찾아 헤매다가 뉴욕의 지질도와 건물을 GIS로 겹쳐보면서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맨해튼은 지질학적으로는 삼각주의 하중도인데, 허드슨 강이 쓸어온 토사에서도 미립질의 모래가 만든 땅이다. 하지만 전체가 그런 것이 아니라 큰 변성암질의 바위덩어리의 아랫부분에 유속이 느려지며 모래가 퇴적된 것인데, 그 경계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심지어 깔끔하게 잘려나간 선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톡 튀어나온 바위덩어리의 돌출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센트럴 파크를 중심으로 하는 어퍼이스트와 어퍼웨스트의 지반은 매우 견고한 반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아래의 땅은 사암으로 지반이 비교적 빈약하다. 필라델피아로 가는 기차에서 우연히 신문사 기자를 만나 통성명을 하며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다가 맨해튼의 지반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기자 선생님은 ‘빌딩을 지을 때 그것을 알고 지었을까요?’ 물어보았는데, 그때는 ‘잘 모르겠지만, 심증적으로는 알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는데, 다시금 생각해 보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에 지었고, 뉴욕 지하철은 1904년에 개통이 되었으니 경험적으로 알았음이 분명하다.


한낱 인간의 단위이지만, 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 당 지가(地價)가 가장 비싼 곳이라고 한다면 맨해튼이 손에 꼽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대(rent)가 높아서 생겨나는 재미있는 맨해튼 만의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공중권(air right) 거래의 실제 사례이고, 두 번째는 이를 이용하여 극단적인 용적률을 적용한 펜슬 타워 Pencil Tower이다. 땅을 한 필지 사고팔면 지표면만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지상과 지하까지 그 배타적 권리가 거래가 되는데, 이는 그 권리 중 일부를 다시 팔 수도 있다. 즉 지상에서 일정 높이까지만 내가 사용하고 그 위의 공간은 다른 사람에게 다시 팔 수도 있는 것인데 이를 공중권의 매각이라고 한다. 법리적으로야 안될 이유가 없지만 현실에서는 그 사례가 극히 드문데, 다른 온전한 땅에 건물을 짓는 것이 건축비용도 적게 들고 공간도 온전하게 사용하며 행정적인 비용도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이 부족한 맨해튼에서는 공중권이 간혹 거래가 된다. 그러다 보니 건물 위에 다른 고층 건물이 올라가는 진귀한 풍경도 볼 수 있다. 펜슬 타워는 그러한 공중권의 매입을 통해 용적률을 극단적으로 높인 빌딩이다. 센트럴파크에서 다운타운을 향해 보고 있자면 탁 트인 공간을 죽죽 긋고 있는 가늘고 높은 건물이 여러 채 있다. 주변 건물의 공중권을 매입하여 한 필지에 몰아넣은 후 좁은 공간에 극도로 높은 건물을 지은 것인데 최고층에는 필시로 펜트하우스가 있다. 야경마저 사고파는 세상이다.


이번 여행은 학자로서는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 먼저 도시경제학자에게 뉴욕이 지니는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교수가 되고 나서 처음 참석하는 전미경제학회이면서, 지도 교수님의 현장 발표를 들을 수 있는 얼마 없는 기회도 있었다. 더군다나 UPenn의 도시인 필라델피아에서 전미경제학회가 열리는 해이기도 했다. 작년 참석한 ASSA는 어떻게 학회에 참석하는지 어떤 세션이 중요한 세션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애송이였는데, 올해는 관심 있는 세션에서 토론에도 참여하였으니 스스로 칭찬할 만하다. 내후년쯤에는 직접 발표도 해보겠다 다짐한다.


뉴욕에 대해 너무한 비판만을 늘어놓은 듯 하지만, 그럼에도 세계를 선도하는 도시 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근 100년의 세계에게 기준을 제공하고, 수많은 작품의 배경이 되며, 동시에 미래를 향한 실험의 공간이다. 특히 문화와 예술의 측면에서는 한 마디 한 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의 머리는 부정연산을 할 수가 없다고 하니,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머릿속 배경은 이 도시의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의 지배를 받고 있다. 주어진 시간만큼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도시이다. 그들의 디저트만큼이나 강렬하고 자극적이다.


이번 여행에서 처절할 정도로 실패한 것이 있다면, 수면을 살피는 일이다. 모든 나를 흔드는 바람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해 물비늘 하나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져오는 중차대한 임무가 있었는데 시종일관 실패했다. 오두막에서 전해진 편지 묶음을 들고 여행을 시작했지만, 오두막이라고는 있을 수가 없는 도시에서 갈 곳을 잃었다. 강퍅자용한 측도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는 윤의에 홀로 빠져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니 지친 여행이 끝나 있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뒤흔들린 시차가 고요한 새벽 나를 깨워 앉힌다. 지각한 고요 속에서.




2026년 1월 13일 새벽

극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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