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의 역사 Season 1 · 달콤함의 기원
곡식을 굽는 불에서 시작된 단맛은 이제 물 위로 옮겨 갔다. 고대 이집트의 제빵소에는 언제나 양조용 항아리가 함께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곡식의 전분이 불에 닿을 때와 물속에서 발효될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고 있었다. 불이 전분의 구조를 바꾸었다면 물속에서는 효소와 시간이 그 변화를 이어 갔다. 단맛은 자연의 선물이 아니라 인간이 다루는 기술이 되기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의 주식은 곡물로 만든 빵과 맥주였다. 두 음식은 같은 반죽에서 시작되었다. 고고학자 델웬 새뮤얼(Delwen Samuel)은 케임브리지대 박사 연구와 이후 Science 지 논문(1996)에서 아마르나 노동자 마을 유적지의 보리와 에머밀 잔류물을 분석했다. 광학 현미경과 전자 현미경 분석을 통해 고대 이집트의 제빵과 양조 방식을 재구성했다. 빵을 굽는 과정과 맥주 발효 과정 모두에서 전분의 호화와 당화가 나타난다. 전분은 열과 효소의 작용을 거치며 당으로 분해되고 그 과정에서 은은한 단맛이 생긴다.
이집트의 맥주는 오늘날의 맥주와 달랐다. 곡물을 반죽해 일부는 빵으로 굽고 나머지는 따뜻한 물과 함께 항아리에 넣어 발효시켰다. 굽는 과정에서 전분은 호화되고 반죽 속 발아된 곡물의 효소가 전분을 당으로 전환했다. 효모는 자연적으로 증식하며 향과 단맛을 만들어 냈다. 아마르나와 아부시르 등 주요 발굴지에서는 양조용 항아리와 곡물 잔류물이 함께 발견된다. 분석 결과 알코올 도수는 약 2~4도였고 단맛은 보리와 밀의 당화 과정에서 남은 잔당에서 비롯되었다. 이집트 행정 문서에는 노동자의 하루 급여로 빵 열 개와 맥주 한두 항아리가 지급되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맥주는 식량이자 노동의 보상이었다.
맥주는 이집트 사회 전 계층이 마신 음료였다. 그러나 형태와 의미는 신분에 따라 달랐다. 노동자와 농민은 걸쭉하고 탁한 맥주를 마셨다. 단맛은 강하지 않았지만 영양이 풍부했고 하루의 에너지를 보충했다. 귀족과 사제층은 꿀이나 대추야자 즙, 향료를 더한 맥주를 마셨다. 단맛은 더 진했고 향도 풍부했다. 신전 제의용 맥주는 더욱 정제된 형태였다. 람세스 3세 시대에 작성된 《대 해리스 파피루스(Papyrus Harris I)》에는 신전에 바쳐진 빵과 맥주의 수량이 기록되어 있다. 수천 개 단위에 이르는 규모였다. 빵과 맥주는 신전 제의의 중심 음식이었다.
The Destruction of Mankind로 알려진 신화에서도 맥주는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천상의 암소의 서(Book of the Heavenly Cow)』에 담겨 있다. 태양신 라(Ra)는 반란을 일으킨 인간을 벌하기 위해 여신 하토르를 지상에 내려보낸다. 하토르는 학살을 멈추지 않았고 신들은 석류즙으로 붉게 물든 맥주 수천 항아리를 들판에 쏟아붓는다. 하토르는 그것을 피로 착각하고 들이켰고 술에 취해 분노를 거두었다. 이 신화는 실제 제의와도 연결된다. 하토르 축제에서는 붉은 맥주를 신상 앞에 붓고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마셨다.
맥주는 불의 열과 효소의 작용이 함께 만든 단맛이었다. 불이 전분의 구조를 바꾸고 효소가 그 변화를 이어 갔다. 인간은 단맛을 기다리는 존재에서 단맛을 다시 만들어 내는 존재로 나아갔다. 이후 사람들은 온도와 시간, 재료의 비율을 바꾸며 단맛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발효된 맛, 농축된 시럽, 캐러멜화된 향. 단맛은 점점 더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