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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Dec 19. 2018

고가의 최첨단 귀마개와 조우하게 됐다

안녕, 이따금 찾아오는 디에디트의 외고 노예 제이킴이다. 지금은 충실한 노예의 타이틀을 달았지만, 두 해 전만 해도 나는 에디터H&M의 편집장이었다. 그 중에서도 내 후배 경화미(A.K.A. 에디터H)는 꽤나 예민한 아이다. 조금만 환경이 어수선해도 집중을 못하고,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김없이 체한다. 소음에 민감한 것도 문제다. 예민함의 풀옵션이라고 보면 된다. 모름지기 예민보스란 이 세 가지를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법이니까. 


적어도 소음 문제라면 현재 시점에서 다양한 솔루션이 존재한다. 그 중 ANC 헤드폰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차선책으로 소음 차단 분야에서 가성비 끝판왕인 3M 귀마개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싸고 좋은 걸(!) 에디터H는 못 쓴다. 뭔가 귀를 꽉 막아서 답답하고, 아프고 어지럽다나 뭐라나.


다행히도 세상엔 이렇게 예민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고, 브랜드는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힘쓰고 있다. 그 결과 보스 노이즈 마스킹 슬립버드라는 고가의 최첨단 귀마개와 조우하게 됐으니까.

원래 리뷰의 첫장은 언박싱으로 시작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이 제품은 보스에서 빌린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구입한 것도 아니다. 가까운 지인이 구입한 제품을 강탈해 느긋하게 사용한 뒤 작성한 리뷰임을 알린다. 고로 언박싱은 과감히 생략하겠다. 박스 겉면 비닐을 벗기지 못하는 언박싱은 의미가 없는 걸.

그래도 내용물 소개는 하는 게 필자의 도리인 것 같다. 일단 충전용 본체(?)와 좌, 우 이어버드 이외에 전원어댑터, USB 5핀 케이블, 그리고 해외에서 사용 가능한 다양한 멀티 플러그셋. S,M, L 사이즈의 실리콘 이어팁과 여행용 충전기 파우치가 들어있다.



그런데 이거 뭔가 낯익다. 흔히 쓰는 쿠션 팩트랑 닮지 않았나? 혹시나 하고 주변 여자 사람 가방에서 한 개 구해 나란히 비교해 봤다. 모양 뿐만 아니라 크기까지 역시나 똑같다. 파우치에 들어갈 만한, 딱 화장품 사이즈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충전기 커버는 자석이 들어있어, 살짝 밀면 자성에 의해 자동으로 위로 밀려 열리는 형태다. 이런걸 흔히 반자동 방식이라고 부른다. 


이어버드 역시 충전기 본체의 자석으로 인해 애플워치나 에어팟 충전기처럼 근처에 가면 자력으로 찰싹 달라붙는다. 손을 파르르 떨면서 정밀하게 집어넣지 않아도 된단 얘기다. 마치 에어팟 콩나물(!)을 충전기 본체에 꽂듯 무심한듯 시크하게 살짝 올려 놓으면 되는데 가격이 비싸 마음처럼 쉽지 않다. 참고로 32만 9,000원이다.



충전기 자체 배터리 상태를 알려주는 인디케이터는 중앙에 점 다섯개로 사용자에게 잔량을 알려준다. 좌우의 긴 바는 각각 이어셋을 충전할때 점멸하며 충전 진행 상황을 사용자에게 알려준다.



화장품 주인에게 착용을 부탁했다. 참고로 이어팁은 M사이즈다. 필자(성인 남자)에겐 살짝 작았는데 딱 맞았다. 세상 모든 사람을 S, M, L 3가지 사이즈로 규정하다니.


[혹시나 하고 그녀의 딸에게 착용해 봤다. 성인용이 확실하다]


충전기 본체 충전은 약 2시간 내외. 이어셋은 완전 충전 상태에서 약 16시간 정도 사용 가능하다. 함께 가지고 다니는 충전기를 통해 한 번 더 완충할 수 있기 때문에, 약 32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평균 8시간 수면으로 잡았을 때 총 4번. 그러니까 잠잘때만 사용할 경우 추가 충전 없이 4박 5일을 커버할 수 있다.



먼저 착용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적절한 크기의 이어팁을 사용하고 전용 앱에도 있는 착용법을 숙지했다면 장시간 착용해도 귀에 거부감이 없다. 이를 위해 보스는 평균적인 귀의 크기와 모양을 맞추기 위해 다양한 귀 모양을 3차원 스캔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귀의 안쪽 굴곡에 꼭 맞는 유연한 디자인의 스테이히어 플러스 슬립(StayHear+ Sleep) 이어팁은 뒤척이거나 옆으로 자더라도 귀에서 빠질 걱정 없이 편안한 착용을 돕는다. 시중에 널린 3M 귀마개 보다 100배 비싼값을 치러야 한다는게 문제다.


[양심적인 보스, 안 되는건 안 된다고 인정하고 있다]


가장 많은 이야기와 설명, 혹은 해명이 필요한 건 역시 외부 소음 차단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일단 이어버드를 착용했다고 해서 외부 소음이 사라지는 방식이 아니다. 노이즈 마스킹(noise masking)이란 표현에서 대충 짐작이 가듯이 소음을 다른 소리로 덮어버려 착용자가 외부 소음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캠핑장에서 모닥불 타는 소리라던가. 바닷가 파도 소리 숲속 새소리. 비 내리는 소리 같은 걸로 덮어서 마음의 평화와 숙면 혹은 휴식에 도움을 준다. 이런 자연의 소리를 보스는 수딩 사운드(Soothing sound)라고 부른다.


비행기에서도 특유의 소음이 사라지는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나오는 소리로 일정 수준 가려 신경 쓰이지 않을 수준으로 낮춰줄 뿐이다. 다시 한번 확실하게 밝히지만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게 아니라 자체 ASMR을 이용해 사용자의 청각을 속여 외부 소음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가려주는 게 이 녀석의 주특기다.


[소나기, 하류, 바스락 소리 등 수딩 사운드 중에서 골라 본체로 다운로드 하면 된다]


마치 마술사나 소매치기 범이 주로 사용하는 정신 빼놓기와 비슷하다고 설명하면 이해가 될까. 바닥에 동전을 일부러 떨어트리고 선반에 올려둔 가방을 훔쳐가는(필자가 실제로 스위스 취리히 기차역에서 당한 소매치기 수법이다)것 말이다. 엽떡을 먹기위해 쿨피스나 우유를 준비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원리라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알아둘 점이 있다. 스마트폰과 연결해 블루투스로 재생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택한 수딩 사운드를 이어버드 본체로 다운로드해 재생하는 방식인 만큼 용량 제한이 있다. 리스트에 있는 모든 수딩 사운드를 다운로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스마트폰에서 재생해 들어 본 다음 원하는 사운드만 다운로드하는 ‘선택과 집중’ 이 이곳에서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슬립버드에 있는 블루투스 기능은 스마트폰 앱과 연결을 위한 것일 뿐, 음악을 스트리밍해서 듣거나 외부 콘텐츠에 접근할 순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비싼 귀마개라고 하는 것이다.



충전기 본체에서 이어버드를 빼는 순간 자동으로 전원이 켜지고 블루투스 페어링 모드로 전환된다. 좌우가 각각 별도의 기기로 총 2개의 스마트폰과 연결할 수 있다.


자 이제 테스트라는 핑계로 한숨 자야겠다. 이어버드를 착용하고 수딩 사운드는 ‘캠프파이어’로 골랐다. 나는 아웃도어를 사랑하는 캠퍼니까. 풀벌레 소리와 장작 타들어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내 고막을 강타했다. 적당한 음량으로 조절하고 누웠더니 잠시 후 레드썬. 눈 뜨니 아침 해가 밝았다.


밤새 착용해도, 심지어 옆으로 누워서 한참 자도 귀에서 쥐(?)가 난다거나 불편해 잠을 설치는 일은 없었다. 귀를 통해 계속 들리는 수딩 사운드는 신기하게도 잠을 자는데 영향을 주지 않았다. MSG를 조금 치자면 산속에 홀로 텐트 치고 야영을 하는듯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에서 느낄 수 있는 ‘세상과의 단절’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가사에도 나오듯 ‘no escape from reality’.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ANC가 시공간을 완전히 비틀어 순식간에 방음실 같은 곳으로 이동하는듯한 기분이라며, 이건 마치 자발적인 의지로 홀로 산중에서 생활하는 ‘나는 자연인이다’ 속 주인공에 가까운 기분을 선사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외부 소음을 없애는 게 아니다. 그걸 기대했다면 30만 원이 넘는 이 고가의 귀마개에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확실한 외부 소음 차폐를 원한다면 ANC 헤드폰이 압도적이다.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면 절대 이걸 사면 안된다. #방출각



수면용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본래 헤드폰을 쓰고 침대에 누워 숙면을 취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슬립버드는 가능하다.잠결에 이리저리 뒤척여도 상관없고 옆사람이 코를 골거나 위층 아이가 뛰면서 생기는 층간 소음, 바깥 차도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 정도는 가볍게 막아준다. 이 녀석이 잘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결국 꿀잠용 제품 정도로 결론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깨어 있을 때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용도로 쓰겠다면 솔직히 말리고 싶다. 앱에서도 수딩 사운드와 휴식에 최적인 사운드를 제공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명상용으론 좋지만 업무시 직장 상사의 잔소리를 막는데는 역부족이란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거실에 틀어놓은 TV 소리, 옆사람이 통화하는 소리도 수딩 사운드로 막거나 걸러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럴때는 확실히 노이즈캔슬링이 필요하다. 아! 마침 보스에는 QC35 II라는 엄청난 녀석이 있다. 차라리 조금 더 보태 그걸 사라. 아니면 소니의 아이유 헤드폰 WH-1000XM3를 사도 되고. 이건 취향껏 알아서…


마지막으로 잠귀가 어두워 못 일어날까봐 살짝 걱정인 독자를 위한 한 마디. 적어도 슬립버드를 끼고 꿀잠을 자다가 알람을 못 듣고 낭패 볼 걱정은 없다. 자체 알람 기능이 있어서 옆사람 깨울 일 없이 혼자 조용히 기상할 수 있다. 다양한 알람 소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기상나팔’ 사운드가 추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빠빠~빠빠빠~빠빠빠빠~빠빠라바빠~빠라빠라바~빠빠빠빠~빠빠라바빠~빠라빠라바~”


이 소리에 반응하지 않을 군필자는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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