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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y 08. 2019

어버이날 아이패드 미니 5를 드렸다

10년 전이었나, 엄마의 환갑을 미리 상상해본 일이 있다. 좋은 선물을 사드리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 우리 엄마는 예순한 살이 됐다. 나는 생각만큼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 깍쟁이같은 이금주 여사가 가장 좋아할 만한 걸 선물로 주고 싶었다. 싫다는 엄마를 억지로 끌고 백화점 명품관에 들어갔다. 엄마는 점원이 가방을 보여줄때마다 부담스럽다고 손사레를 쳤다.



치열한 논쟁 끝에 비싸지 않은 패브릭 소재의 프라다 가방으로 합의를 봤다. 이게 진짜 엄마를 행복하게 할 만한 선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엄마 환갑에 번듯한 명품 쇼핑백을 안기고 싶은 나의 자기만족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이패드 미니 5세대를 샀다.


[엄마는 밝은 색을 싫어한다, 실제로 사드린 건 스페이스 그레이 모델이다]


서프라이즈로 아이패드 박스를 안기자, 엄마는 “어머, 이건 너무 과한데”라고 말하며 신나게 박스를 열었다. 프라다 쇼핑백을 받았을 때보다 배는 기뻐보였다. 그래, 이게 바로 좋은 선물이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새로 출시된 아이패드 미니에 대한 리뷰는 아니다. 그보다는 이 사랑스럽고 작은 제품에 대한 연가에 가깝다. 주절 주절 떠들어댈 예정이니 미리 결론부터 스포하겠다. 혹시 갖고 싶어졌다면 부디 하루빨리 구입해서 행복해지시길. 이건 사야 한다.


[터…텅장!!!]


얼마 전까지 아이패드 라인업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었다. 아이패드 프로와 그냥 아이패드. 애플은 신제품이 나오면 구형 제품은 존재하지 않았던 듯 같은 이름을 계승해버리기 때문에 항상 헷갈린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패드 프로 3세대와 아이패드 6세대를 판매하고 있었다. 현재 나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아이패드 프로는 참으로 기묘할 만큼 고성능 태블릿이다. 굳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좋다. 4방향 스피커는 어지간한 외장 스피커보다 사치스러운 소리를 들려주고, 120Hz로 움직이는 디스플레이 프로모션 기술 같은 건 우리의 손가락 현혹하는 요물이라고 본다. 대신 비싸다. 정말 이렇게 비싸도 될까 싶을 만큼 비싸다. 11인치 모델은 99만 9,000원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21만 9,000원의 스마트 키보드와 15만 9,000원짜리 2세대 애플펜슬을 장착한다면 텅장! 텅장이 되어버린다.


[착한 저렴이, 아이패드 6세대]


아이패드 6세대는 모든 조미료를 빼고 9.7인치 화면에서 iOS를 원활히 구동할 수 있게 만드는데 충실한 제품이다. 실제로 사용해봤을 땐 멀티태스킹이나 앱 구동에서 크게 답답함이 없었으나, 내겐 한없이 불만족스러운 기기였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다르다. 에어갭이 너무 거슬려서 오래 쓰지 못했다. 하지만 저렴했다. 와이파이 모델이 43만 원부터였으니까.



요약하자면 아이패드 라인업의 간극이 너무 극단적이었다는 얘기다. 아이패드 프로까지는 필요 없는데, 아이패드 6세대는 아쉽다면? 그럼 결국 아이패드 구입을 포기하게 된다. 팀 쿡 입장에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주가를 올리고 아이패드를 한 대라도 더 팔아먹기 위해서 ‘중간 라인업’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죽은 줄 알았던 미니와 에어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바로 아이패드 미니 5세대와 아이패드 에어 3세대다. 따로 이벤트도 하지 않았고, 섭섭하다 싶을 만큼 기습적으로 공개했다. 사실 새로울 것은 없다. 기존에 있었던 스펙과 옵션을 합리적으로 버무린 버전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하나다. 다들 사고 싶음직한 선택지였다. 최초로 애플펜슬을 지원하는 아이패드 미니와 에어였다. 게다가 가격이 합리적이고, 스펙도 합당했다.


[에디터 기은이 애플펜슬로 그린 작품]


나는 아이패드 프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7.9인치의 작은 화면에 더 끌렸다. 간만에 만져본 아이패드 미니는 정말 산뜻하고 사랑스럽다. 이렇게 작은 화면에 애플펜슬로 필기할 수 있으니 그 사실도 너무 귀엽다. 익숙한 디자인인데도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5세대 아이패드 미니는 훌륭한 재활용의 산물이다. 홈버튼이 달려있는 구형 아이패드 유닛을 재활용하면서 아이폰XS Max에 들어간 A12 바이오닉 칩셋을 수혈했다. 익숙한 디자인에 낯선 퍼포먼스다.


[픽셀메이터 포토 앱으로 사진 보정하는 모습]


성능 면에서는 아이패드 프로의 팀킬이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훨훨 날아 다닌다. 요즘 푹 빠져있는 픽셀메이터 포토라는 앱에서 한 장에 45MB쯤 되는 RAW 파일 사진을 불러와 보정해보았다. 같은 사진을 읽어들이고 처리하는 속도를 아이패드 프로와 비교해보았는데 차이가 없더라. 별 기대 없이 “작고 귀여우려니…”하고 쓰기 시작했건만 예상을 뒤엎는 퍼포먼스였다. 


[귀여움을 담아낼 수 있는 치명적 디스플레이…]


가장 인심이 후한 건 디스플레이다. 아이패드 6세대에서는 얄미울 만큼 제외했던 디스플레이 옵션들을 빠짐없이 넣어줬다. 전면 라미네이팅 처리된 디스플레이 덕에 에어갭이 사라졌고, P3 와이드 컬러를 지원해서 더 다양한 컬러를 표현할 수 있다. 트루 톤 디스플레이에 반사 방지 코팅까지 들어갔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머리통이 살짝 반사됐다]


반사 방지 코팅은 생각보다 꽤 큰 역할을 한다. 사실 전에는 몰랐다. 반사 방지 코팅이 빠진 아이패드 6세대를 쓸 때 마주 본 내 얼굴이 하얗게 비쳐 보이는 것을 보고서야 “Aㅏ…”하고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야외 시인성은 화면 밝기만 받쳐준다고 올라가는 게 아니다. 아이패드에 적용된 반사 방지 코팅은 빛의 반사를 완전히 없애주는 건 아니다. 실제로 내가 설명할 때마다 “뭐야, 반사 되는데?”라며 삐딱하게 받아들인 지인들이 다수 있었다. 빛이 비치는 정도를 한 톤 어둡게 처리해준다고 하는 게 맞겠다. 화면이 꺼진 상태에서 코팅이 안된 기기와 나란히 두면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허옇게 비쳐보이던 형광등 불빛이 어두운 보랏빛으로 비쳐 보인다. 덕분에 영상을 볼 때 훨씬 덜 거슬린다.

[아이패드 프로 12.9와 아이패드 미니]


그렇다면 화면 밝기는 어떨까. 아이패드 프로의 최대 밝기인 600니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최대 밝기 500니트로 충분히 밝다.



결론적으로 아이패드 프로에 비해 빠지는 구석은 120Hz의 화면 재생률을 구현하는 프로모션 기술 정도겠다. 더 많은 프레임을 사용해 화면 속의 움직임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기술인데, 차이가 없다는 구라를 치지는 않겠다. 아이패드 프로를 쓰던 사람은 홈화면을 넘겨보는 순간 차이를 알 수 있다. 사치스러운 건 금방 손에 익숙해지니까. 하지만 단가를 줄일 수 있다면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차이가 아닌가.



이제 다시 재활용 얘기로 돌아가 보자. 오래된 아이패드 미니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부분이다. 나는 사실 유닛을 그대로 사용한 게 49만 원대의 가격을 만드는데 가장 크게 공헌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웠다. 올드스쿨이라고 해야 할까. 홈버튼 누르는 맛도 오랜만이고 말이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2019년에 납득할 수 없는 베젤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패드 프로나 아이폰XS 시리즈의 디자인과 비교하면 확실히 구식으로 보인다.


[아이패드 미니를 보고 있는 엄마]


엄마의 의견은 조금 색달랐다. 체구도 작고 손도 작은 엄마는, 아무리 아이패드 미니라고 해도 한 손으로 잡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베젤 부분을 손으로 쥘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오히려 이 부분이 더 좁았으면 불편했을거라고. 자기한텐 딱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이패드 미니 5세대 사용 2주차인
이금주 여사님은 어떤 앱을 쓸까?



일단 E-book을 읽는다. 우리 엄마는 정말 꾸준히 무언가를 읽는다. 예전엔 영어 사전도 한 장씩 보면 단어 뜻이 많아서 재밌다고 읽었던 사람이다. 요즘은 카카오 페이지나 네이버 북스 같은 플랫폼에서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 소설, 로맨스 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졌다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스마트폰은 절대적인 화면 크기가 작아 불편했다고 한다. 아이패드 미니는 책 읽기엔 참 좋은 사이즈다. 비율도 책에 가까워서 안정적이다.


[아이패드 미니와 아이폰XS Max]


사실 아이패드 미니가 처음 나왔던 2012년과 2019년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그때야 7.9인치 아이패드도 충분히 ‘크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화면이 쑥쑥 자라나서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내가 사용 중인 아이폰XS Max만 해도 6.5인치다. 숫자만 보면 아이패드 미니와 고작 1.4인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아이패드 미니와 아이폰XS Max]


그러나 4:3의 화면 비율을 대입하면 E-Book 리더나 PDF 감상용으로는 3배 이상의 시야 차이를 제공한다. 같은 화면을 띄워도 낭비되는 구석 없이 꽉 차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의 경우엔 커졌다고 해도 위아래로 길어진 형태라 전통적인 4:3 비율의 콘텐츠를 보기엔 알맞지 않다.


[아이패드 미니와 아이폰XS Max]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아이패드 미니가 영상을 감상하기엔 손해보는 영역이 많다는 뜻도 된다. 가로 모드로 영상을 볼 때 위 아래로 블랙바가 드넓다. 이 상태로 보면 아이폰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 같다. 영상 감상을 주목적으로 한다면 함께 출시된 10.5인치 아이패드 에어를 추천한다.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란 엄마의 퍼즐 게임…]


엄마의 아이패드에는 퍼즐 게임, 방탈출 게임 등이 다운로드되어 있었다. 사실 본래 엄마가 쓰는 G8에도 비슷한 앱이 깔려 있었다. 다른 건 화면이 널찍해져서 훨씬 플레이하기 편해졌다는 것 정도.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아보이는 퍼즐을 맞춰가는 엄마의 손놀림이 아주 진지하다.


[뜻밖의 상황에 아이패드 프로를 쓰게 된 엄마]


애플펜슬이 생겼기 때문에 컬러링 앱에도 푹 빠졌다. 사실 옛날부터 컬러링에 관심이 많아서 48색 색연필과 컬러링북을 사드린 적도 있었지만, 손목이 아파서 오래 간직하지 못한 취미였다. 애플펜슬로 색칠하는 건 손목에 무리가 거의 가지 않는다. 디스플레이 위에서 슥슥 문지르면 되니까.


컬러링 앱 대부분이 강력하게 인앱결제를 요구하고 있어서 엄마를 심통나게 했다. 하지만 잘 만든 앱이 많다. 색칠을 시작하면 스케치되어 있는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깔끔하게 칠하면서도 진짜 색연필이나 물감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어서 꽤 재미나다고.



눈치채셨겠지만 사진 속의 기기는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펜슬 2세대다. 왜 이걸로 촬영을 했냐면, 촬영 당일에 내가 애플펜슬 1세대를 분실했기 때문이다(나중에 방구석에서 방전된 채 발견했다). 엄마를 사무실까지 데리고 나와 인터뷰하며 촬영하고 있었는데 어디에도 애플펜슬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이패드 프로로 촬영했는데 엄마가 갑자기 그런다. “어머, 이건 화면이 더 크니까 더 좋네…” 어,엄마 안돼….


[불-편]


아이패드 미니 5의 가장 큰 아쉬움은 역시 1세대 애플펜슬이다. 펜슬 뒤에 있는 라이트닝 단자를 아이패드 본체에 연결하는 원시적인 방법을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재활용 바디까지는 불만 없이 받아들였는데 재활용 펜슬은 많이 아쉽다. 한 집에서 아이패드 프로와 아이패드 미니를 같이 쓰는 경우엔 펜슬이 서로 호환되지 않아 1인 1펜슬을 해야하는 게 아닌가. 2세대 애플펜슬은 본체에 자석으로 붙으며 자동 페어링과 무선 충전까지 되는 원리라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데, 1세대의 방식은 언제 봐도 마땅찮다. 



엄마가 가장 푹 빠진 게임은 모뉴먼트 밸리. 2D와 3D를 오가는 이 아름다운 게임에 완전히 매료되신 듯. 서서히 난이도가 높아지자 아홉 번째 스테이지에서 고전하고 있는데, 내가 네이버에 공략법을 검색해보라고 해도 엄마 자존심에 그럴 수가 없다더라. 모뉴먼트 밸리를 플레이하면서 엄마가 한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만약 이걸 폰에 깔아줬으면 재밌는 줄도 몰랐을 거야. 그림이 아주 예쁜데 이렇게 화면이 커서 잘 보이니까 훨씬 재밌지.”



그러니까 여기서 새로운 걸 알 수 있다. 나에게는 아이패드 미니가 ‘작은 태블릿’인데 엄마에겐 ‘화면이 큰 기기’인 것이다. 아이패드 미니는 작은 화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태블릿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였다. 더 재밌는 건 엄마는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면서 쓰는 기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리뷰를 하다 보면 많은 물건을 만져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오만한 사용자’가 되기 쉽다. 이건 화면 밝기가 아쉽고, 이건 스피커가 아쉽고, 이건 디자인이 구식이고. 결국엔 가장 최신의, 가장 고가의 제품에 마음이 끌리고 만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잘 맞는 제품을 따질 땐 여러 맥락이 맞아야 한다. 가격과 휴대성처럼 좀 더 현실적인 문제들 말이다. 태블릿을 처음 써보는 엄마의 작은 손에는 아이패드 미니가 딱 알맞았다. 때마침 엄마가 매일 들고 다니는 노트와 비슷한 사이즈다. 새로산 가방에 쏘옥 들어갈 만큼. 그러니까 아마, 엄마의 고단하던 일상에도 잘 맞겠지. 


아이패드 미니 5세대는 좋다. 얕잡아 볼 것도 없고, 아쉬워할 것도 별로 없다. 고민중인 여러분 모두 구입하고 행복해지시길. 오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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