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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Jul 09. 2024

몸의 언어로 세상을 읽는, 장정현

'체력이 좋아지면, 하고 싶은 걸 덜 포기할 수 있을까?'

욕심 많은 나에게 하고 싶은 걸 내려놓는 순간은 늘 어렵다. 아이가 생기며 삶을 극단적으로 단정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어떻게 하면 덜 포기할 수 있을지 자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기능하는 몸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가닿았다.

그때쯤 오늘의 주인공과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제가 진짜 싫어하는 것이 내 몸이 나를 방해하는 거예요"라는 말에 반해버렸다. 그가 몸의 언어로 읽어내는 세상이 새롭고 흥미로워 인터뷰를 청했다.


<사소한인터뷰> 428번째 주인공, 장정현




안녕하세요 정현 님, 인터뷰로 만나게 되어 기뻐요. 먼저 <사소한인터뷰>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10년 차 한의사 장정현입니다. 몸 중에서도 특히 근막*에 관심이 많아서 근막을 파는 근막 덕후예요.


운동을 좋아해서 필라테스 지도자로도 활동했고, 사람들을 만나면 각자에게 딱 맞는 운동을 찾아주는 게 취미입니다. 사실 일상의 기량을 폭발적으로 향상시키고 싶다면 치료뿐 아니라 나에게 맞는 운동과 생활습관을 찾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근막은 근육과 장기를 감싸고 지탱하는 얇은 막이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정현 님, 언젠가부터 사석보다 이곳에서 만나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사소한인터뷰> 공식 질문이 ‘자기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인데요. 이전에 정현 님이 스스로를 동물에 비유했던 게 인상 깊어서 그 이야기로 대신할까 싶어요.


그때 치타라고 표현했는데, 그냥 치타가 아니라 병약하게 타고난 치타예요.(웃음)


어린 시절부터 “네가 안 쉬고 힘들게 살아서 아픈 거야”, “네가 운동을 안 해서 아픈 거야” 등 제가 뭘 해서 혹은 안 해서 아픈 거라는 류의 조언을 많이 들었어요. 마치 ‘나는 토끼로 태어났는데 치타처럼 살려고 하니까 아프구나’라는 느낌이 들어 자책을 많이 했죠. ‘나는 왜 스스로를 아프게 만들까’라는 자책요.


근데 진짜로 토끼라면 토끼처럼 지내는 게 자연스럽고 편안해야 되는 거잖아요. 저는 늘 흥미로운 주제를 찾아 미친 듯이 몰입하고 달리곤 했어요. ‘그냥 그게 나의 타고난 모습이구나’라는 깨달음을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얻게 되었지요.


운동도 느린 호흡의 요가보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크로스핏이 더 맞았다고 들었어요. 마치 치타는 토끼처럼 운동할 수 없는 느낌이었을까요.(웃음)


맞아요. 저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 헤매는 유목민 생활을 오래 했어요. 처음엔 ‘몸이 약하니까 요가가 잘 맞으려나’ 싶어서 갔는데 다칠 일이 없는데도 다치는 거예요. 그 이후에 헬스, 기체조 등 정말 다양한 운동을 해봤지만 발목 삐는 건 일상이었고 계속 다치더라고요.


‘이 운동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반복하던 중에 대학교 4학년 때 우연히 킥복싱을 접하게 되었어요. 킥복싱 같은 고강도 운동은 더 힘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안 힘들더라고요. 지치지도 아프지도 않고 재밌는 거예요. 그러다 크로스핏으로 넘어가게 되었죠. 예전의 저라면 ‘난 잘 다치니까 크로스핏은 안 돼’라고 생각했을 텐데 킥복싱이 맞으니까 크로스핏도 시도해 보게 됐고, 그때부터 건강 생활이 시작됐어요. 너무 잘 맞았지요.


저는 그 정도로 강한 운동을 해야 되는 타입의 몸이었던 거예요. 무게를 쳐야만 했던 거죠. 그걸 깨닫고 공부를 더 해보니 강한 수축 후 신장을 하는 운동을 ‘플라이오메트릭(Plyometric) 운동’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다양한 중력 방향에 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무게를 쳤을 때 건강해지는 몸이었어요.


운동으로 다져진 엄청나게 단단한 몸. 사람의 몸에 무지한 내가 봐도 알 정도다.


건강한 생활이 시작되고 나서야 진짜 나다운 모습을 마주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네 맞아요. 이제 진짜 건강해졌다고 느낀 시점에 과거를 돌아보니 ‘그동안 나는 그냥 병약한 치타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병약하다는 건 아플 때도 있지만 안 아플 때도 있다는 뜻이잖아요. 몸이 조금만 괜찮아지면 바로 다시 달리곤 했던 것 같아요. 있는 힘을 모두 끌어모아 폭발적으로 달렸을 때 오히려 싹 개운해지면서 많은 것들이 풀리는 경험을 자주 했어요. 오히려 애매하게 조금만 뛰면 더 지치고 힘들었죠.


기력이 약해서 질주의 순간을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했을 때는 저도 스스로의 신체상이 헷갈렸는데요. 건강해진 후로 마음껏 달려보며 ‘끝까지 몰입하는 나를 자책하기보다 질주 후 나의 상태를 잘 판단하고 다음 달리기를 위한 준비를 해야겠구나’라고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그간 내 안에서 싸우고 있던 것들이 화해하는 순간처럼 느껴져요.


무더운 6월의 여름날, 꽃이 예쁘게 피고 진 카페에서 둘이 만났다




Part 1. '왜'보다 '어떻게'라는 질문 앞에 서다


“몸이라는 주제에 오랜 기간 천착해왔다”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언제부터 몸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관심을 두게 되었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천식 비슷한 질환을 앓았는데 병명이 없었어요. 기침을 계속하는 증상이었고, 호흡 과정에서 내쉬기만 하고 제대로 들이마시질 못했지요. 그러다 호흡 곤란으로 기절을 하기도 했고요. 병원에 가면 “천식과 가장 비슷해서 소견서에는 천식이라고 쓰지만 천식은 아니다”, “천식약에 반응하지 않고 천식의 특성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했어요. 몇 년간 수많은 병원에서 여러 치료를 받다가 우연히 낫게 되었는데, 아직도 정확히 무엇 때문에 나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내가 아픈 것은 실재했기 때문에 아팠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 있었어요.


그 마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몸이라는 주제에 천착하기 시작했던 건 한의대에 들어오고부터였어요. 사람이 방법이 있어야 몰두하게 되더라고요. 그전엔 궁금증이 있어도 어디로 어떻게 파고들어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한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거든요. 안개에 싸여 있어서 어느 방향으로 뛰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달까요. 근데 안개가 한 3m만 걷혀도 일단 거기까지 가볼 수 있잖아요. 그럼 그다음이 또 보이니까요. 저에게 한의학이 그런 희망이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한의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서 답하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어렸을 때 저의 생각은 이랬어요. 어린 마음에 크고 다양한 병원에 갔는데 저에게 똑같은 약을 주니까 ‘이 의학은 나를 설명할 수 없구나’, ‘뭔가 더 해 볼 여지가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 현대 의학에서도 더 연구할 방법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몰랐어요.


근데 한의원에 갔더니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질환이라는 점은 같지만, 저의 증상을 엄청 많이 듣고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 주더라고요. “이 약을 써보자”, “이 생활습관을 바꿔보자” 등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한의학에서는 나에게 더 시도해 볼 게 있구나’, ‘내가 더 파고들어 무언가를 밝혀낼 여지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10년 차 한의사가 된 지금, 돌아보면 사실 어떤 길을 걸어도 상관없었을까요? 아니면 다시 돌아가도 한의학을 선택할 것 같나요?


그럼에도 저는 한의학을 선택할 거예요. 한의학의 핵심 철학 중 하나가 ‘전일관(全一觀)’인데, 인체가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개념이에요. 인체의 각 부분이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기능한다고 보는 거죠. 사람마다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관점이 있을 텐데, 제가 추구하는 바에는 전일관이 더 적합해요.


전일관이라는 철학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저는 목이 아플 때 목의 구조만 문제 삼지 않고 더 넓게 봐요. 중력의 힘을 받는 상황에서 발목과 골반 위에 목이 얹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목과 골반, 중력과의 상호작용을 함께 고려하죠. 더불어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목이 아픈 이유가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서 목 쪽 세포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두지요. 나아가 사람은 몸과 마음이 함께 꾸려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전일관의 일환이에요.


이런 생각을 매 순간 하는 게 한의학의 큰 특징인데 엄청 흥미롭죠?(웃음)


제가 어렸을 때 앓던 질환은 이런 종류의 질환이었어요. 특별히 어딘가가 부러지거나 다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나를 이해하는 데에도 전일관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어떤 고통을 마주했을 때 ‘왜’라는 질문에 휩쓸리기 쉬운 것 같아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지?’와 같은 소모적인 질문요. 사실은 우연임에도 이유를 찾으며 더 괴로워지는 거지요. 근데 정현 님은 ‘왜’보다 ‘어떻게’라는 질문 앞에 더 자주 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너무 아프니까 왜인지보다 일단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어요. ‘어떻게든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죠.


조금 덜 아픈 상태가 되면 다음에는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분석했어요. 이유를 찾아야 다시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미래에 슬픈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방법을 찾고 또 찾았지요.


절실함으로 ‘어떻게’라는 질문에 선 거군요.


진료할 때 환자분들에게도 “어떤 걸 원하세요?”라는 질문을 해요. 이번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만 소화기가 괜찮았으면 좋겠는지, 오래 걸려도 다시는 안 아프길 원하는지 등 어떻게 바뀌기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여쭤보죠. 이야기를 먼저 듣고 그분에게 필요한 모든 방법을 빠르게 찾아요. 치료뿐 아니라 운동, 식단 등 다양한 관점에서 건강한 상태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말씀드리죠.


우리 몸은 제품처럼 AB 테스트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을 너무 오래 물고 늘어지다 보면 시기를 놓칠 수 있어요. 시기를 놓치면 아무리 좋은 방법이 있어도 먹히지 않을 수 있거든요. 방법들을 빠르게 찾아내는 게 중요하고, 저는 그 일이 적성에 아주 잘 맞아요.


실제로 정현 님은 모든 면에서 무지 빠르다. 생각도 말도 행동도 결정도 침 놓는 것도ㅋㅋ




Part 2. 몸에 천착해온 시간들, 천직이 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일로 생각하지 않고 즐긴다는 느낌이 들어요. 덕업일치랄까요. 몸을 탐구하는 것이 정현 님에게 순수한 재미의 영역에 속하나요?


기본적으로 저는 하기 싫은 일은 안 해요.(웃음) 재미없는 걸 참고 하면 아프기 때문에, 원래 재미없는 건 안 한다. 아픔이라는 결괏값 앞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죠.


저에게 일이란 타인과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인데요.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하는 상호작용인 만큼 지치지 않는 일이어야 했어요. 그런 면에서 아직도 환자분들을 대면하는 순간이 가장 설레고 오히려 제가 에너지를 받을 때도 많아요. 환자분들로부터 삶이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나 감사 인사를 들으면 너무 행복하고요.


저에게 ‘일을 일로 생각한다’는 개념은 이전에도 지금도 아주 흐린 것 같아요.


진료실에서 어떤 분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이 분은 앞으로 같은 방식으로는 아프지 않겠구나’라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지속 가능한 몸으로 딱 바뀌는 순간이죠.


‘이해하면 나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가 저희 한의원의 모토인데요. 정말 이해하면 나을 수 있어요. 내 몸을 관찰하는 방법을 깨닫는 때가 오는데, 그러면 그분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요. 왜냐면 몸에서 미세한 신호가 왔을 때 알아채고 이전처럼 하지 않을 거거든요.


몰라서 같은 실수를 하는 분이 더 많다고 봐요. 어쩌다 계단이 있는 줄 몰라서 순간 탁 넘어질 때 있잖아요. 여기에 계단이 있다는 걸 알면 그때부터는 안 넘어질 수 있죠.


예를 들어 ‘나는 아프기 전에 이런 신호가 오는구나’ 알아채고, 신호가 오면 ‘내가 식사는 제대로 했나?’ 체크해 보는 거죠. ‘건강한 음식을 3주 정도 먹으면 보통 다시 괜찮아졌어’와 같이 세세한 관찰을 통해 얻은 나에 대한 데이터가 있으면 미래에도 적용할 수 있어요.


나에 대한 통제감을 획득한 순간부터는 지속 가능해져요. ‘이제 이분은 같은 문제를 한의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스스로 답을 알고 계시다’라는 느낌이 들 때 제일 뿌듯해요.


‘이해하면 나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안 그래도 문에 적힌 문구가 마음에 들어 어느 날 찍어두었다.


진료실에서 저에게 “몸에 있어서 초보 정비공이기 때문에, 아직 정비는 서툴 수밖에 없다”라고 한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보통 아무리 15년 베스트 드라이버여도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내가 잘 고칠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데요. 유달리 몸에 대해서는 그간 내 몸을 고쳐본 적 없고 운전만 잘했는데도 직접 잘 고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운전과 정비는 다른 영역이에요. 베스트 드라이버여도 정비는 초보일 수 있지요. 몸이 고장 났는데 ‘나는 원래 건강한 몸이니까 알아서 잘 고칠 수 있을 거야’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동안 쭉 건강했어서 고쳐본 적이 없다면 정비하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해요. 고장은 처음이라면 건강한 내 몸이 이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기보다 빠르게 받아들이는 게 유리하죠. 사실 15년 동안 고장 난 적이 없다면 얼마나 큰 행운이에요. 내 몸 너무 멋지다고 칭찬해 주고, 초보 정비공으로서 배우기 시작하면 돼요.


혹시 정현 님이 수많은 사람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며 느낀 가장 잘못된 몸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내 자세가 바르지 않아서 몸이 틀어졌다는 것이 가장 흔한 오해예요. 짝다리를 짚어서, 다리를 꼬고 앉아서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억지로 자세를 펴려는 경우가 많은데 엄청난 오해지요.


틀어진 상태로 600년 넘게 사는 나무도 많아요. 일자로 되어 있어야 맞고 휘어지면 틀린 게 아니에요. 근막 시스템 안에서 힘의 방향에 적합한 구조물이 만들어져 있으면 돼요. 보통 휘어져서가 아니라 내가 못 쓰는 구간이 있어서 아픈 경우가 더 많아요.


중요한 건 건강한 식사를 하는 것, 잠을 제때 자는 것, 내 몸에 맞는 운동을 하는 것이에요. 그것만으로도 안 아파지는 경우가 엄청 많아요. 기본적인 생활습관은 무너져있는 채로 자세만 펴려다가 이중으로 틀어져서 오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근막에 진심인 친구들과 함께 연 ‘근막’과 ‘움직임’에 대한 전시


반대로 한의사로 일하며 가장 떨리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사실 인터뷰를 하는 지금이 가장 떨려요. 말하는 순간 쓰이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조심스럽죠. 무언가를 일반화해서 말해야 할 때 떨리는 것 같아요.


입체적인 것을 납작하게 만들어 얘기해야 하다 보니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까 봐 두려운 느낌일까요?


개별화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떨림 같아요. 누군가를 대면한 상황에서는 그 사람의 입장에 맞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일반화해서 말할 땐 누가 제 이야기를 들을지 모르니까요. 예를 들어 운동이 중요하다고 말했을 때, 어떤 사람이 매일 운동하면 안 되는 상황임에도 ‘건강해지려면 매일 운동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럼 어떤 정보나 지식을 접할 때 어떻게 하면 일반화의 오류를 피할 수 있을까요? 병원에 직접 찾아가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요?


내 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중요해요. 예를 들어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 동물을 입양했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럼 그 동물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밥은 뭘 먹여야 하는지 등 아무 정보도 없겠죠. 하지만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지고 같이 지내다 보면 ‘이 동물은 이걸 좋아하는구나’하고 하나씩 알아가게 될 거예요.


보통 내 몸을 내 것이라고 여기며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어깨 으쓱하는 동작을 할 때 ‘내 승모근을 움직여야지’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왜냐면 몸이 알아서 해주거든요. 내가 몸을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기보다 서로 공생하는 관계에 가깝지요.


내가 몰라도 몸은 이미 아는 정보도 많아요. 몸은 나름 티를 내고 있었을 거예요. 나에게 맞는 음식이 들어왔을 때는 가만히 있고, 불편한 음식이 들어왔을 때는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내왔을 수 있죠. 애정에 기반한 시선으로 그 신호들을 알아채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다음에 공부를 해서 “몸아, 내가 이런 새로운 정보를 가져왔는데 어때?” 하며 새로운 시도도 해보는 거죠.


정보가 양방향으로 오고 가는군요. 외부에서 내부로, 내부에서 외부로요.


맞아요. 내 안에서 오는 정보를 해석하는 방법도 꼭 배워야 해요.




앞으로 정현 님이 어디로 나아갈지 궁금해요. 혹시 계획하고 있는 일이나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까요?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것을 설명하고 싶어요. 나아가 체형과 근막에 대한 치료의 공식을 보편화하고 싶고요. 그게 인생의 목표예요.


한의학이 되게 신비한 영역처럼 여겨지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하나도 안 신비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냥 있는 현상인데, 그걸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었다가 점점 풀리고 있는 느낌이지요.


이전 인터뷰이가 남긴 릴레이 질문이 있어요. 무엇을 이뤄야 죽을 때 만족하면서 죽을 수 있나요?


매 순간 정성스럽게 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렇게 살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어차피 재미없는 건 못하니까 재밌는 걸 정성스럽게 하고 싶어요.


다음 인터뷰이를 위해 릴레이 질문 하나 남겨 주세요.


스스로의 속성 중에서 이것은 정말로 나의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오래 곱씹어 보고 싶은 질문이네요.


2시간으로 모자랐던 몸, 아니 삶에 대한 대화. 글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인터뷰가 끝나고도 한참을 떠들었다.



여운이 긴 인터뷰였다.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함 덕분에 고통 자체와 씨름하지 않고 바로 수용했구나',
'빠르게 받아들여야 그다음이 있구나',
'혹시 나는 사실과 실랑이하며 스스로를 불리한 상황에 두고 있진 않나'
여러 생각들이 남았다.

그리고 방법을 치열하게 찾다 천직을 만나게 된 정현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연이 만든 구불한 길이 그를 멋진 곳으로 데려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유에 오래 머물지 않는 그가
시원하게 질주할 앞으로의 길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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