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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18. 2024

Prologue 1.

겨우 열한 살짜리의 왕눈이 전략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핏기 없는 입술을 멍하니 쳐다본다.


    건조해서 갈라질 대로 갈라진 아랫입술과 흰 각질로 얼룩덜룩한 윗입술이 동그래졌다가 납작해진다. 벌써 이십 분째 거실 한가운데 서서 듣는 꾸지람은 언제 겪어도 늘 똑같이 소모적이다. 신은 왜 인간에게 입을 만들어주었을까. 더 나아가 왜 목소리와 언어를 주었을까. 인간은 어째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 본능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훈육이라는 변명 뒤에 숨어서 뱉어내는 짜증과 비난을 나는 온몸으로 받아낸다. 한마디 한마디 차가운 파스로 뒤덮인 유리 조각처럼 내 마음에 꽂힐 때마다 나는 움찔거리고, 그 움츠러드는 모습에 희열을 느끼는 듯 엄마는 더욱 침 튀기며 입술을 움직인다.


    4년 전, 초등학교 입학 면접 때 스스로를 한 단어로 표현해 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미리 준비해 뒀던 단어가 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 순간에는 솔직해지고 싶었다.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본 후, 나는 스펀지라고 답했다. 그렇게 말한 것은 어쩌면 나의 가장 깊은 진심에서 나온 말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든 비난이든 나를 향한 모든 것을 잘 흡수하는 취약점을 안고 태어났으니 말이다. 엄마의 기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태도를 온전히 받아내는 것은 나의 오래된 숙명이다. 커다란 비극은 언제나 그렇듯, 사소한 순간들로 나도 모르는 새에 형태를 갖추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엄마의 품에 안겨 잠든 게 언제였는지 생각해 본다. 점점 엄마의 눈동자가 나에게 머무는 시간이 짧아지고, 나의 말랑거리는 무지갯빛 상상 속 이야기들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을까. 어쩌면 아주 어릴 적 또래 친구들이 한글을 떼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이미 한글, 영어, 불어를 모두 유창하게 습득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엄마가 참관하는 유치원 수업에서 나보다 키가 훌쩍 큰 형들보다 더 능숙하게 수학 문제를 풀어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나의 지적 탤런트로 엄마를 기쁘게 하는 순간들이 생길 때면 엄마는 나에게 한 박자 이른 칭찬을 던져주고는 곧장 인터랙트 장치를 열어 통화를 시작했다. 그 손바닥만 한 작은 검은색 장치는 나와 닮은 듯한 사람의 형태를 홀로그램으로 비추어냈다. 그 빛의 형태는 나의 엄마를 나와 똑같이 엄마라고 불러댔고, 나의 엄마는 그 빛의 형태로 빚어낸 사람을 영현 씨라고 불렀다.


    이상한 일이다.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영현이는 나밖에 없는 게 당연한 사실이다. 나는 고유한 인간으로, 엄마의 유일한 아들 심영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자꾸 인터랙트 장치 속 그 사람을 영현 씨라고 부른다. 내가 여러 번 엄마의 옷가지를 잡아당기며 내가 영현이라고 알려줘도 엄마는 그저 성가시다는 듯이 손을 훠이훠이 내저으며 나를 뿌리쳐낸다. 엄마는 인터랙트 속의 사람에게 매일 내가 해낸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인지 모르게 불쾌한 마음이 드는 그 장치 속 인간은 잠자코 엄마의 말을 경청한 후 엄마에게 각종 지시를 내린다. 엄마는 우등생이 된 것처럼 깊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거친 글씨로 필기한다. 한참 어렸던 네다섯 살의 나는 종종 그런 모습을 목격할 때면 적잖이 놀랐지만, 이제 다 큰 열한 살 형이 된 지금은 그저 방에 들어가 공허한 마음을 일기로 달래곤 한다.


    내가 쓰는 일기장은 종이로 되어있다. 실제 종이의 사각거리는 촉감이 내 정서발달에 좋을 거라며 인터랙트 장치 속 사람이 엄마에게 귀띔을 해주자, 엄마는 부리나케 잘 판매하지도 않는 종이 일기장을 구해왔다. 그나마 인터랙트가 엄마에게 지시한 것 중에서는 이 일기장이 가장 내 마음에 들었기에, 나는 그날부터 잘 깎은 연필 한 자루를 꾹 쥐고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내 깊은 마음속 고민과 슬픔을 내 일기장은 언제나 열린 페이지로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해준다. 중지 손가락에 연필이 맞닿는 부분이 벌겋게 부어오르는 줄도 모른 채 한참을 쏟아내듯 글을 쓰다 보면 갑자기 글이 턱 막히는 지점에 도달한다.


    그 지점을 나는 왕눈이 지점이라고 부른다. 왕눈이 지점은 보통 일기의 끝부분에서 발생한다. 나의 감정을 한 줌만 남긴 채 모두 털어버린 후, 이제 기승전결 중 마지막 결에 도달할 지점에서 말이다. 글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 방안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 같은 게 담겨야 하는데, 늘 나의 일기에는 결론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말문이 막혀버리는 이 왕눈이 지점을 헤쳐 나가는 일은 늘 고역이다. 그럼에도 억지로 글을 끝마치기 위해 어떻게든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려 노력하는데, 이때 눈을 세게 질끈 감았다가 번쩍 커다랗게 뜨고 온 정신을 집중해 내면 좋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믿기지 않겠지만 고작 이 커다란 눈 깜빡임 한 번에 내 몸을 채우던 모든 기운이 거꾸로 바뀌며 지끈거리던 스트레스는 온데간데없고 기분이 붕 뜨듯 선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지점을 왕눈이 지점이라고 부른다. 눈을 왕 크게 뜨면 한순간에 나를 짓누르던 상실감은 사라지고 날아갈 듯 기분이 가뿐해지니까.


    점점 인터랙트에 엄마를 뺏기는 시간이 커질수록 나는 일기를 쓰지 않을 때도 왕눈이 비법을 쓰기 시작했다. 머리가 터져버릴 듯이 눈을 꽉 감고 온몸에 힘을 주며 부들부들 떨다가 눈을 확 떠버리면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어떤 날들에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왕눈이 비법을 쓰며 기분이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하는 게 혼란스럽고 벅찼지만, 그렇게라도 내 안에 쌓여있는 나쁜 기운들을 배출하지 않으면 그대로 잡아먹힐 것 같았다.


    나는 오늘도 눈을 커다랗게 끔뻑거리며 인터랙트 세션을 네 번이나 연장하는 엄마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야 했다.


    “엄마!”


    엄마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인터랙트 속 사람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럴 때면 꼭 엄마와 나는 다른 우주의 시간을 살고있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 엄마! 나 사실 시험 다 베꼈어.”


    그 순간, 드디어 엄마는 뒤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제야 씨익 웃었다. 1초, 2초가 그대로 흘렀다.


    “나 사실은 빵점이야. 다 거짓말로 풀었다니까?”


    좋은 전략이었다. 역시 좋은 생각은 꼭 눈을 세게 감을수록, 그다음 더욱 커다랗게 뜰 수록 잘 떠오르는 법이었다.


    “심영현,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이번 시험 만점 받은 게 다 남의 정답 베껴서 낸 거였다고?”


    3초, 4초. 역시 엄마의 눈은 마주칠 때가 가장 따뜻하다. 엄마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꼭 맞추며 나는 중력이 허락하는 최대한으로 천천히 끄덕였다. 5초.


    “영현 씨, 방금 영현이가 하는 말 들었죠? 아니, 세상에…. 답을 다 베껴서 거짓으로 냈다고 하네요. 이걸 어쩌면 좋나요?”


    엄마는 홱 돌아 인터랙트 속 사람에게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이 정도면 만족했다. 엄마의 시선을 담은 5초를 품에 안고 나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이불을 덮었다.


-


    혼자 기어들어 간 침대는 내 몸에 비해 너무나 크다. 다리를 뻗고 팔을 휘저어도 끝이 안 보이는 공간에 홀로 누우면 온몸이 시리게 외롭다. 이 외로운 공간에서 잠에 들기 전 나는 매일 바둑 선수가 시합을 복기하듯 나의 왕눈이 작전을 다시 떠올린다. 사실 오늘의 작전은 완전한 실패에 가까웠다. 나는 지난달에 유심히 엄마와 멘토의 인터랙트 세션을 훔쳐 들으며, 작전을 짜고 있었다. 인터랙트 세션의 모든 화제와 중심은 내 성적과 공부 습관에 대한 내용이었다. 엄마는 진심으로 나의 성적이 높아지길 바라는 듯 보였고, 그 목표를 이루고자 인터랙트 속 ’영현 씨‘와 합심하여 여러 방안을 짜는 듯했다. 나는 그 순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꽉 한번 감고 희번덕하게 떴다. 드디어 엄마가 인터랙트가 아닌 나를 바라봐 줄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나는 성적을 올리기로 했다. 더 이상 추가 논의의 여지가 없게끔 아예 백 점을 받는 게 나의 작전이었다. 내가 백 점을 맞는다면, 앞으로도 평생 죽을 때까지 백 점을 받는다면 엄마는 더 이상 인터랙트를 통해 내 학업에 대한 상담을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는 어차피 엄마가 들여다볼 일 없을 내 방문을 굳게 잠그고, 비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문제집을 폈다. 며칠, 몇 주가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공부를 했다. 문제집 속 문제들은 눈을 깜빡이지 않아도 쉽게 풀리는 문제들이었다.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나는 매일 엄마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예상대로 시험은 뻔한 문제로 가득했다. 한 번의 눈 깜빡임도 없이 막힘없이 치렀고, 채점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나는 이미 모든 질문을 맞게 답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늘은 꼭 엄마와 눈을 맞추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을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었다. 아주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감출 수 없는 희망을 얼굴에 띄며 집에 뛰어 들어갔을 때, 엄마는 이미 인터랙트 속 사람과 이야기 중이었다. 자동으로 발송된 성적 내역을 보았는지, 높은 톤의 목소리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엄마는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나는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식탁 의자 옆 바닥에 앉아 엄마의 인터랙트 세션이 종료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나의 급작스러운 성장세에 대해 끝없이 열띤 토론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새로운 주제들에 대해 인터랙트와 엄마는 새로운 논의를 시작했다. 나의 대학교 진학과 직업에 대한 계획들을 이제야 제대로 짜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기다리며 꽃이 시들어가듯 나는 점점 희망의 불씨가 꺼져가는 걸 느꼈다. 마침내 엄마의 손가락이 네 번째 인터랙트 세션 연장을 누르는 순간 나는 작전을 변경했다. 오랜 노력 끝에 만점을 받은 시험지를 전부 베꼈다고 거짓말을 했다.


-


    내 마음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검은 호수가 있다. 검은 호수는 마치 블랙홀 같아서 채우고 채워도 늘 커다란 구멍같이 존재했다. 장래 희망 칸에 미술 선생님이 아닌 로봇 엔지니어를 적어낼 때도, 인터랙트 속 홀로그램과 이야기를 하며 바삐 걸어가는 엄마를 따라가다 넘어졌을 때도 호수는 잔잔했다. 하지만 호수가 갑자기 욕조가 된 듯 검은 물이 한꺼번에 빠지는 날은 꼭 기대했던 나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때였다.


    시험 만점을 받아냈지만, 엄마는 나를 보지 않았다. 시험을 베꼈다고 거짓말을 하니 잠깐은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엄마의 얼굴은 내가 원했던 따뜻한 미소가 아닌 충격과 실망에 휩싸인 얼굴이었다. 매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너덜너덜한 내 일기장 속 전략들은 한 번도 제대로 먹힌 적이 없다. 왜 엄마는 나의 성공보다 실패에 더 큰 관심을 주는 것일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커다란 눈을 커다랗게 감았다가 더욱 커다랗게 뜬다. 마지막 비약, 마지막 전략은 무조건 필승이다.


    엄마가 영원히 인터랙트가 아닌 나만을 봐 줄 방법. 그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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