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곳에 남은 일기장과 연필 한 자루
“아니, 그러니까. 내가 영현이 엄만데, 지금 인터랙트가 고장이 났다고요. 영현 씨랑 인터랙트 하는 시간이 한신데, 이미 세 시간이나 지났다니까.”
영현 엄마는 연결 불가 화면이 떠 있는 인터랙트를 손에 쥐고 허공에 마구 흔들어 대며 울분을 토해냈다.
갓 입사한 듯 보이는 인터랙트 본사 직원은 우물쭈물하며 얼마 전 교육 받은 매뉴얼을 중얼거렸다.
“어머님, 연결 대기가 길어지는 경우는 현재 데이터 로딩이 늦어지고 있어 멘토 생성이 늦어지고 있는 것일 수 있어요. 불편함을 드려 죄송하지만, 기기 자체의 결함은 아니라고 아이티팀에서도 확인해 주셨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현 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마구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여기 서비스가 왜 이래?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 같아 보여? 영현이 인생 당신들이 책임질 거냐고! 대답해 봐 빨리!”
영현 엄마는 결심이라도 한 듯 더 큰 호통을 치기 위해 숨을 잔뜩 들이마셨다. 더욱 강력한 추궁으로 인터랙트 사용료 할인이라도 받아내야 분이 풀릴 것 같았던 그때, 갑작스러운 질문이 영현 엄마의 컴플레인을 가로막았다.
“심영현 군 어머니 되시나요?” 경찰복을 입은 창백한 남자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피부가 하얀 건지, 안색이 하얗게 질린 건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영현 엄마는 그 질문에 본능적인 불길함을 느꼈다.
“네 그렇다고요. 여기서 지금 한 시간째 내가 내 아들이랑 인터랙트 연결이 안 된다고 화내-”
영현 엄마는 문장을 마저 끝내지 못한 채 경찰의 다음 말에 숨이 멎었다. 불같이 뜨거웠던 속이 얼어붙듯 심장까지 차가워졌다.
“심영현 군이 사망하였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여태까지 제대로 보이지 않던 주변이 소름 끼치게 선명해졌다. 며칠 만에 갠 안개와 길에 금가루를 뿌린 듯한 햇살이 로비의 큰 통창을 통해 스며들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 줄 알았으면 바깥 벤치에 조금만 앉아 있을걸, 영현 엄마는 그 순간 후회심이 들었다. 남은 자신의 인생 동안 다시는 따스한 햇살 밑에서 느끼는 평온함 따윈 없을 것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경찰은 나지막하게 말을 이어갔다.
“사인은 확인하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자살로 추정 중이며, 시신은 자택에서 오후 두 시 오십 분경 발견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영현 엄마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현 씨가 죽었다고? 가상의 불빛으로 그려졌던 존재가 죽을 수도 있나?
영현 씨는 인터랙트 시간마다 온 정성을 쏟아 영현이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영현 엄마를 지도했었다. 분명 열한 살이 된 올해부터 영현이가 전자기학만 마스터하면 더욱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렇듯 영현이가 성공하길 바라는 영현 씨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택했을 리가 없다. 이건 분명 저 멀대같은 경찰이 범한 업무 실수에 불과하며, 이 난동에 대한 값은 단단히 치르게 될 것이다.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빠르게 영현 엄마는 영현 씨를 대신하여 변명을 늘어놓았다.
“제가 어제 영현 씨랑 인터랙트 세션 진행하는 동안에는 전혀 자살…. 아니 그런 걸 할 기색이 없었어요. 영현 씨가 지금 바쁜가 봐요. 오늘도 약속한 세션 시간에 세 시간이나 늦었는데 사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에요. 영현 씨는 한 번도 제시간을 안 지킨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니까요. 분명 무슨 난처한 일에 처했을 거예요.”
영현 엄마는 불안함에 흔들리는 눈동자를 고정하고자 경찰의 뾰족한 검은 구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끊임없이 말을 뱉어냈다. 리셉션 데스크 뒤에 서서 덜덜 떨고 있는 신입 사원 아가씨도, 도무지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창백한 경찰관도 영현 엄마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가만히 영현 엄마를 쳐다보던 경찰관은 마저 말을 이어 나갔다.
“어머님, 죄송하지만 사망한 심영현 군은 인터랙트 속 가상 인물이 아닌 실제로 살고 있던 열한 살 현재의 영현 군입니다. 인터랙트 속 멘토의 가상 인물 데이터는 모두 실존하는 아이의 생체 정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실존 인물이 사망할 시 데이터 연동이 해제되어 자동 삭제됩니다.“
여전히 영현 엄마는 경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그녀가 극심한 혼란 속에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임을 인지한 경찰은 잠시 기다린 뒤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아이의 시체 확인 부탁드리며, 직접 확인이 어려우실 경우 대신 도움 주실 대리인의 연락처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제서야 뾰족한 얼음 한 조각이 영현 엄마의 살갗을 뚫고 목젖에 맺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열한 살 심영현 군의 엄마는 인터랙트 본사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없는 울음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