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엉킨 운명
삐-익.
“유람 씨, 메시지 받으면 꼭 연락 줘요. 무단결근 하루만 더 하면 유람 씨 자리를 치운다고 이사님이 사무실을 뒤엎고 있어요.”
삐-익.
“여보, 내가 지금 한강에서 당신이 잃어버린 인터랙트 계속 찾고 있는데 경찰들이 도난당한 것 같대. 아무리 찾아도 안 나와. 어디 쪽에서 마지막으로 봤고 언제쯤 잃어버렸는지 제발 말 좀 해줘. 이거 못 찾으면 우리 유선이는.. 유선이 생각해서라도 마음 좀 가다듬고 그날 기억 나는 거라도 다 말해줘야지. 빨리 정신 잡고 다시 연락해 줘.”
삐-익.
“유람아,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왜 며칠째 연락이 안 돼? 너 회사 일이 아무리 바빠도 이렇게까지 연락 안 닿은 적은 없어서 걱정돼. 우리 다음 주에 가족 동반으로 캠핑 가는 거 맞지? 혹시 너무 바쁘거나 아픈 거면 괜찮으니까 이 메시지 받는 대로 알려줘. 꼭 연락해!”
유람의 텅 빈 눈동자에서 갈 길 잃은 눈물이 흘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보려 했지만 이미 눈물범벅이 된 손가락은 머리카락에 아프게 걸렸다. 두둑. 또 뜯겨나간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에 뒤엉켜있는 줄도 모른 채 유람은 어두운 방 침대에 앉아 건너편의 화장대만 쳐다보고 있었다.
화장대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진주 목걸이, 빛을 잃은 듯 반짝이지 않는 사파이어 귀걸이. 유람이 회사에서 중요한 날에 자신감을 얻기 위해 착용했던 저 악세서리들은 혹여나 잃어버릴까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하루를 보냈다. 그날은 아끼던 악세서리를 착용하지 말아야 했다. 그날 유람의 쇄골에서부터 흘러내리던 초록빛 에메랄드 목걸이에 모두의 시선이 머물렀더라도, 유람은 인터랙트를 챙겼어야했다. 드넓은 한강 공원에 인터랙트를 무방비 상태로 두고 다른 학부모들과 웃으며 차를 마시던 며칠 전 자신이 소름 끼치게 한심했다. 차라리 저 화장대 위 모든 보석들을 잃어버리는 대신 인터랙트를 되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절박함이 유람의 숨을 조여왔다.
똑똑.
유람의 방문 밖에서 자그마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자그마한 이 소리는 분명 유선이의 자그마한 주먹이 낸 소리일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며칠째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울고 있는 엄마를 보며 어린 유선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어쩜 저렇게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는 방식이 고작 몇 시간에 한 번씩 하는 노크뿐일까. 이 보석 같은 아이에게 어리석고 무능력한 엄마가 되어버린 유람은 더 이상 아이를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유람은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떨리지 않는 목소리를 힘겹게 내뱉었다.
“유..유선아. 엄마가 지금 감기에 걸려서 그래. 목소리도 이상하지? 감기가 지독해서 우리 유선이한테 옮길까 봐 엄마가 잠깐 방에 숨어있는 거야. 필요한 거 있으면 아빠한테 달라고 해.”
유선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잠깐의 침묵 후 유선이는 다시 소파로 돌아가 앉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아빠한테 달라고 하라니, 아빠는 아침부터 인터랙트를 찾아오겠다며 나가버렸는데, 엄마는 그것도 모르나보다. 유선이는 불이 꺼진 거실에 홀로 남아 굳게 걸어 잠긴 엄마의 문을 바라보았다.
꼭 쥔 아이의 작은 주먹은 소리 없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