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Oct 18. 2024

Chapter 11. 회귀

정답이 없었던 그때로

    유람은 사실 아이들을 예뻐했다. 맑고 투명한 눈동자, 부드러운 머리카락, 통통한 손가락까지 모두 유람의 본능을 자극했다. 아이들을 마주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아지랑이 피우듯 따뜻한 온기를 담아 바라보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을 볼 때면 거대한 동정심과 죄책감이 몰려왔다. 상처받지 않은 온전한 상태의 아이들은 결국 머지않아 슬픔, 실패 그리고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이 오면 삶의 무게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 된다. 태어남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죽음이라는 선택은 오롯이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억울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유람에게 삶은 마치 원하지 않는 식당에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으로 예약을 걸어두었고, 방문을 취소할 시 커다란 예약금을 스스로 지불해야하는 상황과 같았다. 유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이 그런 예약을 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태어남을 강제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미래의 아이에게 자신이 살아가게 될 인생을 미리 보여주고 태어나고 싶은지 묻는다면, 그러겠다고 할 아이가 몇 명이나 될까.


    어린아이들은 이 세상에 자신이 무엇을 위해 들여져 왔는지 모른다. 궁금해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 끔찍한 현실을 모르니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자라난다. 그러다 점점 삶이 던져오는 어려움들에 맞서 싸우며 말랑말랑한 가치관을 통째로 뒤집어 흔드는 일을 겪으면 아이들은 그제야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시작한다. 그 근본적인 원인의 맨 끝에는 내가 왜 이 세상에 왔으며, 도대체 이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어린 유람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오게 된 이유를 생각보다 쉽고 명확하게 알아냈다. 부모의 욕심과 소유욕으로 뒤덮인 결정 때문이라는 것을. 아이를 갖고 싶다.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 마치 집에 새로운 가구를 들일까말까,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올까 말까 와 같은 인생 결정들 중 하나였다. 부모들에게 아이는 부부로서 자신들의 결속력을 더욱 높이고 밋밋해진 세상에 예측 불가한 생명체를 끌어들여 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과 행복으로 둘둘 쌓여진 아이는 이 세상에 아무런 대책과 기여 없이 태어나게 된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찾아온 삶에 대한 회의를 느낀 어린 유람은 부모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다. 자신을 태어나게 하였고 이 세상에 던져두었으며 자신이 겪고 있는 환경의 99% 이상을 마음대로 정의하고 결정하는 부모에게 이 고통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갖고 싶었던’ 유람을 자신들이 원하는 모양새로 길러나가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들에게 육아는 그저 소유욕의 연장선이었던 것이다.


    유람은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도통 정이 안 갔지만, 말 못 하는 짐승을 살리는 일은 꼭 해내고 싶었다. 어릴 적 길에서 차에 치인 고양이를 발견하였을 때, 자신의 흰 티셔츠가 온통 벌겋게 물들어 가는 줄도 모른 채 고양이를 품에 안고 미친 듯이 울며 내달렸었다. 낑낑거리지도 못할 정도로 축 늘어진 작은 짐승을 보며 벌렁거리던 콧구멍이 움직임 없이 정적으로 바뀌어가는 동안 유람을 할 수 있는 거라곤 달리기밖에 없었다. 샤워한 듯 땀에 젖어 겨우 동물병원에 도착했을 때, 반자동 로봇으로 이루어진 수의 로봇은 차가운 금속 측정기 팔로 고양이의 심장박동을 측정했다. 분명 아직 뛰고 있는 심장이었다. 분명 아직 고양이의 눈동자에는 눈물인지 모를 이슬이 맺혀있었다. 하지만 이내 수의 로봇은 모니터에 “가망 없음”을 띄운 채 셧다운되었다.


    고작 열 평도 되지 않는 동물병원의 바닥에서 혼자 울며 고양이의 심장에 심폐소생술을 했다. 작은 주둥이에 숨을 불어넣어 보았지만, 어느새 점점 고양이의 네 발은 딱딱하게 굳어가는 듯했다. 더 이상 온기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고양이의 사체가 굳어져 갔을 때 비로소 죽음을 받아들이고 해가 뜰 때까지 목 놓아 엉엉 울었다. 그 후로 유람은 꼭 인간 수의사가 되어 조금이라도 숨이 붙어있는 짐승이라면 끝까지 어떻게든 살려 내보겠다고 다짐했다. 효율보단 희망으로 가치를 정의하고 싶었다. 만약 유람이 자신의 의지를 내세워 더 강하게 수의사에 대한 꿈을 밀어붙여 보았다면 어땠을까? 절대적인 옳음을 제시하는 인터랙트를 상대로 그런 보잘것없는 주장을 하는 게 가능했을까?


-


    인터랙트를 찾으러 다닌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넘어갔다. 인터랙트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것에 비해 돈을 주고 구매하는 소유품이라는 이유로 경찰들은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사회적 기반이나 법보다 기술이 먼저 발달한 인터랙트의 현실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도 인터랙트에 크게 의지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서도 유람의 사건에 대해서는 흐린 눈으로 실체를 외면하려 애쓰는 듯했다. 오히려 유람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것은 다름 아닌 유람의 어머니였다.


    유람의 어머니는 짧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옅게 인상을 썼다.


    "그걸 잃어버리면 어떡하니. 경찰이든 깡패든 돈을 세 배로, 아니 네 배로 더 준다고 하고 찾아달라고 해."


    그녀는 역시나 비난 섞인 명령조로 말을 읊어내며 차 한 모금을 홀짝였다. 유람은 유난히 그 홀짝이는 소리가 듣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언제나 유람에 말할 때면 그녀만의 세상에 홀로 갇힌 듯했다.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사람과의 대화는 늘 소모적이었다. 마치 소통이라는 최후의 목표를 거대한 탑 위에 올려둔 채, 그 탑을 올라가기 싫어하는 모습 같았다. 탑 밑에서 소통을 가져오라며 호통치는 모양새는 꼭 게으른 늙은 개와 닮아있었다.


    유람의 어머니는 초점 없는 눈동자를 굴리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도 만약 인터랙트 없었으면 지금처럼 전문직도 못되고 로봇으로 대체됐을 거야. 그렇게 세상에서 경쟁력도 잃고 도태되는 거지.”


    그 말에 오랫동안 자동으로 굴러가던 뇌에 전류가 흐르듯 유람의 정신은 번쩍 깨어났다. 자신이 전문직이 되고 싶던 적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람은 한 번도 자신의 장래 희망을 고민한 적이 없었다. 유람의 기억엔 존재하지 않는 어느 날부터 유람은 인터랙트의 지시를 따라 살아갈 뿐, 내일을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그제서야 그동안 인생 내내 유람을 짓누르던 커다란 바위가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듯했다. 영리했던 어린아이가 더 이상 고뇌하지 않게 된 이유, 오늘보다 더 짧을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이유, 자신의 인생을 최대한 빠르게 허비하고 싶었던 이유 모두 순식간에 유람에게 선명히 다가왔다. 모든 것의 원인은 자유의 부재였음이 분명했다.


    인터랙트 화면에서 쏘아대는 빛의 굴절들은 미래의 유람이라는 헛것을 그려냈다. 현재의 유람은 그렇게 자신의 자유를 미래의 허상에 빼앗겼다. 공기에 맺힌 그 빛들은 유람과 꼭 닮은 눈매에 진한 마스카라와 안경을 씌워가며 유람의 부모에게 변호사 호소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법을 다루는 직종은 대부분 로봇으로 대체되었지만, 일부 심도깊은 감정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케이스에 한해서는 인간이 감정적 호소를 전적으로 맡게 되었다. 로봇으로 대체 불가한 희귀한 직종 중 하나인 변호사 호소인이 되기 위해 수백 명이 달려들었고,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릴 적부터 감정적 호소를 익혀야 했다.


    감정에 호소하지만,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선천적으로 감정이 풍부한 아이들은 되려 변호사 호소인이 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변호사 호소인이 된 그들은 유람처럼 가짜 가면을 쓴 어른들이 대부분이었다. 내면은 메마른 이성뿐이지만 겉으로는 거뜬히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일종의 엔터테이너처럼 말이다. 유람은 유년기에 일상에서 숨 쉬듯 익힌 이 거짓 가면들이 직업이 될 수 있음에 안도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송곳 같은 말 한마디는 유람의 귀에 계속해서 울렸다. 만약 자신이 변호사 호소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정말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감정이 메말라 있는 질병을 갖고 있었던 걸까. 자신이 화분에 물을 줄 때 식물을 향했던 애정 어린 눈빛, 길 잃은 고양이의 상처를 치료해 주겠다며 엉엉 울며 새벽 내내 동물병원을 찾아 헤맸던 골목길, 유람이 피아노를 치며 노래할 때 느꼈던 행복감을 보고도 부모는 자신을 감정 불구라고 진단 내릴 수 있었을까. 이제야 선명하게 보였다. 유람의 진짜 감정들은 인터랙트로 인해 걸러졌고, 유람이 갖지 않았지만, 유람의 부모가 원했던 유람의 모습들은 공백으로 채워져 모두에게 실망감을 주었을 뿐이었다. 그 실망감을 채우기 위해 유람은 자신이 갖고 태어난 고유한 감각들을 모두 시멘트 안에 굳혀 버리고 살얼음 낀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로 선택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선택당했다.


-


    인생을 깨닫는 시간은 고작 몇십초면 충분했다. 유람은 잠시 침묵한 뒤 나지막하게 고백했다.


    “엄마. 나는 사실 행복하지 않아.”


    유람의 어머니는 놀라는 기색 없이 미간을 찡그리며 차를 한 모금 더 홀짝였다. 그녀의 반응 또한 자신과 같은 가면에 가려져 있는 걸까.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쥐고 휘둘렀던 사람에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책임을 묻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 책임은 유람 어머니의 찻잔과 머리칼 위로 흘러 결국 다시 유람의 목젖에 꽂혔다.


    “왜 행복하지 않니? 그 나이 먹고도 행복하지 않으면 어쩌니?”


    그 말투는 당당하게 아이에게 행복을 가져올 것을 요구하는 부모의 말투였다. 아무런 맥락 없이 행복은 덤처럼 따라올 거라 착각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순간 유람은 천천히 자신의 탑 위를 올려다보았다. 유람의 거대한 탑 위에 놓여있는 것은 자유였다. 그 탑을 오르는 것은 오로지 유람의 몫이었지만 유람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평생을 허비했다. 그 탑 위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바닥을 기어다니기 싫다는 불만만 가득했었다. 유람은 드디어 천천히 탑 위를 바라보았다.


    “왜 내가 변호사 호소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유람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유람의 어머니에게 유람의 표정은 큰 수치와 절망을 불러일으킨 듯했다. 그녀는 접시가 깨지는 쨍그랑 소리와 같은 목소리로 받아쳤다.


    “네가 원한다고 했잖아. 인터랙트 속의 네가 원한다고 해서 나는 그걸 현실화 시켜줬을 뿐이야. 따질 거면 인터랙트에 가서 따져!”


    그거면 충분했다. 유람은 인터랙트를 더 이상 찾지 않아도 된다. 결국 모두 어리석은 인류의 착각이었을 뿐, 인터랙트는 절대적인 옳음이 아니었다. 인터랙트의 선택은 그저 또 다른 누군가의 선택일 뿐이었고, 실패한 선택은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그 선택을 인생의 지표로 삼아 살아가니 결론적으로는 그 선택이 늘 옳을 수밖에 없었다. 실패한 인생들은 목소리가 없으니 말이다. 만약 실패로 끝났더라도 그 선택이 유람 부모의 것, 혹은 유람의 것이었다면 후회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유선이의 작은 신발이 보였다. 유선의 운동화, 슬리퍼, 샌달, 구두, 부츠 모두 앙증맞은 꽃분홍색이었다. 유람은 천천히 유선의 방문에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었다. 유선이는 포동포동한 손으로 전자펜을 꼭 쥐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유선아, 뭐해?”


    유람이 살그머니 유선의 옆으로 다가가 침대에 걸터앉아 물었다.


    “엄마, 이거 봐봐. 내가 코끼리 그렸어."


    유선은 전자 패드를 돌려 유람에게 보여주었다. 패드 속에는 삐뚤빼뚤한 초록색 코끼리가 연두색 잔디 위에서 웃고 있었다.


    “유선아, 너는 초록색이 좋아?”


    유람은 차오르는 눈물을 떨구지 않기 위해 눈을 깜빡이지 않으며 물었다.


    “응. 나는 초록색이 제일 예뻐.”


    유선은 오랜만에 받아보는 개인적인 질문에 설레인듯 눈을 맞추며 말했다. 발그레한 볼에 미소가 번지며 유선은 괜시리 패드 속 초록색을 한 번 더 가리켰다.


    “엄마랑 초록색 운동화 사러 갈까? 유선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거로 고르러 가자.” 유람은 물었다.


    유선이의 작은 눈동자가 흔들리며 무언가를 고민하듯 예쁜 코를 찡그렸다. 그러고는 다시금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선아, 무슨 생각 했어? 무언가 고민이 돼?” 유람은 한 번 더 물었다.


    “구두.” 유선이가 통통한 볼살 사이로 작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운동화 말고 구두 갖고 싶어.”


    유람은 빙그레 웃으며 한 번 더 물었다.


    ”그래, 그리고 또?"


    유선은 살짝 눈치를 보듯 유람을 부끄럽게 곁눈질하며 말했다.


    "지금은 코끼리를 다 못 그려서, 지금 말고 나중에 사러 가자. 한 시간 후에.”


    유람은 흐르는 눈물을 숨기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선아, 엄마가 유선이 생일날에 코끼리 모양 케이크를 준비하지 않아서 미안해. 유선이가 코끼리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도 엄마 마음에 드는 케이크로 골랐었어.”


    유람은 신부님에게 고해성사하듯 조금씩 자신을 찔러대던 사실을 고백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걱정이 되면서도 그 고백의 의미가 사랑임을 아는 듯이 유선은 더 묻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다시 열중하기 시작했다. 초록색 코끼리를 칠하는 유선의 손짓은 아직 다행히 자유를 쥐고 있는 듯했다. 유람은 너무 늦지 않게 부모로써의 자신의 역할을 깨닫게 된 게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이 세상으로 이끌어온 생명체에게 온전한 삶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키워주는 일, 그것이 자신이 유선의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라 다짐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상대방을 너무 깊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방심한 순간 나와 상대방을 동일시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도 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내가 판단하기에 상대방에게 더 좋은 선택들을 강요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그 사람이 곧 나이기에, 상대방이 나를 부정하거나 거부할수록 더 가까이 끌어당기려 힘을 가하게 된다. 


    사랑은 이런 못된 습관들을 담고 있기에, 의식적으로 사랑하는 이의 자유를 지켜줘야 한다. 사랑하는 이의 선택이 내가 원하는 선택이 아닐지라도, 그 선택을 온전히 상대방에게 열어놔 주는 것까지가 진정한 사랑이다.


    그날 이후로 유람은 더 이상 인터랙트를 찾지 않게 되었다.

                    

이전 12화 Chapter 10. 팀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