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가 글을 잘 쓴다던데

내 글이라곤 편지밖에 안 읽어본 그 말들을 믿고 싶다

by 정한결

어영부영 생각만 하다가는 평생 시작 못할 것 같아서 일단 던져보는 새벽 2시의 브런치.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모르겠다.

옛날엔 30살쯤 되면 갈피가 잡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30살을 4달 앞둔 지금, 전혀 갈피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젠 안다. 그냥 평생 모르는 거다 이건.


나는 영어교재 출판사의 에디터로 약 5년을 일했다.

한국나이 23살부터 같은 회사에서 쭉 일했다. 대학 졸업식도 회사 다니던 중에 반차를 쓰고 다녀왔다. (코로나 때문에 학위증 못 받고 돌아왔지만)

그 일이 잘 맞는다. 적성에 맞을 뿐 아니라 매우 잘하기도 한다.

아일랜드 워홀 중 퇴사한 전 직장에서 외주도 여러 번 받아서 낮엔 카페에서 설거지를 하고, 밤엔 영어교재 원고를 쓰고 부가자료를 만드는 돈미새의 삶을 살았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힘든 사무직보다 몸 쓰는 일이 낫다는데 둘을 동시에 해본 사람으로서 난 무조건 사무직이다.

일을 관두고 떠난 아일랜드에서 역설적으로 내가 편집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애초에 회사를 관둔 것도 일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꽤 많이 배웠고 더 이상 변화가 없을 것 같은 단조로운 삶이 조금 질릴 때도 있었지만 관둘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20대 초반 막연하게 꿈꾸던 '나중에 해외에서 살아야지'라는 생각의 '나중'이라는 나이와 회사 분위기가 개판이 된 시기가 매우 잘 맞아떨어져 훌쩍 떠날 수 있었다.


한편엔 좋아하는 여행이나 영화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있다.

글도 쓰고 여행도 하고 영화도 보니까 그걸 함께 버무린 일을 하고 싶다.

문제는 그 마음조차 그렇게 강렬하지 않다는 거다.

여행을 좋아해서 남들보다 많이 다니고, 영화를 좋아해서 남들보다 많이 본다지만 딱 취미의 레벨이다.

그래서 그 한편에도 불구하고, 보험처럼 가지고 있는 5년의 에디터 경험을 언제든지 다시 쓸 수 있다는 점에 안도했다.


근데 요즘 만나는 사람들이 자꾸 내 마음을 흔든다.

한국에 오고 만난 6-7명의 사람들이 나를 만날 때마다 여행 에디터를 하란다.

모두 제시하는 이유도 똑같다. '너 여행 좋아하고 사진 잘 찍고 글도 잘 쓰잖아.'

그들이 읽어본 내 글은 그래봐야 내가 그들에게 쓴 편지일 텐데 매일 일기를 쓰고 블로그를 유지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글 잘 쓰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주는 좋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만난, 여전히 영어 교재 에디터인 인생 첫 사수선배에게마저 이 말을 들어버렸다.

나는 평소에 별거 아닌 일들도 운명으로 치부하며 당위성을 부여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 선배마저 이 말을 하니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이거 정말 여행 에디터를 하라는 신의 계시인데 내가 쉬운 길을 가고 싶어서 모른 척하고 있나?"


그래서 결론은, 모르겠다.

한국에 돌아온 지 3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오자마자 또 엄청난 양의 프리랜서 에디터 작업을 했다.

그 폭풍 같은 작업이 얼마 전에 끝나고 이제 막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니 다시 머리가 복잡해져 오기 시작한다.

모든 일들엔 이유가 있고 모든 어려움은 지나간다는 인생의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지는 꽤 되었는데, 이 깨달음의 문제는 꼭 그 고민의 시기가 지나가야만 생각난다는 점이다.


나는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도 않다.

야망이 없는 것 같은데 뭔가 해내고 싶기도 한 것 같다.

20대 후반에 오는 사춘기가 더 답이 없다는데 내가 딱 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