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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Mar 05. 2017

도자기에 담은 꿈, 달항

[interview]우리가 처음 만나는 텀블러

어느 날 카페에 갔다가 느낀 것이 하나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텀블러는 없다’는 것. 매장에 진열된 30가지 텀블러는 당연한 듯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색만 조금 다를 뿐. ‘텀블러 명가’라는 스x벅스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느 날 예상치 못한 텀블러가 세상에 나왔다. 도자기를 닮은 텀블러. 브랜드명은 ‘달항’. ‘조선백자달항아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 항아리가 텀블러가 된 사연이 궁금해 달항의 이서준 대표가 있다는 파주를 직접 찾았다. 


달항의 이서준 대표는 대학교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했다. 그때부터 조선백자달항아리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조선백자달항아리’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 

일단 굉장히 크다. 사이즈에 매료됐다. 기본적인 높이가 40cm 이상이고, 작은 게 없다. 색은 아무 무늬가 없는 순백색인데 심플하다. 결정적으로 좌우가 ‘비대칭’인 게 독특한 점이다. 비대칭인 이유는 도자기를 빚는 흙의 성분이 중국과 달라서다. 만들 땐 둥글던 게 가마에 들어가면 흙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학자들은 비대칭적인 것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미’라고 하는데 내 생각도 그렇다.


조선백자달항아리(사진: 네이버 지식백과, 경인문화사 제공)


조선백자달항아리의 한자명은 대호(大壺)인데, 우리말로는 ‘달항아리’라고 한다. 둥근 걸 달에 비유하다니, 해석이 멋스럽지 않나. 우린 예부터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빌곤 했다. 달은 꿈을 상징하고, 항아리는 음식을 담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숙성을 뜻한다. ‘꿈을 담아 그 꿈을 성숙시키는 것’ 같은 매력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제부터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나 

어렸을 때는 그저 옛것에 관심이 많았다. 시작은 <인디아나 존스>였다. 그 영화를 보며 고고학이 굉장히 매력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땅을 파면 우리가 지금껏 못 보던 것이 나온다. 그리고 그걸 유물이나 유적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유물과 유적지를 보며 연구를 한다. “이건 어떻게 사용했을까?” “이 터는 어떤 터였을까?”라고 말이다. 


그럼 고등학생 때부터 고고학과 진학을 생각했나 

고등학생 때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실업계를 다녔고, 졸업을 하면 2년제 대학 아무 데나 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고고미술사학과에? 

고3 때 학교에 있는 게 싫어서 모 제화회사 판매사원으로 취업했다. 본사 바로 옆에 있는 매장이었는데, 아침에 본사 직원들을 보니 목에 사원증을 걸고 커피를 들고 다니더라. 그 모습이 부러웠다. 


보통 점심시간이 한 시간인데, 판매사원은 터무니없이 짧았다. ‘본사 직원과 같은 회사인데도 나는 왜 쉬는 시간에도 서서 응대를 해야 할까’하는 불만도 생겼다. 어린 나이에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로 삼수까지 하며 대학에 들어갔다.


이서준 대표는 멀쩡한 폰을 부수며 전화요금 대신 재수학원에 보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드라마틱한 그의 이야기를 인터뷰에 모두 담을 수 없어서 아쉽다.(달항 블로그를 참고하시길)


조선백자달항아리는 언제 알게 됐나 

고고미술사학과에 입학해서 3학년 2학기 때부터는 미술사를 심화 전공했다. 미술사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학예사가 되어 문화&역사 콘텐츠 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미술사 대학원 진학을 위해 관련 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과목 중 하나가 도자기 역사 연구였다. 한-중-일 도자기 역사를 연구하는 수업이었는데, 그때 조선백자달항아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계획과 달리 대학원을 가지 않고 달항을 창업했다 

돈이 없었다. 대학교 때까지는 등록금을 내 돈으로 벌어서 냈는데, 대학원 등록금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학원을 가지 않고 여러 차례 취업과 창업을 하다가 ‘꼼데가르송’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됐다. 니트 하나에 20만 원인 정도 한다. 옷에 하트만 하나 붙었을 뿐인데 어떻게 20만 원이나 할까 생각했다. 꼼데가르송을 보니 나도 우리나라의 아이덴티티가 있는 옷을 만들어보고 싶어지더라. 그때 떠올린 것이 조선백자달항아리였고, 그래서 만든 것이 달항이었다. 첫 제품은 물병이 아니고 니트였다.


당시 제작했던 달항 니트. 조선백자달항아리가 가슴팍에 박음질되어있다.


그런데 어쩌다 물병만 만들게 됐나 

출퇴근이 꽤 장거리인데, 운전 중에 물을 마시기가 불편했다. 두 손으로 물을 따서 마시면 위험하기도 하고. 또 취미로 자전거를 즐기는데, 마니아들은 한번 탈 때 보통 8~90km를 달린다. 그렇게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는데, 언제 물병을 빼서 세척하겠나. 그런 사람 별로 없다. 그런데 그렇게 두면, 물병 안에 물때랑 침전물이 엄청나게 쌓인다.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세척을 안 해도 사용할 수 있는 물병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운전 중에도 한 손으로 편하게 마시는 물병을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만든 것이 달항물병이다.


달항청화백자운학문물병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 

‘휴대용 물병 안에 물을 다 마셨을 때 어디서 보충하나요?’라고 설문조사를 하니, 80% 정도가 편의점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물병의 물을 따라 텀블러 안에 담는 과정을 생략하고, 물병 전체를 담을 수 있게 만들었다. ‘다용도 뚜껑을 갖는 다용도 물병’이라는 이름으로 특허권도 가지고 있다.



사이즈 문제는 없나 

국제 규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시작한 사업이다. 물병 입구의 크기는 전 세계적으로 세 개가 있다. 코카콜라 기준, 에비앙 기준, 게토레이 기준이다. 우리나라 생수병은 에비앙 기준이다. 


디자인의 특징도 궁금하다. 

700mL와 850mL의 디자인이 다르다. 700mL는 13세기 라인인데, 고려 무신정권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했다. 무신들은 실용성보다는 화려함을 추구했기에 아름다운 곡선이 들어간 형태가 특징이다. 850mL는 14세기 라인으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대적 배경을 반영했다. 화려한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던 무신정권이 물러나고 학문과 실용적인 것을 연구했던 문신들의 특징을 살렸다.


왼쪽이 13세기 라인, 오른쪽이 14세기 라인


도자기와 텀블러를 결합한 디자인이라…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간다. 그곳에 가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상상력이 발휘한다는 건 굳어버린 뇌, 좁아진 시야를 넓히는 행위다. 


자신만의 유물 감상법 같은 것이 있을까 

그냥 유물 앞에 가만히 서있는다. 그리고 쳐다보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한다. 이 물건을 사용한 사람, 이 물건이 놓여있던 장소와 환경, 날씨. 그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마치 투명인간이 되어 나만 그 사람들이 그 유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보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미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내가 한국 사람이고, 두 번째는 역사, 그리고 도자기를 공부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게 많은데 외국의 디자인만 따라하려고만 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 인사동에 가면 전시할 수 있는 제품들은 있는데,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제품은 많이 없다. 물병 사업을 시작한 이유도, 도자기를 관상용이 아닌 일상용으로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 달항은 어떤 브랜드가 되고 싶은가 

한 켤레를 사면 한 켤레가 기부되는 ‘탐스’ 브랜드를 좋아한다. 돈을 많이 벌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 문화재환수운동을 하거나 우물을 기부하는 등 사회를 이롭게 하는 데 돈을 쓰는 그런 브랜드가 되고 싶다. 사회적으로 힘이 되고 빛이 되는 회사 말이다. 



/사진 : 김석준, 이서준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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