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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Apr 26. 2017

김사월의 여행, 고요하고 낯선

[박희아의 플레이어리스트] 제 1화

#플레이어리스트를 시작하며 


2016년 여름, 네 팀의 여성 음악가들을 만나 ‘여행’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왜 이 인터뷰들이 곧바로 빛을 보지 못했냐는 질문을 하신다면, 그러게 말이다. 사연이 길다. 이 원고들을 갖고 실의에 빠져있던 나를 이해해달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1년에 가까운 시간을 흘려보냈고, 이제 드디어 플레이어리스트라는 이름으로 게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돌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저널리스트 한 명이 원래,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점 자체가 크게 흥미를 자아낼 것 같진 않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 굳이 다른 매거진이나 웹진을 찾아다니며 인터뷰 자리 좀 마련해 달라고 간청했던 이유, 그건 한두 사람쯤 귀 기울여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이렇게 멋진 소리를 만드는 음악가들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소소한(혹은 거대한) 바람이 있는지 나만 궁금한 것은 아닐 테니까. 음원 차트 주요 순위 밖에 있는 노래에는 어떤 얼굴이 숨어있는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들이 살아낸 환경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조금씩 변했을지언정, 음악가 각자의 심연이 묻어있는 목소리는 그때든 지금이든 그대로다. 그러니 어느 한 시절의 음악가들을 기록했다고 봐주시면 좋겠다. 이 플레이어리스트에는 그들이 직접 만들어서 전해준 추천곡 리스트도 포함되어 있으니, 꼭 들어보시기를 소망한다. 


플레이어리스트의 첫 주인공은 김사월이다. 지난 여름,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서 더운 햇빛을 뚫고 걸으며 나누었던 대화들을 다시 한번 조각조각 모았다. 미묘하게 떠오르는 시차의 공백 사이에서, 최근 김사월이 전했다. “저 이제 수영할 수 있게 되었어요.” 2016년과 2017년 사이에, 물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고. 따뜻하게 고인 물이든, 고요하게 흐르는 물이든 간에.



#여행, 좋아하세요? 


박희아(이하 박)_여행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고 하셨어요. 좋아하실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김사월(이하 김)_여행을 좋아할 것 같은 건 어떤 느낌일까요? 정말 궁금해서요.  


박_김사월 씨가 만든 음악은 고요하고 낯선 초원을 떠오르게 해요.  

김_서울에서 생활한 지가 좀 되긴 했지만, 고향이 여기가 아니라서 사는 게 낯선 경험이 되는 순간이 있어요. 여행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낯선 곳에 있는 기분이 드는 거죠. 모르는 사람들과 계속 만나고. 사실은 제가 딱히 여행이란 것 자체에 대해 많이 아는 편이 아니라 조심스러워요.  


박_어떤 면에서 조심스러워지는 건가요?  

김_좋아할 것 같다고 하시니까요. 저는 그런 건 아닌데.  


박_이야기를 나눠보니 여행지에 동화되는 타입이 아닐 것 같아요. 바깥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도 잘 없을 것 같고요.  

김_저는 희한하게 여행을 가서 음악적으로 뭔가를 떠올리거나 하는 일이 잘 안 돼요. 음악 듣고, 책 보고 뭔가를 떠올려서 쓰는 게 잘 안 돼요. 가면 정서적으로는 편하다고 느끼지만. 영감 받으려고 가는데 매번 실패하고 돌아와요.  


박_여행지에 갔다가 ‘오히려 마음이 어지러워져서 왔다’고 하셨는데.  

김_올해 초에 가사를 조금이라도 완성해보려고 혼자 제주도에 며칠간 다녀왔거든요. 혼자 놔뒀을 때 잘해내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활하고 좋은 건 아니지만, 작은 소통구가 굉장히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혼자 놔두니까 소통이 없고, 그러다 보니 생각이란 게 흐르지가 않더라고요. 뭔가를 전혀 하지 못했어요. 음,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에게는 여행이 없다고 하잖아요.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건 돌아올 곳이 있다는 소린데, 원래 있던 곳이 불안했던 사람에게는 여행을 떠나는 것부터가 불안할 수 있죠. 혼자 다니는 여행이 왠지 좋을 것 같지만, 그 말에 담긴 속뜻처럼 저에게는 좀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연하러 가면서 그냥 끼어가는 기분으로 갔던 여행이 진짜 재미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네요.  


박_어떤 사람에게는 여행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김_저는 여행으로 자기를 순환시킬 수 있는 분들을 부러워해요. 그들은 현실 세계에서 많은 것들을 발산하고 나서 그것을 다시 채우기 위해 여행을 가죠. 굉장히 잘 즐기고 오고요. 그들에게는 헛헛함을 채울 수 있는 열쇠가 하나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저는 잘 안 되니까요. 그럼 나는 이런 헛헛함을 채우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아직도 그 방법을 못 찾았어요.  


박_그럼 번아웃(burn out) 상태에서는 무엇을 하시나요?  

김_유튜브를 봐요. 


박_떠나는 것 말고, 여행이라고 부를 만한 느낌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주세요. 

김_몇 가지 떠오르는데, 일단 서울에서 종종 느끼는 낯섦. 지금 이사한 지도 한 달이 안 됐어요. 이 집에 올 때는 언제나 그랬듯이 ‘오래 살아야지.’ 하고 결심했죠.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여덟 번 이상 이사를 했거든요. 진짜 많이 했죠? 어디에 머문다는 게 적응이 잘 안 돼요. 그러니까 어디에 가도 낯설죠. 그나마 오래 머물렀던 곳이 혜화동이었어요. 1, 2년 정도 머물렀죠. 거기는 매번 산책길이 항상 여행 같았어요. 나중에 할머니가 되면, 물론 제가 할머니로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이 세상이 평화로울지는 모르겠지만, 혜화동 있는 곳에 살고 싶어요. 무슨 초등학교인지 잊어버렸는데, 주변이 아주 조용하고 좋았어요. 삼청동 근처에서도 살았는데요. 그때는 비누 파는 매장에서 한 번씩 저에게 트로피를 주고 오면 많이 나아졌었거든요. 거기가 없어져서 최근에는 안 가게 됐지만.  


박_항상 짧게 머물렀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_자금적인 문제가 가장 크고, 그때는 심리적인 변화도 급박하게 이뤄져서요. 상황과 자금에 따라서 움직였어요.  


박_가보고 싶은 곳은요.  

김_돈을 많이많이 모아서 수영장 있는 호텔에 하루 쉬러 가고 싶은데. 저녁 잘 먹을 수 있고, 자기 전에 술 한 잔 할 수 있으면 좋겠고, TV로 심슨 볼 수 있으면 좋겠고, 좋은 향으로 샤워했으면 좋겠고.  


박_향기를 좋아하시나 봐요.  

김_좋아할 대상이 있으면 그 대상에게 밴 향을 좋아하도록 스스로를 만들어요. 뭐, 꼭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도? 하하.  


박_그나저나 수영은 잘하시나요? 

김_물속에 있으면 그냥 기분 좋을 것 같아서요. 로망을 물어보셨으니까.


김사월 정규 1집 <수잔> 앨범 커버(출처: 미러볼뮤직)


1.꿈꿀 수 있다면 어디라도 <수잔> 다섯번째 트랙 유튜브

“제주도에서 4일 정도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혼자 묵었어요. 눈이 정말 많이 오는 날과 딱 겹쳤고, 눈과 밭을 잔뜩 보고 왔던 기억이 나요. 쉬고 싶은 마음과 노래 가사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으로 갔는데, 쉬지도 못하고 마음속은 엉망이 되어 돌아왔었어요. 아주 추웠던 발과 춥지만 상쾌했던 건물 밖 샤워실, 조금 따뜻했던 침대 속과 난로가 생각나요.”


2. 젊은 여자 <수잔> 일곱번째 트랙 유튜브

“스물셋쯤 일본 도쿄 신주쿠에 갔었죠. 2월쯤이었을 거예요.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11일 정도 혼자 묵었고, 반짝거리고 어지러웠던 밤의 신주쿠 풍경을 안고 지냈어요. 혼란스러운 도심이었지만, 그곳에서 편안한 기분을 받았던 것 같죠. 모든 것이 새롭고 단정해진 것 같았어요. 소설책이나 노래 가사에 나오는 곳들에 갔고, 많은 것을 따라 하고 왔어요.”


3. 향기 <수잔> 여섯번째 트랙 유튜브

“2016년 2월쯤, 서울 광화문 서머셋 호텔에 갔어요. 정말 지쳐있었죠. 하룻밤 정도 호텔에서 따끈하게 목욕을 하고 잠들고 싶었습니다. 바쁘게 보낸 나의 하루에 상을 주는 것처럼. 레지던스 같은 형태의 방에 묵었는데, 식기와 가전제품들이 조금 낡았지만 고급이어서 한참 동안 구경했던 기억이 나요. 언젠가 ‘집’이라는 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직까지는 나름의 ‘방’에서 산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사진: 안녕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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