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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Dec 29. 2017

출마보다 더 어려운 ‘불출마’

TF Guide_정치용어 2화

        


“최근 제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한 언론보도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셔서 제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국민과 국가를 섬기는 공직은 가장 영예로운 봉사입니다. 그러나 공직의 직분을 다 하기에 제 역량과 지혜는 여전히 모자랍니다. 당장의 부름에 꾸밈으로 응하기보다는 지금의 제 자리에서 세상을 밝히고 바꾸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 물망에 오른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  그러나 그는 완곡하지만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불출마’를 선언한 거다.   

  

불출마(不出馬). 거칠게 풀이하면 ‘말을 타고 나아가지 아니하다’ 정도로, 선거에 후보로 나서지 않는 결정을 뜻한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단어를 무슨 이유로 이리 장황하게 설명하느냐고? 단순히 보면 한 사람의 정치적 결정일 뿐이지만, 현실정치에서 그 키워드에 담긴 의미와 배경은 결코 가볍지 않고, 그건 역사가 증명해왔기 때문.      


기본적으로 불출마는 유권자들에게 아직 잘 먹히는 카드다. 잘 생각해보라. 정치권을 탐욕의 악다구니 정도로 생각하는 국민들에게 기득권과 욕심을 포기하는 모양새를 연출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메리트다. 이제 다양한 사례들로 이해도를 높여보자. 알고 나면 의외로 재미있고, 당신은 ‘알쓸신잡’ 못잖은 연말 술자리를 만들 수도 있을 테니.                

                   



더 높은더 커다란 꿈을 향해


# 현직 도지사 A씨. 그는 최근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지역민들로부터 높은 신망과 지지를 확보하고 있어 당선 확률이 매우 높음에도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위로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는 정치인(혹은 공무원)은 대통령 단 1명뿐이다. 지방 군수에서부터 광역시장, 국회의원, 장관까지 모든 이들에게는 신분상승의 기회가 존재한다. 그래서 선거철이 다가오면 자신의 직을 걸고 승부수를 던지는 이들이 있다.     


A씨는 이미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이들 중 하나다. 지난 19대 대선을 앞둔 당내 경쟁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전국적으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소득을 거뒀다. 도지사직을 포기한 그의 결정이 결국은 대통령직으로 가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작전상 후퇴권토중래를 노린다


# 현직 국회의원 B씨.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지역적으로 정치색이 뚜렷한 ‘적진’에 수차례 도전한 끝에 ‘인간승리’를 이뤄낸 것. 이를 바탕으로 단숨에 대권주자의 반열에 올라섰으나 19대 대선을 3개월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권교체의 밀알이 되겠다’는 설명과 함께.     


대선에 출마해 떨어지더라도 인지도는 남는 법. 다음 도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B씨는 과감하게 불출마하는 쪽을 택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뒤로 물러나 차분히 때를 기다렸고, 현 정부에서 장관직을 맡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더 버티다간 본전도 못 찾겠다


# 한국에서 장관을 지낸 뒤 국제기구 수장을 연임한 C씨. 자연스레 높아진 인지도를 앞세워 19대 대선을 앞두고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됐다. 하지만 그는 국민적 관심이 쏠린 귀국 현장에서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후 이어진 행보마다 실망을 남긴 끝에 보름 만에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한 어쩔 수 없는 불출마의 사례다. 당초 엘리트 코스를 거쳐 국제기구에서 오래 일한 그의 경험에 국민들은 기대감을 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는 아직 정치나 국정운영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음이 금세 드러났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그에게 불출마는 출구전략으로 작용했다.    


       

|어차피 이기기도 어려운데 개평이라도


#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한 D씨. 비록 ‘정치 신인’이지만 여론조사에서는 경쟁자인 현직 의원을 위협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방 역전이 가능할 것 같았던 분위기는 어느 순간 정체됐고, 선거운동 비용은 예상치를 넘어 계속 소요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대 선거캠프의 관계자가 은밀한 제안을 건넨다. 출마를 포기하면 돈을 주겠다는 것. 고심하던 D씨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불출마가 범죄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공직선거법 제232조는 출마 포기나 후보 사퇴를 하게 할 목적으로 금전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그런 의사 표시를 하는 행위에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명시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같지만 상당히 빈번하게 벌어지고 적발되는 사례다. 선거구는 무척이나 많고 각 선거구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권력에 눈먼 자들이 무엇을 못하겠는가.         


/글: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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