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상을 그리는 시지프, 프로젝트, 소년이 온다.
그라데이션 (Gradation, 하나의 색채에서 다른 색채로 변하는 단계, 혹은 그러한 기법) 색이 연하게 변하는 과정을 담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많은 작품 이 효과에 의존한다. 이 단순한 변화가 주는 아름다움은 생각보다 크고 효과적이다. 자연에서, 노을 지는 석양이나, 북구에서만 볼 수 있는 밤하늘의 오로라도, 따지고 보면 그러데이션 효과다.
"내용이 사라지고 형태만 남으면 예술은 상품이 된다."
분명 어디서 보고 메모한 것인데, 여전히 출처를 못 찾고 있다. 오랜 시간 고민하던 문제, 특히 추상화, 단색화에 대한 꺼림칙함을 일거에 해소시켜 준 결론이었다. 그래서 껍데기만이 아닌 내용과 함께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아름다움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또 지옥보다 무서운 생시를 보면 아름다움을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 짓인지,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보며 감동에 젖는 마음은 또 무어라고 설명을 해야 하는지..
오늘 필사한 소년이 온다에선 정대의 몸은 썩어가며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몸을 증오하게 된 정대는 깔끔한 시체를 보며 부러워하고,볼을 쓰다듬어주던 누나의 손길을 기억하려 애쓰는 대목이었다.
그 대목을 적으며 미세한 색의 변화를 그리고 있는 나의 모습이란,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의 시체를 태우는 풍경을 담는 화가와 무엇이 다른 것인가.... 가자를 그리면서부터, 그림을 더 이상 팔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옥보다 끔찍한 생시를 그려서 어떻게 돈을 받는다는 말인가..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며 필사작업에 관한 밀린 글들을 정리했다. 한 음(音), 한 음(音) 참 소중히 도 피아노를 치는구나.. 임윤찬을 보며 생각했는데, 한 자 한 자 다듬어진 한강의 글과 그의 연주가 닮아 있었다. 지옥보다 끔찍한 생시에,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감사하다...
ps
반 클라이번과 임윤찬을 들을 때마다 꼭 언급하고 싶은 이가 있다. 바로 지휘자 마린 올솝 이다.
그녀는 반 클라이번 공쿠르에 그냥 들러리 서는 지휘자가 아니다.번스타인의 수재자이며, 베토벤과 말러 해석으로 유명하다.클래식 음악계가 보수적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우린 늘 남자 지휘자들에게만 열광한다.때때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멋지지 않다. 연주를 마치고 임윤찬을 안아주는 모습은 협연한 지휘자가 아닌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어느 지휘자가 이보다 더 위대할 수 있는가?
ps2
반 클라이번도 특별한 이름이다. 러시아가 소련이던 시절,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만든 콩쿠르가 차이콥스키 콩쿠르였다.예술마저도 달나라 가듯 경쟁하던 무지한 냉전시대였다.그런데 그렇게 차려놓은 대회에서 첫 우승자가 바로 미국인이었던 반 클라이번이다.그 첫 콩쿠르의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반 클라이선을 선택했고,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도, "그가 최고라면 그렇게 하라."라고 말했다.당시 우승자에 대한 결정은 크렘린궁 보고사항이었다.이것은 '멋진' 선택이었다.이렇게 보면 또, 세상이 늘 그렇게 멋없는 것은 아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