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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소년이 온다 04
-그들의 예술은 사기였다.

위대한 일상을 그리는 시지프, 프로젝트, 소년이 온다.

정대가 누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대목에서,

빨간색 잉크를 파란색 잉크로 갈아 끼웠다.

다시 색깔이 조금씩 탁한 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정대의 시신에 날파리들이 앉는 대목이었다.


한강의 글은,

글자 하나하나를, 작가가 시간을 들여 갈고닦아 내놓은 것 같았다.

마치 작가의 피와 살을 갈아서, 뼈 마디, 마디를 깎아서, 금속활자틀에 철자들을 맞추듯,

문장과 낱말을 맞추어 내놓은 것 같았다.


작가가 그리는 세계가, 그야말로 소설.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점도 놀라웠다.

언젠가부터, 소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이건 작가의 경험이겠지'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한강의 세계는 작가가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놓고, 그곳을 비행하며 날아서, 그 어딘가에서 들었던 이야기의 조각을 맞추어 그 장소를 건립하고 그 장소 안에서 벌어진 사건들 사이를 유영하며 써 내려간 글처럼 느껴졌다. 놀라웠다.

꿈보다 훨씬 잔혹한 생시...

문장하나하나를 이렇게 곱씹기는 토지 이후 처음이었다.


잉크를 갈아 끼울 때마다 생겨내는 미세한 변화가 난 늘 좋았다.

로만 오팔카의 그 유려한 추상 작업도, 핵심은 시간을 적어내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 '존재론적' 어려운 이야기보다 연한 색의 변화가 좋았다. 그 속에 진지한 구도자의 자세는 더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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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의 점도, 그 작은 점안에 미세한 변화가 좋았다. 그리고 그 점하나로 큰 캔버스를 마무리하기까지의 작가의 철학적 과정은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궤적'이었다.

단색추상이 그렇게 아름다운 건, 미세한 변화를 담고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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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단색화와 추상화들은, 그 내용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같은 스타일이 반복되기 시작했고, 찍어내기 시작했다.

별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다르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의 눈엔 그저 비싼 벽지였다.

대가랍시고 떠드는 말들은 대부분 허망한 소리였다.

그래서 내용 없이 형태만 남아 상품이 되어버린 단색화와 깃발 꽂는 유명작가들이 난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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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의 성의 없는 그림은 압권이었다.

'행복 가득한 집'이라는 이름의 잡지에 실린 그 행복한 모습을 보며,

그를 통해, 기성화단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접을 수 있었다.

그가 분명 젊은 시절 '전위적'인 작업을 한 것은 사실이나.

극우문인이 된 이문열처럼, 과거의 젊은 시절의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단색 추상의 형식 속에서,

꿈보다 잔혹한 생시를 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꿈보다 잔혹한 생시가 그토록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 모진 세상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모진세상에서 결국은 걸어가야 한다는 것도..


시월의 마지막날이 이틀 지났다.

이제 다시 삼백 육십 사일이 남았다.



ps

지금 파리 루이뷔통 재단에선 게하르트 리히터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럭셔리의 심장에서 회고전을 여는 화가는 자신의 그림값이 집 한 채라는 사실에,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화가가 자신의 작품가격을 마음대로 통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투기화'된 미술시장에 대한 '문제의식'과 '공정'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자신이 던진 말에 갤러리가 피해 입을 것이 걱정됐는지, 담당자에게 살짝 미안하다고 말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가, 소박했고 '의식'있었다.

'존경할 만한'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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