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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소년이 온다 02
-소년이 온다

위대한 일상을 그리는 시지프 - 프로젝트,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의 이야기는 무거워서 좀처럼 읽기 쉽지 않다는 세간의 이야기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더 놀라웠던 건, 그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현실이 사실 더 놀라웠다.

무서운 것이 싫어서 공포영화조차 보지 않는 내가, 한강의 소설의 무거운 이야기들은 덤덤이 받아들여졌다. 왜일까 되물어 보면,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우리가 걷고 있는 시대가, 오월의 광주의 그림자에서 아직도 여전히 벋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가자에선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총리가 명령한 군병력에 의해 '살해'되고 있다. 오늘까지도 국회에선 '호남엔 불 안 나나'라는 말이 그리고 '흐흐흐'라는 웃음이, 국회의원의 '아가리', ('입'이라고 말하고 싶지가 않다)에서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세월호의 유족들이 들어야 했던 조롱과, 이태원 유가족들이 들어야 했던 모욕이, 아주 오래전 일이 아니지 않은가...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리듯, 광주와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흘린 피덕분에 살아남은, 살아있는 우리네 모습이, 행복하지는 않아도, 분명 감사해야 함은 사실이다. 안타까워도, 나아가야 하고, 충분치 못하면 바꾸어야 하니,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일에도 성심을 다해야 하고,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것은 그의 글을 더 가까이 읽는 것이어서, 그래서 한강의 글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 되기를 구상하면서 받아 적었다.


캔버스와 조각에서, 우리는 미세한 색의 변화를 소재로 한 작업들을 자주 만난다. 서양에선 그것이 미니멀리즘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한국에선 '단색화'라는 하나의 사조로 탄생되기도 했다. 나는 한국의 '단색화', 비싸기도 비싼 그 그림들은, 그냥 '비싼 벽지' 정도로 생각한다. 거기에 아무리 '정신성' 어쩌고 저쩌고 하는 철학적 미사여구로 거들어 본들, 무척이나 공허한 말들인 경우가 많았다. 침묵에 보탬이 되지 않는 말은 하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말처럼, 침묵에, 아니 그림의 침묵에 보탬이 되지 않는 말이 너무 많았다.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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