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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압수수색<내란의 시작>'을 보고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는지 따라

by 도시락 한방현숙

4월 25일(금요일), 영화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을 보았다. 뉴스타파를 후원하는 지인이 보내 준 티켓으로 우연히 보게 된 영화인데, 영화를 본 후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나는 늘 이렇게 한 걸음씩 늦는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부끄러운 웃음이 나를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게 한다.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음악이 예사롭지 않았다. 익숙한 노래인 '아름다운 강산'인데 익히 듣던 음색이 아니다. 아!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ost에 흐르던 목소리! 1970년대 가수 김정미의 목소리에 담겨 '아름다운 강산'이 흐르고 있었다.

콧소리에 뭔가 몽롱한 느낌이 참 매력적이었다. 이러한 음악의 장르를 '사이키델릭'이라고 칭하는데, 김정미는 70년대 '사이키델릭'의 시초라 할 만큼 몽환적인 목소리를 지닌 독보적인 가수였다고 한다. 이 가수를 알아본 이가 신중현이었고, 그 시절 박정희 찬양가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수차례 거절, 고난과 고충을 겪다가 만든 노래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고 하니 신중현과 대를 이어 연주하는 그의 아들 신대철, 그들의 준엄한 마음이 흐르는 듯했다.


영화는 내내 진지했다. 답답하고 심장이 철렁한 순간을 세세하게 담아 우리에게 날카롭게 전달하는 르포르타주(reportage:신문, 방송, 잡지 등에서, 현지로부터의 보고 기사),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다.

정치란 무엇인가?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기자의 저널리즘은 무엇인가? 민주시민의 자질은 어떻게 발휘되는가? 등을 고민하게 한다.

2023년 9월, 검찰은 언론의 자유를 죽이고, 비판언론을 통제하고, 탄압하기 위해 뉴스타파 압수수색을 강행한다. 언론배후에 다른 권력이 있는 것처럼 조작하여 그들의 권력을 지키려 한다. 정치검찰이 탄생시킨 괴물에 빗댄 이를 지켜내기 위해, 그 아내의 주가조작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검찰의 편파수사와 변호사법 위반 의혹을 덮어내기 위해 최정예 경찰 수사 조직과 정치권을 총동원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탄압, 공권력 과시, 민주주의 파괴 등의 징검다리가 되어 결국 우리가 다 겪은 것처럼 12*3 계엄으로 이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용진, 한상진, 봉지욱 등 뉴스타파 기자들의 기개는 어디서 나오는가? 돈의 힘에 흔들리지 않고 올곧은 기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결국 시민, 국민, 우리의 힘이 모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속이 뻔히 보이는 탄압에 굴하지 않고, 압수수색에 끝까지 지조를 지켜내며, 억울한 눈물 뒤에 다시 입을 앙다물 수 있는 것은 모두 정의로 가는 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힘의 연대 덕분일 것이다.


가혹한, 추잡한 압수수색 이후에도 방통위와 관련한 청부민원의혹을 파헤치고, 오늘도 TV에 등장한 이의 게이트를 집중 수사취재하고, 정치적 비리의 본질을 추적하며 언론의 역할을 꿋꿋하게 수행하는 기자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묵직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감과 정의감이 번갈아 차 올랐다.


뉴스타파를 후원하지도, 뉴스타파 기사에 대해 매우 잘 알지도, 광장으로 힘을 내 나가지도 못한 나는 잠깐이지만 생각이 겉돌았다. 일상의 소중함을, 민주시민의 역할을, 적극적인 정의실현의 중요함을 누구보다 피력하면서도 소극적이었던 나의 표현과 행동을 돌아보았다.


매주 추위에 떨며 광화문에 나갔던 막내딸, 사계절이 바뀌는 내내 집회현장에 가기 위해 인천에서 지하철을 탔던 60대 후반의 선배님, 현장에서 먹거리를 돌리고 후원금으로 용기와 행동을 함께 한 친구, 대학생 때 읽은 '자유론'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는 또 다른 친구 등의 얼굴들이 차례로 오버랩되었다.


무엇을 보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를 가는지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방향은 달라진다. 이 다큐 영화를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건강하고 올곧은 생각, 이로운 영향, 균형 있는 통찰력을 키워 오늘도 성장하는 하루를 맞이하면 좋겠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뉴스타파 장광연 PD의 진행으로 주요 등장인물인 봉지욱 기자와의 간담회가 있었다. 중간쯤 민주당 박선원 국회의원도 모습을 드러내 영화와 더불어 세상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그들과 함께 한숨을 내쉬고, 같이 공감하며 웃고,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걱정하기도 하며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사실 나는 오늘 처음 알게 된 이들이 더 많았다.


몰랐던 이야기를 들으며 순간 민주주의가 조금이라도 흔들렸다면 무관심한 내 탓인 양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놓고 정치와 언론에 무관심한 이가 누가 있으며, 정치와 사회구조를 떠나 제대로 살 수 있는 이가 누가 있으랴만 소극적인 행동으로 안일함을 추구한 때가 부끄럽게 느껴지는 자리였다.


절대 굴복할 수 없다는 그들, 파면한 자에게 명예가 어디 있으며,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이 어찌 성립할 수 있냐며 따져 묻는 그들의 마음이 곧 우리의 마음이었다. 다른 기자들 앞에서 조금의 타협 없이 엄한 목소리로 취재의 올곧음을 설파하는 그들이 믿음직스러웠다. 언론의 자유를 '압수수색'이라는 명목으로 훼손했는데도 다른 언론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넘어갔기에 결국 불법계엄, 내란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을 명백하게 집고 넘어갔다.


비판 언론을 탄압하고 억누르려는 행동이 어찌 일어날 수 있으며 또한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일부 정치인들이 아직도 '사형'이라는 단어까지 운운하며 뉴스타파 같은 언론을 장악하려는 모습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몇 십 년 뒤로 퇴행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언론사나 기자의 집까지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는 모습은 공포스러우면서도 코미디 같은 모습이었다. 봉지욱 기자는 직접 당한 일들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가족들 앞에서 압수수색을 당하고, 출국 금지로 발이 묶이고, 검찰에 불려 가 혹독한 조사를 견디며 겪은 심한 모욕과 상처를 드러낼 때 마음이 함께 떨렸다.


그러함에도 그들은 우뚝 섰다. 그들의 신념을 지켜냈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늘 제모습대로 빛나야 한다. 아무리 국민 위에 군림하며 그들의 권력을 키워 멋대로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려 해도 절대 그럴 수 없음을 이제는 확고히 가르쳐야 한다. 국민의 이름으로, 시민의 의지로!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철렁한 그날이었고, 이후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추운 겨울을 지나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파면의 인용을 기다린 지 오랜 시간, 그리고 다행히, 당연하게 봄을 맞이했다. 그러나 아직도 고개도 못 들던 패거리들이 정신을 잃고 설쳐대는 일이 연일 벌어지니 아직 걱정은 태산이다. 그러함에도 역사의 흐름은 제대로 흐를 것이다. 우리의 믿음대로 우리는 그리 행동할 것이고 국민의 진정한 목소리가 울릴 것이다.


우연히 보게 된 다큐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많다. 안다고 여겼던 일들을 더 자세하게,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의 무게를 새삼 무겁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요즘 세상에 가장 되기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민주시민'이 되는 거라고! 눈 똑바로 뜨고, 귀 바르게 열고, 올곧은 목소리로 내며 인간답게 살고 있는지, 그렇게 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지, 함께 연대하며 더불어 가고 있는지 늘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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