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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아이들과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오다.

대학로에서 뮤지컬 아몬드 공연을 보며!

by 도시락 한방현숙

지난 12월 4일 저녁 전국적으로 첫눈이 내렸다. 저녁 7시쯤, 흩뿌리는 눈보라를 맞으며 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늘 낮부터 이 눈이 내렸다면, 생각만으로 마음이 조마조마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2학년 전교생(260 여 명)을 데리고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온 날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도 긴장이 되었는데, 이렇게 낮에 눈까지 내렸다면 그 걱정이 태산처럼 늘어났을 것이다.


오늘의 현장체험학습을 진행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분주했다. 늘 있는 학교 행사 중 하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수많은 업무(학운위 계획서 작성-학운위심의통과-가정통신문발송-참여의사조사-계획서작성-예산신청품의-세부계획서작성-사전답사와 보고서 작성-학년협의회개최-주차협조공문발송 등등)를 병행해야 한다.

공연과 버스 대여를 계약하는 일은 물론 당일 음주측정기를 챙겨 운전기사의 음주여부를 확인하고, 구급약품을 챙기고, 아이들에게 줄 간식 수백 개를 일일이 버스로 옮기는 등 업무는 계속 이어진다.


현장체험학습 운영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의 안전이기에 날씨, 먹거리, 버스 등등 모든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교사와 아이들이 질서를 지키고 한마음으로 안전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기온이 떨어지고 눈 예보까지 있으니 일주일 내내 안전에 관한 전체 방송(개인행동 절대 금지, 교통질서준수, 슬리퍼착용금지, 안전벨트착용의무, 계단에서 뛰기 금지 등등)을 수시로 할 수밖에 없었다. 공연장이 지하 4층이니 계단을 이용하다 미끄러질까 봐, 협소한 공간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라도 발생하까 봐 교장선생님 또한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다. 학년뿐만 아니라 각 반 담임교사 또한 안전지도 내용을 목청껏 외쳐 되풀이해 왔다.


사실 지난 11월 현장체험학습 사고 관련 인솔 교사에게 형사 책임이 부과된 판결은 아직도 충격적이다. 교사의 과중한 책임 구조 개선은 물론이고 교사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안전한 교육 환경 구축도 못한 채 오로지 교사가 홀로 그 책임을 져야 하는 현장체험학습운영! 어느 교사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체험학습을 적극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는가! 그 과도한 위험과 불안에 우리 교사는 당연히 움츠려들 수밖에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학생의 교육적 경험의 소중함을 알기에 현장체험학습을 떠난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된 현 교육 현장과 현실이 진정 유감이다.


현장체험학습 장소는 대학로 소극장이었다. 우리가 관람할 공연은 뮤지컬 '아몬드'이다. 마침 다음 국어시간에 배울 단원이 소설 '완득이'를 재구성한 뮤지컬 대본이기에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과 연계 수업자료가 되었다. 원작이 청소년의 성장을 다룬 내용으로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제격이었다.

인천에서 일찍 출발한 버스는 10시에 우리를 마로니에 공원에 내려주었다. 햇빛이 가득한 주말이었다면 대학로와 마로니에 공원의 풍경, 버스킹, 길거리 마술 공연, 건축물, 축제 등을 더 체험할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몰아친 한파가 정말 아쉬웠다.


삼삼오오 모둠을 지어 체험 시간을 가진 후 공연장에 12시까지 모였다. 우리 학교만을 위한 특별공연으로 공연관람비는 중2에게 지급되는 체험학습비 예산에서 지원되었다. 260여 명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입장시켜 객석에 앉히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다행히 대부분의 아이들이 질서를 지키며 잘 따라주었다. 놀이공원을 선호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아이들에게 공연 문화를 체험할 시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모두 착석한 후 나도 자리에 앉았다. 읽은 지 수년이 흐른 소설 '아몬드'의 내용이 가물거렸다. 윤재와 곤이, 결핍과 한계, 사랑과 인정 그리고 작가 손원평! 이 소설이 뮤지컬로 어떻게 재구성되어 그 감동과 의미를 전달할 것인지 꽤 기대가 되었다. 무대는 다채롭게 변화하고, 등장 배우들의 연기과 노래 실력은 빛났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기에 저리 감정을 잘 이입시켜 우리를 빠져들게 하는가! 표정 하나하나, 노래와 대사 마디마디가 정말 대단했다. 혼신의 힘을 기울인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관람하는 아이들의 표정도 시시각각 달라졌다.


윤재와 곤이, 결국 사랑과 인정, 결핍에 대한 이야기이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육체적 한계에 처한 윤재가 끝까지 굳건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과 인정 덕분이었다. 교수 아버지를 둔 곤이의 좌절과 방황도 결국 애정과 인정을 받지 못한 곤이의 결핍이 문제였던 것이다.


아이들의 몰입도가 곤이의 등장부터 눈에 띄게 높아졌다. 윤재가 곤이를 구하려다 칼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나오더니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옆에 앉은 아이는 계속 눈물을 훔치며 훌쩍거렸다. 어느새 나도 뮤지컬에 스며들어 눈물을 닦고 있었다.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 친구의 믿음,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 아버지의 포근함 등이 우리를 감싸며 위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6살 크리스마스에 축복은커녕 참혹한 아픔을 당한 윤재,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부모마저 내치는 곤이는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나갈까? 세상이 온통 욕설과 비웃음과 일탈로 가득한 곤이,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과 무표정, 이해할 수 없는 외로움에 갇힌 윤재는 어찌 이 결핍을 채울 수 있을까?!


배우의 열정적인 연기와 아름다운 목소리가 윤재, 곤이, 도라로 살아나 그들의 고민과 좌절을, 희망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처지를 대입시키며 윤재가 되었다가, 곧 도라와 곤이가 되었다가를 반복하며 뮤지컬 속으로 빠져들었다.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하여 장장 2시간 30분짜리 긴 공연을 무사히 관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학교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스페셜 무대에서 인천성리중을 언급하며 아이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한 배우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우리는 힘껏 박수를 치며 그들에게 환호를 보냈다.


관람을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재잘재잘 뮤지컬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윤재와 곤이에 대해, 노래와 가사에 대해, 뮤지컬 장면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버스 안이지만 아이들 세상 속으로 온전히 들어간 듯한 시간이었다.

인천에 도착 후 아이들의 안전한 귀가까지 확인하니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졌다. 현장체험학습의 대장정을 아무 탈 없이 마무리하며 무사히 하루를 보낸 것에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단체 활동 후 모든 이의 요구나 만족을 일일이 채울 수 없는 일이나 대체로 보람 있는 하루였다고 자평한다. 아이들에게 공연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15살 청소년기에 자신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고민을 할 수 있도록, 친구들과 협업하며 조화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단체 활동에서 질서를 지키기 위해 절제와 멈춤을 배울 수 있도록 마련한 좋은 체험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다음날, 수업 시간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후기를 들으니 보람이 더 크게 느껴졌다.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 속에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담아 성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앞으로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많아진 듯해서 뿌듯하다. 아이들 기억 속에도 좋은 추억거리로 남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런 현장체험학습을 안전하게, 불안하지 않게 교사가 운영할 수 있도록 현장체험학습 운영 제도의 개선과 사고 발생 시 법적, 사회적 책임이 오로지 교사에게 집중되는 현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학생의 교육적 경험을 위한 활동 자체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려니 교육 현실이 참 아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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