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한 단층집이 나를 대변하는 것 같을 때

by 클레어

모임에서 한 번 봤던 언니가 아이가 입던 옷을 물려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근처에 올 일이 있으니 직접 가져다주겠다고.

“그 동네 구경도 하고 싶고.” 하고 언니는 말했다.

“언니가 좋아하는 그 동네는 우리 옆동네인데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말하는 그 동네가 우리 동네 옆 부촌을 의미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도 언니가 오질 않아 궁금해하고 있는데, 남편이 밖으로 나가다 말고 큰 종이백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언니가 가져온다던 옷들이었다. 문자를 보냈더니 아이가 자는 것 같아서 조용히 두고 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창문을 모두 열어두고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생각에 생각이 이어지다 문득, 언니가 우리 집을 보고 내게 인사하지 않기로 결정했구나, 나는 지금 무시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결론에 닿은 것에는 그 언니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분명 영향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내게 남긴 인상 같은 것들. 무언가를 보고 들을 때 잠깐씩 스치던 표정이나 별 것 아닌 듯 툭툭 던진 말들. 무엇보다 그 언니가 “한국 사람”인 것도.

처음으로 내가 다른 한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판단되고 분류되고 있는지를 의식하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계속 신경이 쓰이긴 했다. 여기 한국 유치원 엄마들은 다른 엄마들의 차를 먼저 살피고 급을 나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바득바득 가격을 깎으며 중고거래를 하던 한국인 임산부가 제네시스 SUV를 타고 왔을 때, 누군가의 집에 놀러 가게 되면 앞마당과 정원, 집의 크기와 자재를 살피고, 그 집의 가치를 슬쩍 검색해 보게 될 때.


집을 산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의 내 지위의 기준점을 긋는 일이다.


급하게 살 집을 찾고, 오퍼를 넣고, 계약을 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의 첫 집을 산다는 사실에 마냥 들떠있었기 때문이다. 새 집의 허니문 시기가 지나가고, 일상에 내 집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때부터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작고 허름해 보이는 우리 집, 옆 부자 동네와 다른 우리 동네, 더 좋은 학군의 더 좋은 집에서 사는 다른 한국인들. 나는 이렇게 눈치를 보면서, 비교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열등감을 키우고 있었다.


열등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어 나왔다. 나는 집 이야기가 나오면 꼭 장황하게 우리가 이 집을 살 때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나빴는지를 설명했다.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 첫째 아이는 벌써부터 자기도 이층 집에서 살고 싶다 했고, 나는 어린아이들을 생각해서 단층집을 골랐으면서도 괜히 아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그냥 불평을 시작했다. 그래도 네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이냐는 위안을 들어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러다 친한 언니가 “네가 네 집에 열등감이 있어서 그래”라고 말했고, 나는 그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그때서야 이 미묘한 불만족의 정체를 처음 깨달았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현실감이 없고 책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컸다. 돈은 속물적인 것이고, 돈에 크게 욕심이 없는 나의 초연함이 나의 우월함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지지리도 가난할 때의 나와 우리 부모님을 구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학자의 꿈을 꾸다 포기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돈에 대한 나의 관점이 크게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구가 커지면서, 돈이 내 삶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이 집이 나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잔디가 다 죽어 흙빛인 앞마당은 내 옷차림인 것 같았고, 집의 부동산 가치가 나의 사회적 가치인 것 같은 기분. 집은 내가 골랐을 때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 없는데 집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지레 나의 열등감을 키워서 집에 뒤집어 씌우고 있었다.


내 열등감을 마주하게 되자 내가 바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여유 있게 되길 원한다.

이전까지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지를 생각해 왔다. 내가 사회에서 실현하는 어떤 역할 같은 것. 그런데 이제는 그것뿐이 아니다. 내가 영위하는 일상의 질과 경제적 지위도 함께 꿈꾼다. 더 큰 집, 아름다운 정원, 단정하고 질 좋은 옷과 물건들, 아이들에게 주어질 경험과 기회.

열등감에서 나의 욕구를 발견하자,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내 집은 다시 시작점으로의 권위를 되찾았다. 우리의 첫 집에서, 나는 집을 관리하고 꾸미는 연습을 할 것이다. 조그마한 나의 아이들은 이 집의 여기저기에서 뛰어 놀 것이다. 이사 온 첫 해 앞마당에 심은 나무는 조금씩 키가 커질 것이고, 우리는 열심히 우리의 자본을 키워나갈 것이다. 집은 점점 더 안락하고 아름다워질 것이고, 그러면 5년 후 우리는 새로운 집으로 떠날 것이다.


내 마음을 제대로 읽고 나니 열등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의욕이 생겼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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