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와 프랜시스, 무너진 세계

하우스 오브 카즈 House of Cards

by 클레어
출처: Netflix House of Cards 공식 포스터


몇 년 전, 하우스 오브 카즈 시즌 1을 보고 완전히 매료되었었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시청자에게 말을 거는 프랜시스 언더우드를 보고 셰익스피어 오델로의 이아고가 떠올라 전율했고, 우아하고 이지적이면서도 잔인하고 계산적인 클레어에게는 묘한 동경을 품었다.


시즌 4까지 몰아보다가, 다른 드라마에 빠져 다음 시즌을 미루던 중이었다. 케빈 스페이시의 성추문이 터졌고, 그는 갑작스레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죄의 유무를 떠나, 그런 논란이 생길 만한 사생활을 가졌다는 사실에 실망했고, 좋아했던 배우였기에 배신감도 컸다. 자연스럽게 남은 시즌은 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그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문득 이 드라마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부터 시즌 1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프랜시스의 기민한 악덕과 클레어의 우아한 무자비함은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그들에 대한 경멸감과 혐오가 커졌다. 권력에 대한 추악한 욕망이 점점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반복되는 협박과 계략들에 지쳐갔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보았다. 결국 그들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면서.




시즌 5가 클레어를 죽이겠다는 프랜시스의 다짐으로 끝을 맺더니, 시즌 6은 이미 프랜시스가 죽고 난 이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연 배우의 하차라는 현실을 알고 있었기에 납득하려 애썼지만, 결과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시즌이었다.


그간 정교하게 조각해 온 클레어라는 인물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권력에 눈먼 악인으로 전락했고, 프랜시스와의 미묘한 균형은 단순한 남녀 대립 구도로 축소되었다. 그들 사이의 성적 긴장감조차 프랜시스의 성적 불능이라는 설정으로 희화화됐다. 백인 남성의 권력을 해체하려는 시도였을지 모르지만, 정작 프랜시스를 무너뜨리자 클레어도 함께 붕괴해 버렸다.

그녀의 권력은 오직 ‘여성’이라는 정체성만으로 정당화되었다. 여성 시청자들이 여성 대통령과 여성 내각을 보며 환호할 줄 알았던 걸까? 클레어가 여성으로만 구성된 내각을 자랑스럽게 소개할 때는 웃음이 터졌다. 작가들이 이토록 단순할 리 없다. 오히려 노골적인 여성혐오로 느껴졌다.


결국 클레어는 자신의 주적들을 근거 없는 혐의로 몰아세우고,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다 죽여버리는 인물로 그려졌다. 마지막 시즌의 국제정세나 정치적 전개는 이해할 필요조차 없는 혼란 그 자체였다.


불가피한 설정 변화 속에서도, 이렇게 자폭하듯 끝내버릴 줄은 몰랐다. 왕좌의 게임이 최악의 결말이라 생각했는데, 그조차도 이 피날레에 비하면 양반이다.




혹시 지금, 하우스 오브 카즈를 볼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말리고 싶다. 중간까지만 보고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즌 4까지만 보라고 권하겠다. 하지만 나처럼 한 번 시작한 이야기는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시즌 초반이 주는 쾌감과 흥분보다, 후반부가 안겨주는 스트레스와 실망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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