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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엄마의기록

부모는 안전망이지 그물망이 아니야

by 우리의 결혼생활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실감 나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자기만의 의지와 뜻이 생기고, 말로 그것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엄마와 아이의 심리적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사랑스럽고 어리고 미약한 우리 아이는 제 뜻이 세상의 질서를 주무르는 듯 의기양양했다.


한겨울에 슬리퍼 패션을 고집하거나, 한여름에 겨울용 오리털 패딩을 입고 유치원에 등원했다. 때로는 말도 안 되게 많은 어린이용 헤어핀 한 통을 모두 머리 위에 달고 나가기도 했고, 어느 날은 발레 학원에서 입는 유아 발레복을 입고 종일 거리를 활보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는 집안으로 끌고 가겠다며 드러눕기도 했다.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들이 펼쳐지는 엄마의 하루는 일상에서 크게 벗어난 흐름이었다. 웃고 있지만 울고 싶었던 시간도 있었고, 울고 싶었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 더 많았다.


아이들의 행동이나 생활양식, 그리고 놀이에서 종종 등장하는 다양한 상상력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지만, 일상의 행동 패턴을 갖고 있다. 엄마와의 소통에서 보이는 정서적 반응이 놀이의 일부가 되고, 그대로 투사된다.


화를 내거나 웃거나, 행복하거나 불안하거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쌓아온 모든 시간과 사건들이 경험이며 놀이이고 학습이 된다.


만약 양육자가 늘 긍정만 하거나 수용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어느새 부모의 머리 꼭대기를 점령하고는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만 세 살부터는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그리고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워야 할 적기가 된다. 자신의 안전과 타인에 대한 예의범절이라는 규칙을 익혀야 하는 시기다.


사회성을 키우는 데에는 가족 관계, 특히 엄마 또는 주 양육자와의 관계 형성이 가장 중요한 시작이 된다.


우리 집의 엄격한 규칙 중 하나는 식사 예절, 일명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어른이 수저를 먼저 드는 것,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식후에 “잘 먹었습니다”라는 감사 인사. 이 정도의 규칙에서 시작했고, 아이들은 여기서 처음으로 인내와 감사를 배웠다.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는 것은 동물은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감사 인사는 겸손을 배우는 첫걸음이 되기에, 아이들의 사고방식을 깨우치는 강력한 방법이 된다.


아이들에게 한없이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안전에 위협이 되거나, 인간관계에서 동떨어진 언어 습관, 또는 매너를 잘 배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실적으로 학교생활, 친구 관계, 사회생활에서 고독을 먼저 배우게 될 수 있다.


나는 현재 학교폭력전담위원회 학부모 위원이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에 다니는 세 자녀를 키우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과 일들이 있다. 학부모회 회장, 운영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학교 시스템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지금의 아이들은 “안 돼!“라는 말을 잔소리 혹은 불편한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훈련’이 필요한데, 그 훈련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생길 때가 나도 가장 힘든 순간이다. 모두가 규칙을 규칙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문제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기보다 과잉보호 혹은 법적 대응으로 감정적 소모를 부추기는 모습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부모의 역할은 안전망이지 그물망이 아니다.**


안전망은 아이가 떨어질 때 받쳐준다. 하지만 그물망은 아이를 옭아매고 스스로 날지 못하게 만든다.


때때로 안전을 위해 나서되, 교육과 훈련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면서 각자의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 이처럼 크고 작은 일상을 가르쳐주는 것이 진정으로 유익하다는 생각이다.


세 살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우리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주 양육자로서 가르치고 애썼던 부분들이 그들의 생활 가운데 조금씩 드러난다. 십 대 후반까지 차곡차곡 쌓여온 인성과 정체성이 엄마인 내 눈에는 너무나 잘 보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아는 일명 *스톱(Stop) 법’이 정말 유용하다는 점에서 잘 따라와준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대부분의 문제는 하지 않아서보다 멈추지 않아서 오기 때문이다.


아직 앞으로 부모로서 본이 되어 보여주고, 가르치고, 채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노력을 반추할 때, 세 살부터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 효력이 생기고 있음을 느낀다.


양육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그리고 그 긴 여정 속에서, 부모는 아이를 가두는 그물이 아니라 떨어질 때 받쳐주는 안전망이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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