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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Sep 15. 2024

어? 내가 간병인이라고? (中)

어머니의 몰락...


어머니는 아버지의 간염의 간병을 하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보면 어머니의 병이 그때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 병을 키우는 성격이라 지금 와서 보면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원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 간병으로 인하여 급속도로 진행된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처음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하는 기간에는 어머니가 크게 힘들어 하시지 않았다.

그때는 소위 아버지가 알아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기였기에 어머니의 부담은 그리 크지 않았다.


병원에 가는 것부터 집에서 생활하는 모든 것까지 아버지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본인의 일에 대해서는 어머니 도움없이 척척 해나갔던 것이었다.


하지만, 간염 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랐다.

일단 시작은 먹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식욕은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그때부터 어버지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수시로 만들어야 하는 고난을 경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고난은 아버지가 복수로 점차 움직임까지 힘들어짐에 따라 점점 어머니에게 커져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병환이 점점 심해지면서 운전이 더이상 가능한 일이 아닐 지경까지 이르자 어머니의 수준을 넘어섰고, 결국 내가 아버지가 다니는 병원 근처로 집을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이사 한 그곳에서의 나의 생활은, 운전을 전혀 하지 못하는 어머니로 인하여 난 아버지 병원 날짜 전날 내 차를 타고 아버지 집으로 온 다음 그곳에서 하루 잔 뒤 아버지 차를 몰고 다시 병원으로 와서 진료를 보고, 내 집에서 하루 자고 나서 다음날 부모님 집으로 내려가는 그런 패턴이 되었던 것이었다.


처음부터 부모님 집 근처로 이사를 가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으나, 병원 근처로 집을 잡은 결정적인 요소는 아버지가 진료 및 치료 후에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집으로 바로 오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결국 그곳에서 하루 쉬어야 하는데, 모텔 같은 곳을 잡느니 내가 그곳에 집을 잡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생활이 금방 끝날 거라 생각해서 월세로 잡고 살았었다.

하지만, 병은 아버지를 쉽게 놔주지 않았고, 결국 난 그곳에서 투룸에서 빌라로 이사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는 생활을 극도로 꺼려 하셨는데, 심지어는 의사가 반드시 입원해야 한다고 하는데도 아들 집이 근처니 집에서 있다가 외래로 진료를 받겠다고 하실 정도였기에 투룸 같은 곳에서 지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버지의 고집을 부릴 수 있는 체력이 있었을 때 이야기 였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는 더 약해지셨고, 결국 장기 입원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어머니는 간병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간병인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머니의 건강은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할까?

자신의 재산이 남아 있는 세월 동안 빠듯하게 살면 겨우 살아지는 정도인데, 큰 일이 생겨 돈을 갑자기 많이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긴 거라고 하면 비슷하게 표현한 심정이었다.


근근히 자신의 몸의 생명력을 빨아 먹고 있는 사람이 더 상황으로 인하여 남아있는 체력을 당겨 쓰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몸에서는 극한에 도착했다는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아버지 간병을 나와 어머니, 간병인, 이렇게 세 명이서 돌아가면서 한달이든 일주일이든 하자고 몇 번이나 말했으나, 그 의견은 어머니로 인하여 완전히 묵살 되었다.



어머니는 원래 고집이 강하신 분이다.

누구도 꺽을 수 없는 고집이다. 

심지어 자신의 고집을 꺽어야 되는 상황을 만든 사람과 다시는 만나지 않을지 언정 자신의 고집을 굽히는 분이 아니었다.


나중에 또언급하겠지만, 이 고집으로 인하여 어머니는 모든 재산과 건강, 사람을 잃었고, 지금은 자신의 병의 완쾌에도 큰 방해를 받고 있어도 지금도 여전하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걸 계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렇게 어머니의 고집으로 계속된 간병은 끊임없이 어머니를 망가뜨렸고,

당시에는 오른쪽 팔과 오른쪽 무릎을 거의 쓸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어머니를 고생시키다 돌아가셨다.


다행히 내가 가까이 있어 아버지의 장례식은 무리없이 치를 수 있었고, 아버지의 주변을 신속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완전히 끝나자마자 어머니와 관련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40년 동안 살았던 부모님의 집을 도배하고 화장실 리모델링을 하는 등 집을 수리 하였고,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지만, 어머니에게 말을 꺼내기 힘들었던 부분, 즉 머리 사진을 찍어보자는 말을 꺼냈고, 처음에는 반대하던 어머니 역시 본인의 머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뒤로 결국 동의 하셨고, 그제서야 난 어머니를 모시고 신경과를 갈 수 있었다.




"치매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초기입니다."


그나마 다행?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아니지 어쩌면... 예상했던 것 아니었나?


몇 가지 검사 끝에 의사의 진단에 난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내 스스로 별로 놀라지 않은 것에 대해서 놀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정도로 침착했다.


어머니는 꽤 오래전부터 기억에 문제가 있었고,

어머니는 고집을 부리시다 본인도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내 뜻에 동의한 것이기에 이같은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수 있었다.


그래도 초기라는 말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약을 잘 먹고 좋은 교육을 받으면 천천히 진행될 것이고, 어머니의 연세를 고려하면 그렇게 10년을 지낸다고 해도 거의 90에 가까워지고, 거기에 내가 같이 있으니 살아가는데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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