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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Jun 02. 2023

다시 달려볼까 합니다. (2)

2  

   

연일 비가 왔다. 마른 땅에 보상이라도 하듯 시원하게 퍼붓는 장마철의 비가 아닌 사람들의 활발한 움직임에 질투라도 느껴, 집안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으라고 말하며 심술이라도 부리듯 세찬 비를 뿌려 놓고 이후 며칠동안도 화선지에 먹물이 번져가듯 하늘을 흘리게 만든 구름들은 여러차례 기분 나쁜 비를 뿌리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화답이라고 하듯이 집 안에서 거의 움직임을 포기하고 커피와 책으로만 지내오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책을 보다 ‘오늘도 비가 올려나?’ 하고 갑자기 든 생각에 밖을 내다보고 구름과 비를 감상하고 있던 중, 갑자기 ‘한 번 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내 가슴속을 가볍게 비집고 들어왔다.     

 

“응? 달린다고? 내가?”     


믿을 수 없는 내 가슴의 제안에 좀 당황했다. 좀처럼, 아니 한번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달리는 게 어때?’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제안하는 가슴 속마음이 날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아마 이건 며칠 전에 읽었던 책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며칠 전에 읽었던 달리기에 대한 소설을 한 편 봤었던 기억을 해냈다. 물론 그때는 그 정신나간 소리에 혀를 차며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하며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었지만, 아마 내 가슴은 어지간하게 쉽게 넘기지 못하고 어느 정도 뜯겨진 자락의 한 끝을 잡고 있었던 거 같다.     


사람은 호르몬에 좌우되는 동물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고, 내 몸에서 이상한 긍정적인 반응이 오고 나니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뭐 날씨 좋아지면 한번 달려보지.’라는 생각으로 어느 선상에서 내 가슴과 타협을 맺었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듯 싶다.     


결국 달리겠다는 확답을 하고 나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고, 결국 말이 나왔으니 달릴 준비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록 타인에 의해서였지만, 나름 잘 달렸고, 그런 수준이 있는데, 별다른 준비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볍게 준비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몇 가지 닥친 문제만 해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단 뛰는 장소의 선정이었다. 집 근처에 공원이 있고 그곳에 트랙이 있다는 생각을 해냈다. 그런데 트랙에서는 뛰는 건 죽기보다 싫었고, 차라리 안뛰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된다.’라고 생각하며 뛸 장소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머리도 눈치를 챘는지 평소에는 잘 움직이지도 않던 것이 갑자기 머리가 핑핑 도는 것이 느껴졌고, 온갖 생각들이 다 나오는 것이었다.      


‘아씨... 평소에도 이렇게 좀 돌지.’      


이러한 원망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별 아이디어를 뿜어내는 머릿속의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서 컴퓨터를 켜고 지도를 보면서 달리기 거리를 측정하였고, 여러 가지 머릿속 안건들 중에서 강을 타고 달리는 코스가 제일 괜찮을 것 같았다. 지도상으로 약 4km 정도 되는데 2바퀴 뛰면 8km고 실제로 뛰면 약 9~10km 정도는 되어 보였다. 달리기 코스로는 아주 이상적이었다.      


게다가 옆에 주차장도 있고, 차를 주차한 곳이 어머니 집으로 가는 방향이라 달리고 나서 어머니집에 가서 씻고 거기서 같이 시간도 보내면 되겠다는 계산이 나오자 더이상 알아볼 것이 없었다.   

   

그렇게 달리는 코스를 정하고 나서, 달리는데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 보니 별다르게 필요한 것이 없었다. 새로 산 반바지 체육복과 기능성 티는 있고, 신발도 워킹화를 새로 샀으니 그거 신고 달리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달리는 건데 새 신발을 신고 싶었다.(그게 나중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고 뛰기는 좀 불편할 것 같아서 예전에 썼던 암밴드를 구매할려고 봤더니 요즘은 허리에 차는 작고 가늘고 긴 가방이 있는 것이었다. (가늘고 길다는 표현이 정확함.) 그래서 그것도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배송시간은 크게 문제 없었다. 하루 이틀 정도는 불편해도 손으로 들고 뛰면 되니깐.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온몸에 기존부터 중독되어 있는 카페인을 조금이라도 용량이 부족해졌을까봐 다시 채우기 위해 커피를 새로 내린 후 거실로 가서 밖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진짜 달리게?’      


내 머릿속이 물었다. 아마도 가슴 때문에 떠밀려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기는 했지만, 막상 뛰려고 하니 과거의 기억과 불안함에 그도 불편했던 거 같다.      


‘응 한번 달려 볼려고...’     


내가 대답했다. 어지간해서는 표현하지도 않는 가슴이 정말 오랜만에 자신의 의견을 말했는데, 난 그것을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이제까지 가슴이 하는 말을 들었을 때 크게 실수하거나 틀린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드니 더더욱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오히려 가슴의 말을 듣지 않아서 곤란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해진 경우는 많았다.)     


지금은 가슴이 조용하다. 이놈은 참 어지간해서는 표현을 안한다 라는 생각을 하며 또 커피를 마셔 몸에 가득한 카페인을 또다시 충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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