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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착 Oct 01. 2019

오늘의 메뉴는 고등어구이

아침형 강구구의 브랙퍼스트

어제 캐나다에 있는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역시 우리처럼 결혼 이후 영주권을 목표로 캐나다로 넘어간 부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 시간 정도 통화를 하다 보니 정말 즐거웠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니까 정말 편하고 스트레스가 풀렸다. 대화 도중 우리 부부랑 비슷한 점이 있어서 정말 깔깔 웃었는데, 음식에 관한 갈등이었다. 친구 부부 중 H는 음식에 관심이 많고 L은 아니다. 그런데 L은 요리를 잘하고 H는 좀 서툴러서, H가 이번 주 내내 닭갈비를 해달라고 조른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비슷하게 강구구가 먹방이나 맛집에 관심도 많고 먹는 것도 좋아하고 요리를 잘하고, 최착착은 요리를 못하고 음식에 관심도 없다. 다행히 우리는 음식에 관심이 있는 강구구가 요리를 잘해서 그런 갈등을 피해 갈 수 있었는데, 여기 와서 음식에 관심이 없는 최착착이 주 요리 담당자가 되면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위태로운 시간들이 있었다.

한국식 통에 분류된 밑반찬 이미지

*Unsplash의 Kim Daechul 작가의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

출처 링크: https://unsplash.com/photos/NOAzwcMzZJA


나(최착착)는 그냥 그래놀라에 뮤즐리에 아몬드 밀크에 견과류에 바나나를 넣고 풍성한 한 끼를 아침으로 먹는 걸 좋아한다. 간편하기도 하고 건강하기도 하고 맵고 짠 한국 음식보다 위에 부담도 없다! 그런데 강구구는 무조건 언제나 예외 없이 밥과 국을 원한다. 문제는 내가 요리에 서툴다는 점이다. 나도 함께 먹을 식사를 준비할 때는 강구구의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하는데, 손이 느리고 서툴다 보니까 오래 걸리고 그런 한국식 요리를 하면 설거지거리도 왕창 쌓인다. 집안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헤비 듀티가 생기면 마음이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기에, 때때로 내가 별로 먹지도 않을 이 요리를 하기 위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에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또한, 강구구가 생각할 때는 '라면 끓이는 게 뭐가 힘들어.' 할지 몰라도, 내 입장에서는 대충 빵 튀겨먹거나 샐러드에 드레싱 뿌려먹거나 그래놀라 말아먹는 것보다 당연히 힘들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도 강구구 입장에서는 늘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때때로 내 나름대로는 요 며칠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으니 좀 쉬고 싶어도, 강구구 입장에서는 내내 요리다운 요리도 별로 해주지도 않았으면서, 고작 이거 하나 해달라고 했는데 한숨 쉬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강구구씨는 집에서 직접 일상적으로 닭백숙, 닭볶음탕, 갈비찜, 수육 등을 해 먹는 스케일이시다. 한국 스타일로 마음먹고 준비해도 참치김치찌개, 달걀프라이 정도 하는 나에게는 넘사벽의 스케일.)


채소, 토마토 등이 올라간 피자 이미지

*Unsplash의  Brenan Greene 작가의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

출처 링크: https://unsplash.com/photos/HPZs4EXRFSU


맛있는 요리를 해서 나도 만족스럽다면 맛있게 만들어 먹을 텐데, 나는 좋아하지 않는 국물 요리나 한국식 고기 요리를 해야 하니까 요리에 재미가 붙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요즘 비건을 지향하면서 고기 요리나 국물 요리에 더욱 관심을 끊었다. 그래도 가끔 '맛있는 음식'이 그리울 때는 있다. 나는 한국에서 약 10년 동안 홍대-신촌에 늘 살았기에 손만 까딱하면 '맛있는' 음식을 배달할 수 있었다. 치킨,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아도 뭐 떡볶이나 김치볶음밥을 시켜먹을 수 있었고, 괜찮은 집을 찾으면 팟타이나 초밥까지도 배달해서 먹었다. 여기는 전혀 다르다. 배달비가 비싸서 직접 사 와야 하는 것은 물론, 일단 맛있는 음식이 별로 없다. 나가서 비싼 돈을 준다고 해도 맛이 없기에 그 맛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서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외식을 피하게 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뉴질랜드에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바깥 음식이 있다면 단연 피자라고 할 수 있다! 피자는 맛있고 건강하고 간편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매주 토요일을 기다린다. 뉴질랜드 우리 가족은 요즘 매주 토요일에 피자를 먹는 전통을 만드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이번 주는 우리가 소비 예산을 초과해서 피자를 먹을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의 매일 그래놀라만 먹다가 나름 기대하는 이벤트여서 나는 어제부터 상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닭갈비를 만들어먹는다는 캐나다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상심이 커졌다(ㅠㅠ)!. (닭갈비가 그렇게 먹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피자를 원한다.)


"일어나! 착착아 일어나! 착착아 밥 먹어야 돼, 일어나!"

일요일 아침 8시부터 강구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어제 열한 시쯤 잤기에 아직 9시간 밖에(?) 못 잤던 나는 불만이 가득해서 다시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


"착착아 일어나서 밥 먹어야 돼!"

"왜?"

"왜냐하면! 고등어구이랑 계란말이랑 된장국 있어!"


힝구(ㅠㅠ) 어제의 여파로(?) 강구구도 식욕이 도는지 10시까지 출근해야 하면서 아침부터 함께 먹을 식사를 준비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냐니까 6시에 눈이 떠졌다고 한다. 역시 지옥의 아침형 인간. 나는 다시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서 자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 나가서 먹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번 달은 강구구의 요리를 맛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애써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잠결에 먹는 고등어 구이가 바삭해서 참 맛있었고, '착착이 뼈 있으면 안 먹을까 봐' 하나하나 발라주는 강구구의 마음이 참 예뻤다. '괜찮으니까 너 먹어.' 하면, '나는 뼈 잘 바르니까 괜찮아.' 한다. 참 착해. 나 계란말이 좋아한다고, 계란말이가 10피스 정도 있으면 한 7피스는 강구구가 내 밥 위에 얹어줬다. 쉴 새 없이 내 밥 위에 반찬을 물어다준 어미새 강구구 덕분에 내 손으로 반찬을 한 개도 집지 않고 식사를 마쳤다. 그러고 나니 잠이 한결 깨면서 오늘에야말로 정말 아침형 인간이 되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하며 커피를 내렸다. 강구구표 고등어구이의 힘을 믿어보자! 끝으로 우리 부부의 요즘 식욕 정체기를 해결해준 H에게 감사하며 글을 마쳐야겠다.(L은 아님)


*실제 인물의 이름 이니셜에는 엘이 안 들어간다ㅎ 그냥 제 기준 떠오르는 알파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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